미군과 원주민 간 전설적 전투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8.22 21: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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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중계를 보니까 이번 올림픽에서도 예전의 올림픽과
꼭 같이아나운서나 리포터들이 최초의 금메달을 딴 최 민호 선수를
호칭할 때부터 ‘작은 거인’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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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쓰는 글 같기도 하지만 이 호칭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에 털어 버릴 겸해서 이 작은 거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역사를 설명하기로 하겠다.

한자에서 온 작은 거인이라는 한국의 자생적인
용어는 옛날부터 있어
왔었다.

그러나 잘 쓰지를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 호칭 크게 퍼져 유행되기 시기는 70년대부터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귀에 익숙해진 호칭의 탄생 배경은
한국이 아니다.

미국 서부의 한 전투에서 죽었다 살아난 인디언 척후병에서
이 단어의 배경은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작은 거인‘의 호칭은 인간의 크기와
아무 관계없이 탄생한 것이다


작은 거인이라는 호칭이 앞에서 말한대로 전면적으로 메스컴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제작된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
‘Little Big Man’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한국에 ‘작은 거인’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상연 될 때부터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대로 한다면 작은 거인이라는 번역은
그렇게 틀린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엄격한 사실로 보면 이 번역은 잘못 된 것이다.
(글쎄 -- '리틀 빅의 사나이'가 더 정확한 번역일듯하다)


메스 미디어의 힘은 무서웠다.

그 뒤 작은 거인이라는 호칭은 체구는 작아도 여러 분야에서
큰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작은 거인은 체육계, 연예계 심지어 정치계에게 까지 퍼졌다.


체구가 작은 체육인이 우승을 따면 어김없이 붙었었다.

체구가 작은 김 모 가수는 이 단어를 자신의 브랜드로 쓰다시피

했었고 작은 거인이라는 자기 밴드까지도 만들었었다.


이 용어는 정치권에도 흘러 들어가 중국의 등소평도 한국에서는

작은 거인으로 통했다.


더스틴 호프만 영화는 121살이나 먹은 잭 크랩이라는
병든 늙은이가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한 역사학도에게 술회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그는 백인이었지만 어린 시절 샤이언 인디언에게 잡혀가서

인디언으로 길러졌다.

그를 길러준 인디언 추장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용감하다고 해서 주어진 ‘little big man’이었다.


그는 백인 토벌대에게 발견되어 백인 사회를 돌아가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인디언 토벌을 나가는 커스터 장군의

척후병이 되어서 토벌작전에 따라 나서게 된다.


이 토벌 작전은 샤이언 족의 반격에 기병대 전원이 몰살당하지만

그를 알아본 추장에 의해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뒤에도 여러 직업을 걸치며 그는 파란 만장한 삶을 산다.


사실 이 영화는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불리기도 할만 큼

인디언의 입장을 많이 살린 영화이지만 내면에는 월남전을

풍자하는 가시가 들어있었다.

개봉 전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했고

아카데미 상과 골든 그로브 상도 받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토벌대 대장 커스터 중령은 실제 인물로

미 육군 제 7기병대 지휘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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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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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커스터 중령은 리틀 빅 혼에서 인디언 지도자 시팅 불과

크레이지 호스가 지휘하는 인디언들에게 그이 부대가
전멸 당했을 때 그도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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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인디언 추장 시팅 불(SITTING B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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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빅 맨이라는 이름은 1964년에 이 책을 저술한 작가 토마스 버거가  그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리틀 빅 맨이라는 별명을 얻은
미 기병대 인디언 척후병 컬리(CURLEY)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영화 속의 인생과 이 리틀 빅 맨이라는 별명의 실존 인물의 

인생은 전혀 근처에도 가지 않을 만큼 닮은 것이 없다.

                                             -크래이지 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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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특기해놓고 갈 사항이 하나있다.


진짜 리틀 빅 맨이라는 이름의 인디언이 역사에 아주 짧게 나온다.


1877년 9월 11일 저항 운동을 주도하던 크래이지 호스라는

인디언 추장이 미군에게 유인되어 체포된다.
속은 것을 눈치 챈 그는
저항하다가 경비병의
총검에 찔려 죽는데
그 때 미군 편에서
그를 제압하던
인디언의 이름이
리틀 빅 맨이다
                                      
                                                 
그는 크레이지 호스의 경쟁자이고 친척이라는 설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역사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에  ‘작은 거인’ 이라는 이름을 남겨놓은 리틀 빅혼에서

살아난 컬리를 알아보자


1876년 제 7기병대 사령관 커스터 중령은 인디언 보호 구역을

빠져나간 샤이엔 족 토벌에 나섰다.

7 기병대의 총 병력은 700명 정도였었다.


운명의 그 날 1876년 6월 25일 그는 이 병력을 3개의
전투부대와 한 개의 병참부대로 나누고 200여명이 넘는 한 개 대를
직접 지휘하였다.


그는 그날 오후 샤이엔 족들의 전날 발견한 거대한 1,000여개의
천막촌을 공격했다.

성공했으면 또 다시 인디언 여인들과 아이들이 몰죽음을
할 뻔 했는데 인디언 들은 이런 비극을 전에도 당했기 때문에
물샐틈 없는 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모르고 자만한 커스터는 그의 부하에게 돌격을 명했다가

시팅 불이 과 크레이지 호스가 지휘하는 2,000명의 인디언들에게

반격을 받아 강가의 한 작은 언덕으로 몰려 전멸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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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전적지 리틀 빅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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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에서 같이 종군했던  그의 동생과 그의 처남도 죽임을 당했다.

전투에서 전사한 많은 미군들 시체는 약탈당하고 머리 껍질이
벗겨졌다.


‘라코타의 달’이라는 인디언 측 내용을 구술을 바탕으로
리틀 빅 혼 전투를 다시 엮은 책을 보면 인디언들이 커스터 중령의
시체만은 악령이 깃들어 있다고 해서 손도 대지 않았다는 기술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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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의 유래가 된 리틀 빅혼 전투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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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샤이엔 인디언이 수 천 명이 겹겹이 둘러싼 전장을

구사일생으로 탈출해서 살아나온 인디언 척후병이 한 명 있었다.


컬리(Curley)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크로우 족(族) 인디언 척후였다.

그의 인디언 이름은 발음하기 복잡한 ‘Ashrishishe’이다

커스터에게는 크로우 족 인디언 척후병이 네 명이 있었다.
크로우 족은 샤이언 족과 사이가 안 좋아 미군을 지원했었다.
물론  이 척후병들은 보수를 받는 계약직으로 일을 했었다.


세 명은 백인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지만 컬리만은 뒤 편에

숨어 있다가 상체를 담요로 감싸고 공격하는 샤이안 부대원인양

위장해서 도망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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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우 족 컬리- 리틀 빅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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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 리틀 빅 혼의 전투에는 여러 설이 있어서 기술하기에

참 곤란한 점이 많다.


그가 전날 정찰에 나가 엄청난 숫자의 모닥불을 보고 커스터에게

보고 했는데 커스터가 무시하자 전투 개시 전에 그가 부대를

이탈하여 도주했다는 말도 있다.(신빙성은 약하다)


하여튼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서 커스터와 그의
7기병대의 전멸을 생생히 전하는 역사적 공을 세웠다.


그 뒤에 이 유일한 리틀 빅 혼의 생존자는 리틀 빅 맨이라고 불렸다.

그는 나중에 크로우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인디언 경찰로
임명되어 1923년까지 살다가 폐렴으로 죽었다.


그렇다면 작은 거인의 영어명인 리틀 빅 맨의 이름을 전해준 전장의

이름 리틀 빅혼(little bighorn)은 어디서 왔는가를 설명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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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혼 쉽 ( BIGHORN SH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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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혼 강에는 여러 지류(샛강)가 있다.

이 지류 중에 하나가 커스터가 죽은 언덕 앞을 흐른다.


이 지류는 와이오밍 최북단의 빅혼 산맥의 북쪽을 따라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몬타나로 들어가서 크로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나

하딘 근처에서 742 킬로 미터 길이를 가진 빅혼 강의 본류와 합류한다.

빅혼 강은 엘로우 스톤 공원으로 흘러 들어가서 큰 호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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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혼 강의 끝 빅혼 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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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혼 강은 물론 빅혼 산맥에서 발원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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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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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의 전투장은 강의 동안(東岸)에 위치해있다.


빅혼의 작은 강이라 해서 리틀 빅혼 리버(little bighorn river)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뒤의 리버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앞의 리틀 빅혼만 가져다가

이 특징없이 밋밋한 전장에 붙인 것이 리틀 빅혼이라는 유명한

역사적 지역 명칭이 되었다.


리틀 빅 맨인 컬리가 나중에 살다가 죽은 인디언 크로우 족

보호구역도 커스터가 죽은 전장에서 별로 멀지 않은 이 강의
언덕에 있다.


이렇게 알고 보면 한국에서 잘 쓰는 작은 거인이라는 호칭은 결국은

미국 록키 산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빅혼 산양이 선사한 것이다.


빅혼-> 빅혼 산맥-> 빅혼 리버 -> 리틀 빅 혼 리버-> 리틀 빅 맨

-> 작은 거인


그러니까 작은 거인이라는 호칭은 결국 크기나 능력에 관계없는

사연으로 출발 한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래서 작은 거인은 “큰 뿔 산양 강의 샛강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 ”
이라고 번역 설명 할 수 있는 것이 원천에 가장 밀접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출발이야 어떻게 되었던 이제는 우리가 잘 쓰는 단어가
되었고 친근한 단어가 된 이 마당에 물론 어쩌구 저쩌구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 사용해야 하지만 연유나 알고 쓰자는 것이 이 글은 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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