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정보전의 선구자 - 거칠부 장군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9.29 17: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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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정보전의 선구자  -  거칠부 장군 ★

  
흔히 신라의 장군하면  김유신장군 이사부장군 다음으로는  장군이 아닌 화랑들, 예로들면 화랑 관창, 사다함,  그리고 김유신장군의 아들  원술랑정도가 언뜻 떠오르고 만다.  그래서 거칠부장군도 있다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 거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거칠부는 우리가 고등하교때 배운 국사책엔  진흥왕때 왕명을 받고 처음으로 국사(國史)를 편찬한 인물로만 그려져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거칠부는 호히려 군사적 식견이 매우 앞섰던 장군임이 군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여실히 증명된다. 특히  고구려에 대한 전략정보전문가로서 신라가 죽령 이북의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백제와 고구려의 공방속에서 지금의 충청북도와 한강하류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던 장군이었다. 

 

그런 거칠부의 활약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삼국사기 열전편을 보면  김유신, 을지문덕 다음으로 거칠부가 소개되고 있다.   지금부터 거칠부에 대해서  군사적 관점에서 그의 행적을 살펴보고  관산성 전투에서의 그의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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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단양의 적성비 ( 이 비는 이사부(伊史夫)장군을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난 뒤,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也?次)와 가족 등 주변인물을 포상하고 적성지역의 백성들을 위로할 목적에서 세웠다.) 

◈ 거칠부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居柒夫)전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或云<荒宗>.]姓金氏, <奈勿王>五世孫, 祖<仍宿>角干, 父<勿力>伊 , <居柒夫>少? 弛有遠志.


거칠부[혹은 황종이라고도 한다.]의 성은 김씨로써 내물왕의 5세손이고,
조부는 잉숙 각간이요, 아버지는 물력 이찬이었다. 거칠부는 젊었을 때
건들거리며 방종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원대한 뜻도 품고 있었다.

 

거칠부(居柒夫)에 대한 첫 설명에  혹은 이렇게도 전한다고 하면서  말한 내용은  성은 김씨요 이름은 황종(荒宗)이라는 내용인데  쉽게 말해서 좌충우돌형의 거친놈이란 뜻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신라인의 이름은 지금 우리들처럼  김아무개씩의 중국식 이름을 사용치 않았슴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즉 사람의 특성을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마 거칠부는 이름 그대로 거칠다는 것을 한자로 음이 비슷하게 거칠부(居柒夫)라 적은 것이다.  이것을 뜻글자인 한자로 표현하면 응당  황종(荒宗)이 되겠다. 

 

그 다음 내용도 보면 거칠부가 어렸을때의 모습을 표현하는 모습에    少?이라고 적고 있는데  척(?)이라는 한자 뜻은  헤이하다, 방종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 본다면 사춘기때까지는 좀 말썽부리고 제멋대로 행동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좋게 말한다면  기존의 가치관에 얾메이지 않고  틀을 깨는 모습이라고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거칠부에 대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드라마화로 꾸며 보면
          - 좌충우돌 거칠부  승려로 변신하다. 

어떻든 이런 거칠부의 모습은 훗날  정세를 다각도로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힘을 키워주는 발판이 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도 있는데  삼국사기 열전의 기록을 보면  그 내용을 보다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다.  이렇게 거친부분이 있다보니 좀 엉뚱한 부분도 거칠부에게는 있었든지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편엔 그의 이름소개 다음에 바로 이런 내용으로 전개되는데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된다. 

 

 

거칠부 :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다) 아. 젠장.  하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내가봐도 한심스럽긴 해.  왕손인 주제에 맨날 이렇게 사고나 치고  사람들이 나보고 거친놈이라고 하는데 그러만도 하지 뭐.  한데  이거  좀 확 달라진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겠는데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신라안에선 해 볼 건 다 해봐서  따분하기도 하고  아 답답해 죽겠네.

 

 (그때 마침  절에서 종의 소리가 들리면서  스님들의 불경소리가 고즈넉하게 거칠부의 귓가에 메아리 친다 )

 

거칠부 : (순간 느낌이 온 표정으로)  앗싸. 바로 이거야.  요즘 좀 배운티 내려면  불경하나쯤은 읊어야  명함이라도 내밀지.  그럼 나도 이 참에 머리깍고 이미지좀 개선시켜 볼까? 또 하나 더 있지.  흐흐흐  중이 되면  사방을 맘대로 돌아 다닐 수 있잖아.  신라 장안은 너무 좀았는데 잘 됐다. 

 

거칠부는 그 생각이 들자 바로 머릴 깍고 중이 된다. 그리고 사방을 유람하여 다니다가 언뜻 생각난 것이 고구려까지도 맘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음을 깨닫았다.

 

거칠부 : 신라 왕손으로서  뭔가 나라에 이득되는 일 하나정도는 하려고 그랬는데  이번에 고구려에 가서  고구려 사정좀 알고 와야겠다.  머리 깍기를 잘 했는데. 하하.  그러면 가까운데로 먼저 가볼까? (그 길로  거칠부는  고구려 땅인 죽령을 넘어서게 된다)

 

거칠부 : (저자거리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기웃기웃하며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장사람1 : 자네 그 이야기 들었는가?
시장사람2 : 무슨 말 말인가?
시장사람1 : 고승인 혜량법사가 이번에  법당을 하나 열었다는데 그 설법이 그렇게
            좋다는 얘기 말이야.
시장사람2 : 그걸 이제 알았어? 설법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면  한 눈에 알아본다네 그려.
시장사람3 : 아 그 이야기   나도 들었구먼.  소문이 아주 자자하던데.
시장사람1 : 그렇게 유명한가 보지? 도대체 어느정도길레 그런단 말이여?
시장사람2 : 그러니까  말이여.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얼굴 한번 딱 보면 그 사람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다 맞쳐준다는 구먼.
시장사람1 : 아니 그정도야?  앞날까지 알려준다고?
시장사람3 : 그러니까 고승이지  달리 고승이라 하겠는가? 이사람아.

 

거칠부 ; (시장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듣다가 슬쩍 끼어든다.)
       말씀좀 엽줍겠소이다.  그 법사가 혜량법사라 하였소이까?


시장사람2 : (거칠부를 힐끗 보다가) 그렀소만? (아래위를 흟어보면서)  그런데 보아하니
           스님같은데   그 고승 혜량법사를 몰랐단 말이요?


거칠부 : (약간 당황하듯 머뭇하다가)  아.  저도 객지에서 혜량법사의 높으신 말씀을 듣고자 이렇게 찿아온 것입니다.   혹시  그 법당 가는 길좀 알려 줄 수 있겠소이까?
시장사람 3; (시장사람2를 쳐다보며) 아니 이사람아. 뭘 그리 아래위를 훓으면서 타박하듯이 말하는가 말이여?  법사님 소문을 듣고 찿와 왔다 하지 않는가?
거칠부 ; 약간 몸 둘바를 몰라하는 표정을 짓는다.
시장사람 1 : (거칠부의 모습을 보면서 안스러운듯 길을 일러준다) 스님  너무 상념치 마시죠. 이사람들이 시장바닥에서 굴러먹다 보니  좀 그렇다 생각하시고  ...  (손짓을 하면서 말한다) 그 법당은 저 고개를 넘으면 바로  보일겁니다.
거칠부 : (합장하면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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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단양의 온달산성 . 신라는 남한강을 따라 한강하류까지 이어지는  수계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여 물류이동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 한강 물줄기를 확보하기 위해서 신라의 산성은 한강줄기를 따라서 축성되었다.              
( 신라의 고구려 공략의 전진기지이자 거점 역할을 한 곳으로서  단양은 거칠부 장군의 주 작전지역이기도 하다.  온달산성은  온달장군 전설때문에 고구려 산성으로 알고 있지만 신라가 축성한 산성이다.  현지 답사를 하여 보면 군사학적으로는 북쪽을 경계하기 위한 산성이다. 최근 지표조사발굴 보고서에도 신라계 토기가 나오는 등  신라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침내 혜량법사와 대면하게 되는 거칠부

 

혜량법사 : (거칠부를 지긋하게 보면서 나즉히 말한다) 사미(沙彌)는 어디서 왔는고?
거칠부 : (주위를 한번 슬쩍 훓어 보고 조용히 답한다) 저는 신라사람이옵니다.
혜량법사 : (시선을 바닥으로 한 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면서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
          알겠느니라.   물러가 있거라.

저녁 공양을 마치고  혜량법사는 거칠부를 조용하게 다시 부른다. 법당안에는 불상앞에서 하늘 거리는 촛불 2개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거칠부는 부처님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있는 혜량법사 뒤에  조용히 꿇어 앉는다.

혜량법사 : (거칠부가 왔음을 알고서도 잠시동안 명상을 지속한다)
거칠부   : (혜량법사 뒤에서 숨을 죽인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혜량법사 : (잠자리에 들시간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들리자 혜량법사는 그때서야 돌아 앉으면서 거칠부를 한동안 말없이 보다가 무겁게 입을 연다)
           신라에서 왔다고 했지?
거칠부 :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하옵니다. 법사님.
헤량법사 : (고개를 두어번 끄덕인다 )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사람이 숫하게 많거늘  오늘 그대를 보아하니  정녕 보통사람은 아닌것이 분명한데 여기에 온 뜻은 다른데 있지 않더냐?
거칠부 : (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말한다 )
          법사님  저는 구석진 곳에서 태어나 자라는 바람에  법사님의 높으신 덕망과 명성을 듣고 여기까지 멀다 않고 찿아 왔사옵니다. 부디 저를 물리치지 마시고  저의 무지몽매함을 일깨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옵니다. 법사님.

혜량법사 :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들어 보거라.
거칠부 : 고개를 들고 혜량법사를 쳐다본다.
혜량법사 : (촛불에 비치는 거칠부의 눈을 보면서 말한다) 무얼 속이려 드느냐.  이 늙은 중놈의 눈에도 훤히 보이거늘. 아무리 이 나라가 좁다하더라도 그대같은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다고 보느냐? 
거칠부 : 고개를 떨구고 아무말이 없다.
혜량법사 : (거칠부의 손을 지긋히 잡으면서) 내 그대를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잡힐까봐 걱정되어서 몰래 알려주는 것이니  그대 나라 신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거칠부 : (조용히) 알겠사옵니다.  (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려 한다)
혜량법사 : (나가려는 거칠부를 다시 불러서 앉힌다)
        나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 사람에게  매정하게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부처님의 도리가 아닌바   내가 자네의 관상을 좀 보아주겠네.
거칠부 ; 혜량법사를 쳐다본다
혜량법사 : 제비턱에 매의 눈이로구나.  그대는 장차 반드시 훌륭한 장수가 될 상이야. 
거칠부 : 그러하옵니까?  지금까지 사고만 쳐서  속죄하고자 머리를 깍았을 따름이옵니다만.
혜량법사.;  (고개를 가로 저으며 미소를 지으면서) 허허. 그런게냐? 아무튼 그대는 분명히 훌륭한 장수가 될게다. 이번엔 내 부탁하나 들어 주겠는가?
거칠부 :(깜짝 놀라며) 무엇이옵니까  법사님?
혜량법사 ; 만약 그대가 나중에 장수가 되어서 군사를 이끌고 여길 다시 오더라도 말일세 그때는 나를 헤치지 말아 주겟는가?
거칠부 : (눈을 크게 뜨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이르다 뿐이겟습니까? 제가 법사님을 해하다니요.  절대로 그럴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하늘에 해를 두고 맹세할 수 있사옵니다. 법사님.

혜량법사 : (눈을 지긋이 감으며) 그래 이만 돌아가 보거라.  아미타불.
거칠부 : (공손히 합장을 하면서  법당을 빠져 나온다)   

 거칠부가 승려가 된  속내는?

 

이 내용이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편에 나오는 내용을 극화한 것인데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군사적 것은  거칠부가  죽령을 넘어 고구려 이곳저곳을 승려 복장으로 다니면서 고구려 변방의 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엔  승려신분이라는 것은 승려이외에  첩자로서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서에 기술된 대표적인 승려첩자로는  고구려 장수왕의 명을 받고 배제로 넘어와서  개로왕으로 하여금 실정을 하게끔 유도하였던 도림이 대표적이다.  잠시 언급한다면  승려첩자 도림은  백제개로왕이 바둑을 즐겨한다는 것을 알고 바둑으로 개로왕에 접근하여 개로왕과 백제신하들간에 이간질을 하고 백제의 기밀을 장수왕에게 알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설명 : 단양의 적성산성 ( 신라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산성으로서  온달산성과 구조나 형태가 똑같다)

그래서 백제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아차산밑에서 참수당할 때  고구려첩자 승려 도림의 꾐에 빠진 것을 한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거칠부의 이런 기록 역시 거칠부의 고구려에 대한 정탐활동임을 말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런 거칠부의 대담한 활동은 어렸을 적  성격과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그렇게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거칠부의 고구려에 대한 정탐활동은 신라가 고구려를 공략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삼국사기엔  고구려땅에서 혜량법사와의 만남 이후의  거칠부 행적을 이렇게 이어나가고 있다.

 

거칠부는 드디어 신라로 돌아와 승려 생활을 그만두고 벼슬에 종사해,
관품이 대아찬에 이르렀다.  진흥왕 6년 을축년(545)에 왕명을 받들어
여러 문사들을 모아 국사를 편찬하였으며 관품이 파진찬으로 올랐다.


이 기록이  국사책에 신라 역사서 최초기록한 거칠부의 국사로 알려지게 되는 부분인데 이내용의 이면에는  거칠부가 승려생활을 통해서 그만큼 글을 많이 접하게 됨으로써 국사를 편찬하는 장(長)에 임명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다음 기록은  고구려땅 , 현재의 죽령이북으로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데  거칠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알려주고 있다.  그 기록은 이렇다.

 

진흥왕 12년(551) 왕이  거칠부를 비롯해서 대각찬 구진, 각찬 비대, 잡찬 탐지, 잡찬 비서파진찬 노부, 파진찬 서력부, 대아찬 비차부, 아찬 미진부 등  8명의 장군에게 명해 백제와 함께고구려를 침공하게 아혔다.  백제사람들이 먼저 평양을 쳐부수자 거칠부 등이 승세를 타고 죽령 바깥쪽 고현 안쪽의 10개군을 빼앗았다.


==> 이 기록이 신라 진흥왕과 백제 성왕이 손잡고 고구려를 협공하는 내용인데  백제의 숙원인 옛 한성백제의 옛땅인 한강유역은 백제가 공략하고  소백산맥 너머 죽령이북땅인 한강상류지역은 신라가 공략한 것을 말한다.  이때  신라군을 이끈 장군이 거칠부임을 밝히고 있다.  

  

고구려 승려 혜량법사는  신라 거칠부에게 포섭된 신라의 세작 아닐까? 

 

그리고 이어서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편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거칠부가 장군이 되어 오자  혜량법사가 그의 문도들을 이끌거 길가에 나와 있었다. 거칠부가 말에서 내려 군사예법으로 절을 하고  법사에게 나와 말했다.

 

“지난날 유학하던 시절에 법사의 은혜를 입어 생명을 보전하였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만나게 되니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그러자 혜량법사가 답하기를
“지금 우리나라 고구려는 정치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귀국 신라로 데려가 주면 좋겠구려”

 

이에 거칠부가 말에 함께 올라 돌아와서 왕에게 배알시켰다.  왕은 그를 승통으로 삼고 처음으로 백좌강회 및 팔관법을 두게 하였다.   진지왕 원년(576) 상대등이 되어 군사와 정치의 사무를 맡아 수행했으며, 늙어 죽으니 향년 78세였다.

 

혜량법사가 말한 내용중에 지금 고구려는 나라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 내용은 당시 고구려가 지도부 내분으로 말미암아 극심한 내부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당시 고구려는 왕비 세력간에 세자책봉문제를 두고 유혈충돌이 벌어져서 약 2,000여명이 죽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거칠부의 행동을 군사적으로 재해석 하면 어떻게 될까?  어느정도의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전쟁은 군사적 관점에서 재해석 하는 것이 설화적 내용보다 더 설득력 있을 것이기에 군사적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 재구성 해보자.

삼국시대 진흥왕 시점은  불교가 지배층 중심으로 형성되던 시기이다.  서역이나 중국의 문물을 수용하는데 불교가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되는데  군사적 부분에선  승려는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승려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만큼 그 시기엔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이는 그만큼  인적자원에 대한 접촉기회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거칠부가 승려가 되는 이유를 앞서 거론하였는데  눈을 돌려서  고승이라고 추앙받는 혜량법사는 과연 법사로서만 그 존재가치를 봐애 하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점에 대해서 필자는 혜량은 고구려의 고급정보를 거칠부에게 전달해 주는 세작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고구려 승려 혜량이 거칠부에 포섭된 신라 세작이라는 관점하에서 그 실제 모습을 그려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고구려 내부의 정보를  혜량으로부터 받은 거칠부는 대 고구려 작전에서 과감한 결단을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 근본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고구려땅을 점령하고 혜량법사를 다시 만난 거칠부  

 

  “지금 우리나라 고구려는 정치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귀국 신라로 데려가 주면 좋겠구려”
라고 말한 부분을 달리 해석해 보면  고구려 정세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주는 세작의 기능을 언급한 부분이 되고  귀국 신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은  어지러운 고구려를 피해서 신라로 간다는 의미보다  고구려인으로서 신라의 세작노릇을 충분히 수행하고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고구려땅에 산다는 것은 위험하니 신라땅에서 살고싶다고 보는 것이 군사적 관점에선 더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말해서 거칠부가 고구려의 고승 혜량법사를 찿아간 이유는  혜량법사를 신라의 세작으로 포섭하기 위한 것고  결과적으로 고구려 혜량법사는 신라의 세작이 되었다라고 보는 것이 군사적 관점에서 다른각도로 보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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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삼년산성과  산성에서 본  보은읍 전경 . 삼년산성은  신라의 군사령부기지 역할을 한 곳이자
                신라가 삼국간의 경쟁에서 최후 승자가 된 전초기지였다.

* 거칠부와 혜량법사의 관계를 다른 각도로 보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

 

거칠부 : (사방 팔방 유람하며 다니던 거칠부  저자거리에서 이리기웃 저리기웃하고 있다) 

시장사람1 : 자네 그 이야기 들었는가?
시장사람2 : 무슨 말 말인가?
시장사람1 : 고승인 혜량법사가 이번에  법당을 하나 열었다는데 그 설법이 그렇게
            좋다는 얘기 말이야.
시장사람2 : 그걸 이제 알았어? 설법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면  한 눈에 알아본다네 그려.
시장사람3 : 아 그 이야기   나도 들었구먼.  소문이 아주 자자하던데.
시장사람1 : 그렇게 유명한가 보지? 도대체 어느정도길레 그런단 말이여?
시장사람2 : 그러니까  말이여.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얼굴 한번 딱 보면 그 사람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다 맞쳐준다는 구먼.
시장사람1 : 아니 그정도야?  앞날까지 알려준다고?
시장사람3 : 그러니까 고승이지  달리 고승이라 하겠는가? 이사람아.

거 칠 부 : (슬쩍 끼어든다)  듣자 하니  고승이라고 하는데  그런 고승이 언제부터 있었소이까?

시장사람3 : 그걸 몰랐단 말이요? 

시장사람2 : (거칠부를 보며) 허허. 이사람 진짝 귀 막고 살았나 보구려

시장사람1 : (거칠부를 보며) 아니 지금껏 말한 것도 못들었소?  그 고승은 워낙 불력이 높아서

            처음보는 사람도 척 보면  훤히 다 안다고 하잖소?

거 칠 부 : 그럼 그 고승에게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시장사람 2: (거칠부를 아래위로 훓어보며) 왜  중이라고 되려고 그러요? 불법 배우려면 중이 되면 되지

            (주위사람을 힐끗 보면서 큰소리로 웃으며) 안 그렇소  하하하.

 

거칠부는 저자거리 사람들 말을 듣고  고구려 승려를 만나면  고구려 정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승려처럼 머리를 깍고 승복을 입고  죽령넘어 고구려 땅 혜량 법사를 만나러 간다.

 

거칠부 :(혜량법사 앞에서 합장하며 공손하게 말한다) 법사님의 높으신 명성을 듣고 이렇게 도리를 깨우치고자 먼질을 마다 않고 찿아왔사오니 부디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혜량법사 : (거칠부의 모습을 보고 바로 승려가 아님을 간파한다) 보아하니 승려는 아닌것 같고 관상을 보아

            하니 제비턱에  매의 눈처럼 매서운 눈매를 가졌구려. 필시 장수의 위풍이 느껴지는 듯 하오이다. 자. 말씀해 보시구려.   솔직히 어디서 왔소이까?  내 비록  하찮은 중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보고 중인지 아닌지 만큼은 아는 능력이 있소이다. 

거칠부 : (순간 놀란다)

 

혜량법사 : (거칠부가 순간 놀라는 것을 보고)  한번 말해 보시요.  뭐 때문에 나를 찿아 오셨소이까?

거칠부 : (혜량법사를 잠시 쳐다보다가 혜량법사에게 바짝 다가서서 )

 맞습니다. 법사님께서 보신대로 전 신라사람입니다. 고구려에서 이름있는 스님이 여기까지 오셨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고구려 조정 돌아가는 정세좀 알려고 찿아왔사옵니다.  허락하신다면 좀 알려 주시면 고맙겠사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망나니처럼 살아왔사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살아선 안되겟다 싶고 나라에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에 법사님을 뵈로 온 것입니다.

 

혜량법사 : (크게 한숨을 내시며 탄식하듯이 말한다) 고구려 조정의 정세가 알고 싶다라.  허허. 사실 지금 고구려는 망하기 일보 직전이외다. 

거칠부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혜량법사 : 왕비세력간에  세자책봉문제로 완전히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오

거칠부 : 싸움이라구요?  도대체 얼마나 크길레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라고 하십니까?

혜량법사 : 서로 지지하는 왕비가 다른 귀족들간에 싸움으로까지 번져서 2천명이 죽었으니 오죽하겠소?

거칠부 :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래서 이곳 변방까지 내려오신 겁니까?

혜량법사 : (또 한번의 탄식을 하며 ) 그러 하오이다. 살륙이 난무하는 고구려 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오이다.

거칠부 :  (혜량법사의 두손을 꼬옥 잡으며 ) 법사님.  그러면 신라땅에서  법사님의 뜻을 펼쳐봄이 어떠하시겠습니까?

혜량법사 ; 그게 무슨 말씀이요?

거칠부 : 사실  우리 신라는 지금 죽령밖 고구려땅을 도모할 계획을 갖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온데 법사님께서 조그만 도움좀 주시면 신라땅에서 법사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사옵니다.

혜량법사 :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어렵게 입을 뗀다) 이 노승이 무었을 도와드리면 좋겠소이까?

거칠부 : 법사님께서  고구려 정세를 저에게 정확히 알려주시면 됩니다.  군사이동이라든가 조정의 분위기 그리고 병력배치라든가  말입니다.  특히 이곳 죽령밖 고구려군의 동태가 제일 중요합니다.

혜량법사 : 그렇게 하겠소이다.

 

군사적 관점에선 이것이 본 모습 아니겠는가 하고 극화해 보았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신라가 죽령밖 고구려땅을 획득하고 나서의 모습도 보면  " 거칠부가 혜량법사와 함께 말을 타고 돌아와서 왕에게 배알시켰다.  왕은 그를 승통으로 삼고 처음으로 백좌강회 및 팔관법을 두게 하였다." 라고 적고 있듯이  혜량법사는 신라땅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것으로 보아 혜량은 거칠부에게 포섭된 세작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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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삼년산성 성문터 (우마차를 활발히 이용한 것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바퀴자국을 따라 2줄기로 패어있다)

거칠부의  정확한 정보 - 관산성 전투 승리의 밑거름이 되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진흥왕 11년조 기록을 다시 보도록 하자.

 

진흥왕 11년(540) 봄 정월, 백제가 고구려의 도살성을 빼앗았다.
3월, 고구려가 백제의 금현성을 점령했다. 왕은 두 나라 군사가 피로한 틈을 이용하여 이찬 이사부로 하여금 그들을 공격하게 하여 두 성을 빼앗아 성을 증축했다. 군사 1천명을 그 곳에 머물게 하여 수비하게 하였다.

 

백제와 고구려가 도살성과 금현성을 서로 주고받고 하는 사이에 그 틈을 노려서 신라가 두 나라를 상대로 이런 과감한 작전을 펼치는 데에는 실질적으로 거칠부의 고구려에 대한 정보가 주효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기록엔 이사부가 공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사부는 진흥왕 2년에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병부령에 임명되고 나이로 보자면 연로한 고령이다. 따라서  야전 지휘관역할은  열전 거칠부편에도 나와 있듯이 거칠부가 주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라가  도살성과  금현성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신라는 죽령에서 한강하류 지금의 이천쪽으로 연결되는 중간 거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거칠부는  어려서 좌충우돌하던 성격이 오히려 과단성 있는 자질로 변화되고 이것은 군사적 결단성으로 연결되었다고 판단된다.  특히 고구려에 대한 거칠부의 정확한 정보력은 신라가 백제보다 앞서서 과감한 작전을 결행하게 한 원동력임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라 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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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남한산성에서 본 서울의 야경

( 남한산성 역시 신라 문무대왕때 쌓은 주장성이다. 남한산성은 나당전쟁때   신라의 보급기지역할을 하였고  당나라를 몰아낸 신라승리의 핵심 기지였다)
 최근 발굴에서  신라문무왕때 지은 군창고 터가 발굴되었고  지금까지 가장 큰 기와가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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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땅거미 질 무렵  남한산성 성벽과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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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삼년산성에 대해서는 별도로 매우 상세하게 기술할 예정이었으나

여기서부터는  부득불  댓글에서너무 우겨대는  네티즌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본문외에 추가한

부분입니다.  양해바랍니다. 

( 가끔은  환타지 소설이나 만화 영향 때문에 우리 고대사의 전투를 너무 환상을 갖고 계신분들이

많은가 싶기도 합니다. ) 

* 참고로 삼년산성은 삼국시대~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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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삼년산성내  연못 ( 아미지라고 바위돌에 세겨져 있다)  군사적 방어기능이 아닌 식수해결을 위한 것이다.  골짜기로 흘러 내리는 물을 가둬 놓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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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삼년산성의 엉터리 복원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진 - 성문앞을 가로막는 성벽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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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삼년산성 안내판 ( 서문지가 주 출입구로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동문지가 망대지로서 가장 높은 능선을 따라 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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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삼년산성과  판박이로 똑같은 청주의 상당산성 안내 그림 (청주 상당산성도 김유신장군과 연결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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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삼년산성이 유네스코 등록을 거부당한 문제의 복원된 성벽 ( 성안에 물이 차지 않게 하기 위한 수구가 보인다.  문제는 기존 삼년산성의 석재와는 전혀 다른 외지의 석재를 사용했고 또한 축성법도 다르다. 한마디로 엉터리 복원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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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하남시 이성산성의 전경도이다.  신라가 한강유역에 신주를 설치할 당시 축성된 산성이다. 그림을 보면 이 곳 역시 식수를 해결하기 위한 연못이 여러군데 설치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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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하남 이성산성내의  연못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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