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병 수색대 포스리컨 ....3부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10.03 20: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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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3월,

제9해병원정여단이 다낭에 상륙한 이후 1968년 구정공세 때 까지는

약8만5천의 해병이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1969년부터 해병대가 철수하기 시작하였는데 베트남 전쟁이 끝나기까지

14000명 이상의 전사자와 88000명의 부상자를 내게된다.

해병대의 철수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있는 가운데 수색정찰 활동은

1971년 6월까지 계속되었었다.

 

 

제1, 제3 수색대대와 제1,제3 수색중대는 각자의 사단을 비롯해

남베트남제1군단작전지역에 배속되어 활동했다.

수색대는 북베트남 군에게서 녹색유령이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베트남전쟁 중 해병대의 첫번째 메달 오브 아너 수상자는 수색대에서 탄생하게된다.

메달 오브 아너는 죽어서야만 받는다는 속설처럼  

프랭크 리저너(Frank Stanley Reasoner)소위도 그러했다.

해병대는 수시로 다낭비행장을 위협하는 베트콩들을 제거해야했다.

 

1965년7월12일,

적진 깊숙히 수색정찰에 들어갔던 제3해병사단 제3수색중대의 선발대 리더였던

소위는 5명의 대원과함께 안 마이 마을로 향하는 길을 따라 들어갔다.

그 뒤에는 헨더슨 중위의 제1소대가 마을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선발대가 마을입구의 몇채의 집을 지나자 갑자기 기관총탄이 날아왔다.

6명의 수색대원은 매복해있던 약75명이상으로 추측되는 

중대급 베트콩들로부터 집중사격을 받게되었다.

총격을받은 대원들은 곧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프랭크 리저너 소위는 대원들에게 본대가 있는 쪽으로 후퇴를 명령하였으나

기관총 사격때문에 후퇴가 어렵게되자 과감히 자신을 노출시킨 채 대응사격을가해

2명의 베트콩을 죽이고 기관총을 침묵시켰다.

이틈을 이용해 대원들이 후퇴를 시작했고 그 순간 자신의 곁에있던

무전병 짐 쇼클리가 총탄에 맞고말았다.

프랭크는 부상당한 무전병이 탈출할 수 있도록 엄호사격을 했다.

무전병과 부하들이 안전지역로 빠져나가는동안 뒤에남아 엄호하던 프랭크는

여러발의 총탄을맞고 전사했다.

뒤따라 들어온 제1소대도 전투에 돌입하여 M-79 유탄 발사기와 수류탄을 던지며 싸웠다.

생존한 선발대는 헬리콥터로 탈출할 수 있었고 무전병 짐 쇼클리 또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1967년1월31일, 미국방성은 프랭크의 부인과 아들에게 메달 오브 아너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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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리저너(Frank Stanley Reasoner)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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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는 라오스국경, 북베트남 접경지역과 남지나해의 북쪽지역등에서 활동했다.

전투부대의 정보지원과 안전을 위해 원거리 정찰도 수행했으며 남베트남 지역의

베트콩 활동 근거지로 의심되는 지역의 동태를 정찰했다.

제1수색대대장 버나드 트레이너 중령은 7명으로 구성된 효과적인 수색팀을 만들었는데

이 팀은 대단히 효과적으로 수색정찰임무를 수행할 수 있음이 후에 밝혀진다.

 

척후병(포인트 맨)을선두로 팀장, 위생병, 2명의 무전병, 중화기 또는 유탄 발사기사수,

후미에 챨리맨의 순서로 대열을 정한 팀단위로 꾸준히 반복훈련을 실시했다.

무전기는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있는 장비였기 때문에 2대를 운용하도록 했던 것이다.

포병의 지원포격은 수색정찰팀으로부터 받은 요청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수색대에있어서 무전기는 매우 중요한 장비였다.

또한 매복공격 시에도 편리했으며, 

수송헬리콥터와 정찰기와의 교신도 중요한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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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는 작전지역으로 투입되거나 빠져나올 때 유용하게 쓰였다.

베트남과같은 지형에서는 스쿠바장비를 이용하거나 낙하산으로 투입되는 일은 거의 없었고

헬리콥터가 아니면 오직 걸어서 이동해야했다.

그러나 요란한 헬리콥터 엔진소리는 수색대원들의 위치가 드러나게되는 단점이 있었다.

대규모 접전이 예상되는 지역에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위해서는 약1주일 정도의

기간동안 작전지역으로 투입되어 지속적인 정찰활동을해야했다.

그다음 이들정보들을 분석한 후 공군또는 포병이 한바탕 두들기고나서 보병부대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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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수색대대의 헬리콥터 레펠 시범(캘리포니아. 캠프 팬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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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코(ANGLICO)팀이 수색대와 함께 훈련중이다.

항공함포통제 임무를 맡는 앵그리코는 상륙부대인 해병대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타격해야할 적 시설물과 중요거점들에 대해 함포와 항공기의 공격을 정확하게

유도해줘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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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의 기지염탐 또는 병력의 이동상황에대한 정찰을

열쇠구멍(Keyhole)이라 불렀는데 대략 4명 또는 많게는10명정도의 병력이 

경무장을하여 은밀히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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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스팅레이(Stingray)로 불리운 정찰은 매복공격과 아울러 포격 및

폭격을위하여 적군의 위치를 좌표로 알려주는 임무였다.

적진 깊숙히 들어가야하는 임무의 특성상 스팅레이는

대게 8명에서 12명으로 구성되며 중무장을 해야했다.

어느 스팅레이 정찰대의 경우 12회의 포격과 15회의 항공폭격요청을하여

240명을 죽이기도 하였다.

 

베트남파병 해병사단들의 수색대는 합계 1년동안 1333회의 수색정찰과

22번의 대대급작전지원등으로 총2683명의 적을 사살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북베트남군 포로획득과 추락한 조종사구출, 전자감지기 설치와

무선중계역할도 수행했다.

해병대 지휘부는 수색정찰활동에 대단히 만족스러워했고 육군은 경이로운

부대라며 놀라움과함께 비슷한 부대의 편성을 고려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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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직할 수색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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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F(fleet marine force) 수색중대 

 

베트남주둔 제3해병상륙군은 예하 사단들의 수색중대들이 수색대대와 함께

작전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이것은 얻어진 정보를 통합하고 무기들을 원활하게 지원하기위한 방안이었다.

베트남에는 모두 6개의 수색중대가 존재하였으며

(대대예하중대 및 그범위외에 추가적인 중대를 포함하여)이를 모두 통합, 확대개편하여

사단예하 수색대대로서의 개념을 확립하려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통합된 대대편재에서 취득한 정보들을 해병지휘부에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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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는 남베트남 경찰과 경비부대의 교육에 많은지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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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군과 함께 작전 중인 수색대.

 옆의 베트남 병사는 하사 계급장을 가슴에 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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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해병대는 제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스나이퍼들을

동원하여 대부분을 보병연대에 배속하였으나 오직 31명의 스나이퍼들이 1966년까지

수색대대예하  스나이퍼 소대로서 남아있었다.

연대의 스나이퍼는 3개의 분대로 구성되었으며 분대당 5개의 팀(2명)을 가지고 있었다.

수색대대들은 4개의 분대를 가졌으며 분대당 3개의 팀을 가지고 있었다.   

연대의 스나이퍼팀은 대대에 파견되어 통상 2주간의 저격활동을하고

다시 연대로 돌아가는 순환근무를하는 형식 이었다.

 

북 베트남군 스나이퍼들은 동맹공산국가들에서 제공된 장비와 교관들의

교육에 힘입어 활발한 저격활동을 전개하여 미군을 괴롭혔다.

늦은감이 없진않지만 미 해병대는 그나마 스나이퍼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 중 가장 성공한 스나이퍼 보유 부대로서 명성을 떨치게된다.

 

초반엔 레밍턴, 윈체스터와같은 7.62mm 소총에 가늠자가 새겨진 망원렌즈를

사용하였는데 이후에 채용된 M40 시스템과 야간투시경(스타라이트 텔레스코프),

레이저를 이용한 자동 거리 측정등 첨단기술의 개발로 군 저격의 새로운 장을 열게된다.

그러나 야간의 스나이핑은 아무래도 제약이 많았다.

적외선 야간 투시경은 최장 300m 이내의 목표물만 저격이 가능했다.

만약 전차에 탑재된 써치라이트의 지원을 받게된다면 800m까지도 가능했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습득한 경험으로 여전히 두사람의 스나이퍼가

한팀이되어 활동했다.  

초기에 발명된 AN-PVS-2 야간 투시경은 매우크고 무거웠으나

 M14와 M16 소총에 장착하여 야간 저격과 매복에 사용했으며 

그 효과가  뛰어나 많은 성과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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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서 스나이퍼 소대는 연대나 대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관측병 곁에서 스나이퍼가 M40 저격소총을 겨누고 있다.

1968년 케산. 제3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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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PV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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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육군은 그린베레, 장거리정찰대(LRRP), 레인저를 비롯한  스페셜포스를

운용하고 있었으나 해병 수색대의 성공적인 활동에 충격을 받았다.

미군 수뇌부는 남베트남군에게 기본적인 수색정찰 기술을 가르쳐 전장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나 트랑의 미군사원조 사령부에 수색학교(MACV Recondo School)를

설립하게된다. 

 

해병대는 비록 아주적은 비율이긴 했지만 타군 특수부대의 경험과

실전요원들을 받아들여 기술들을 함께 공유했다.

이 때문에 남베트남군에 본격적인 수색대가  탄생하게되었고

남베트남 해병대의 중추적인 조직으로 발전하게되는 것이다.

 

한사람의 완벽한 수색대원을 만들어내기위하여 1년이 넘는 교육기간이 필요했다

(해병대는 최소한 2년이라야 완벽한 수색대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했다)

해병수색대의 눈부신 활약은 심지어 북베트남조차도 해병대를 모방한

수색대를 편성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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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condo School 수색정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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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NMC. 남베트남 해병사단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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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KMC. 주월 한국해병대. 청룡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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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NMC 와 ROKMC 마크

한국 해병대 청룡부대는 비밀작전을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정규해병대와는 다른 부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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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베트남 해병사단. 연대 수색중대원들. 타이거 스트라이프 위장복을 입고있다.

중간에 미국 그린베레 병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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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해병 수색중대(Force Recon)와 해군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팀이

IBS(inflatable boat)로 해변에서 합동훈련 중이다.

1965년 다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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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수색대는(US Marine Corps Recons) 정예 엘리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LRRP, SEAL, 스페셜 포스같은 부대와 유사한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그린베레의 중요임무였던 CIDG계획의 주요 조언자 역할을 수행했다.

 

해병수색대의 고유임무는 상륙부대에앞서 사전에 투입되어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주요시설폭파, 암살, 교란, 수중및 수상 장애물 제거 등의 임무들이 포함된다.

베트남에서는 북베트남의 해안선을 따라 장거리 수색임무에 투입되기도했다.

미해병대가 1965년 여단병력을 베트남에 투입하기전에 이미 수색대가

먼저 들어와 해안수색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때 제1수색중대에서 최초의 전사자가 발생하게된다.

수색도중 마주친 베트콩과의 전투에서였다.

 

 

수색대의 일단은 적진 100km까지 침투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그보다 더 짧은

거리를 수색했다. 수색조는 많게는 25명으로 편성되었으나 기본편성은 12명이었다.

더 작은 그룹으로서는 4명에서 6명까지의 소규모 장거리정찰팀(LRRP)을

구성하여 임무를 수행하기도했다.

 

전쟁이 격화되자 점점 더 많은 장거리 정찰임무에 투입되어졌다.

1965년 제1수색중대의 2소대는 스페셜 포스 팀에 배속되었고  

3소대는 트라 방 지역의 스페셜 포스 캠프에 합류하였다.

또한 MACV/SOG (비정규전 조직)에서도 활동했다.

주 무대는 라오스 국경과 북베트남이었다.

특수임무를 띄고 투입된 요원들의 정글에서의 구출도 수색대의 주요임무였다.

그들과 접촉하여 헬리콥터로 안전하게 후송하는 임무였다.

 

 

 

다음편엔 베트남전의 SEAL팀 활약상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머리 아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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