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의... SEAL 2편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10.07 20: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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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  

탐 노리스(토마스 놀란드 노리스) 중위가 배트21 아이샬 햄블튼 중령을

구해냈을 때만해도 베트남에남아있는 SEAL 팀은 하나도없었다.

 

1971년, 미국은 제1, 제2 SEAL 팀 모두를 철수시키고

포로구출 작전등을 수행할 장교3명과 9명의 SEAL 대원만 남겨두었던것이다.

남아있던 대원들은 주로 남 베트남군의 고문단형식으로 잔류하고 있었으며

머지 않아 이들도 미국으로 돌아가게되어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은 자신들이 교육시켰던

남 베트남 해군  SEAL 격인 LDNN(Lien Doc Nguoi Nhia)과함께

정보수집을위해 DMZ지역으로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주임무이기도했다.

이들은 통상2명의 미국 SEAL 대원과 4명의 LDNN대원으로 1개의팀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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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L과 LDNN
SEAL은 장시간매복 보다는 단 시간에 재빨리 임무를수행하고 빠져나오는 전술을 택했다.
스토너 기관총과 XM177E2-XM148 40mm 유탄발사기등 다양하게 무장했다.

 

 

 

배트21 햄블튼 구출작전이 있은지  6개월후.

1972년 10월31일밤,

노리스 중위는 정보수집을위해 팀을이끌고 DMZ 로 들어가게되었다.
북쪽은 노리스 자신이 햄블튼을 구해냈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많은 북 베트남 군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쿠아 강 남쪽의 남 베트남군 전초기지들 마저 이미 그들의 수중에 놓여있었다.

미군은 항공기로부터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게되자

SEAL 팀을 보내 정보를 얻고자했다.

 

노리스 휘하에는 3명의 남베트남 LDNN대원과

마이클 에드윈 숀튼 이라는1명의 미군 SEAL 하사관이있었다.
그들은 고무보트를 이용해 은밀히 북쪽, 6개월 전

노리스가 햄블튼을 구했던 곳으로부터 몇km 정도 떨어진 지점을 향해올라갔다.

만약 무슨일이 생긴다할지라도 이들을 지원해줄 항공기나

지원병력은 전혀 계획되어있지 않았다.

 

해안을따라 올라간 SEAL은 강줄기를따라 들어가 얕은 곳에 보트를 밀어넣어 숨겼다.

팀은 지금은 북 베트남군의 손에들어가있는 해군기지가 있는 북쪽을향해 도보로 이동했다.

북 베트남 군의 눈을피해 밤새 DMZ 깊숙한 북쪽까지 이동했으나

아침이 가까워질 때까지 그 어떠한 특기할만한 정보도얻을 수 없었다.

노리스는 해가뜨기 전에 철수를 결심하여 수 신호로 알렸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가운데 보트를 숨긴 장소까지 조심스레

남하하던  팀은 파도소리가들려오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제 캠프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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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에드원 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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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요란하게 울려퍼진 총성이 고요한 아침을 송두리째 뒤 흔들어놓았다.

강변쪽으로 향하던 SEAL을 발견한 2명의 북 베트남 군과 SEAL팀 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총성이 울리자 북 베트남군 증원병력들이 몰려들었다.

노리스는 대원들을 방어하기에 좋은 장소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그 동안 한명의 LDNN 대원이 엉덩이에 총상을 당했으며,

북 베트남군이 투척한 수류탄폭발로 숀튼도 양쪽다리와 등에 파편상을 당했다.

 

노리스는 해군 순양함에 함포사격지원을 요청하려했으나 북 베트남군과

너무 근접한 거리에있어서 아군함포에 되려 우군이 당하게되는 상황을 염려해야했다.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병력들이 몰려올 것이기에 노리스는 모험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정확한 좌표를 따서 5분 후 이 곳을향해 포격해주도록 순양함에 무전요청했다.

그리고는 숀튼과 부상당한 LDNN대원에게 먼저 보트를향해 달아나도록 지시하고

앞쪽에 들어가있던 나머지 대원에게도 무전기로 알려주었다.

빨리 빠져나가지 못하면 아군의 함포에 죽게될 판국이었다.

대원들이 보트를향해 달려가는동안 노리스와 한명의 대원이 엄호사격을 가했다.

 

잠시후, 노리스와함께 엄호사격을 가하던 LDNN대원은

날아온 총탄이 노리스의 머리왼쪽을 때리는 것을 목격했다.

노리스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피를 흘리며 함몰된 노리스의 머리를보고는

죽었을 것이라 판단한 대원은 보트를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보트에 도착하여 노리스를 기다리던 숀튼은 혼자 달려온 대원에게 물었다.

 

"노리스 중위는?"

이에 대원은 다급하게 큰 소리로 외쳤다.

 

 " 그는 죽었어! 빨리 빠져나가야해!"

숀튼은 결코 전우를 뒤에 남겨두고 가지 않는다는 SEAL의 불문율을 지켰다.

 

"나는 지휘관없이 혼자 돌아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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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튼은 빠져나왔던  자리로 다시 되돌아 달려가 미친 듯이 노리스를 찾아헤맸다.

그러다 두명의 북 베트남 군과 노리스를 중간에두고 마주치자

그 자리에서 M60 기관총으로 그들을 사살해버렸다.

숀튼은 쓰러져있는 노리스가 아직 숨이 붙어있음을 느꼈다.

노리스를 어깨에맨 숀튼은 보트를향해 달리기시작했다.

강변을향해 달려가는동안 등 뒤에서 무수히 뿌려진 총탄 속에서도

두 사람모두 기적처럼 한발도 맞지 않았다.

 

 

그러는동안 천지를뒤 흔드는 함포가 작렬했기 때문에 LDNN대원들은 재빨리 빠져나갔다.

숀튼은 물로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헤엄을쳐 먼 바다로 도망쳐나갔다.

북 베트남군의 사격은 계속되었다.

숀튼은 노리스의 구명자켓을 부풀린 다음 총상을입은 머리에 물이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하며 먼 바다로 계속 나아갔다.

정오 무렵, 두 사람은 남 베트남 해군함정에의해 구조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73년10월15일

숀튼은 명예훈장을 수여받기위해 백악관으로 들어갔다.

머리에 중상을입은 노리스는 베데스다 해군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치명적 총상을입었던 노리스는 병원에 장기간 입원 후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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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21 아이샬 햄블튼 중령구출작전을 성공시켜 명예훈장을 받은

노리스와 2급명예훈장을 수여받은 구엔 반 키에.

명예훈장을 받을만큼에 버금가는 큰 공을세웠지만 명예훈장 심사대상에

오르지 못한 병사를 대상으로 해군은 엄격한 심사를거쳐

국가 2급명예훈장으로서 해군십자장을 수여했다(왼쪽사진)

물론 대통령의 재가를받아야했으며,

포상자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해군장관에게 수여를 명하게된다.

 

1919년2월4일 제정되어 1917년4월6일자 부터 소급적용된

해군 십자장 수여자격및 대상은

해군, 해병대, 연안 경비대에 종사하는 전 장병들이 포함된다.

 

1942년8월7일. 미 정부는 국회의 의결을거쳐

3급이던 해군 십자장을 전시공로훈장으로 승격시켜

매달 오브 아너를이은 2급명예훈장으로서 법률로 공식공표하게된다.

따라서 해군 십자장은 1942년8월7일부터

미국의 2급 국가명예훈장으로서의 법적효력을 갖게되는 것이다.

노리스와 1st 준 사관 계급장을 단 숀튼(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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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튼이 베트남 전쟁의 명예훈장 마지막 수훈자이지만
노리스가 병원에 입원해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숀튼이 수여받아
결과적으로는 노리스가 마지막 수훈자가된다.
두 사람은 노리스가 퇴원하여 수여받을 때 함께 백악관으로 들어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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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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