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둘리틀 특공대...2편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11.04 19: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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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틀은 임무에 관한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지원자들은 뭔지는

모르지만 아주 중대한 임무에 투입될 각오를 가지고 훈련에만 열중해야했다.

그동안 폭격기는 미니에폴리스에서 연료탱크 증설작업이 진행되었고,

또한 폭격대상 도시들의 피해상황을 촬영하기위한 카메라도 장착했다.

카메라는 첫 번 째 폭탄이 폭탄 창에서 투하됨과 동시에 자동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또한 10대의 폭격기에는 16mm 무비 카메라가 장착 되었다.

 

 

B-25폭격기의 항속거리를 연장시키려면 연료 적재량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선 둘리틀 중령은 폭격기의 하부선회포탑을 제거하고 거기에 추가연료탱크를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또한 후미의 기관총도 제거하도록 했으며

기수의 30구경 기관총 1정만을 남겨놓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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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기에는 3개의 연료탱크가 추가로 탑재되어야했다.

좁은 공간에 연료탱크를 추가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아 많은 시행 착오를 가져왔다.

처음엔 맥케이 사에서 제작한 265갤런 짜리 강철 연료탱크를

콘티넨셜 항공사 기술자들이 폭탄 창에 설치했다.

 

그러나 연료가 누출되는 단점이 발견되자 인디애나 주에있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고무 주식회사에서 제작한 225갤런 짜리 누출차단 탱크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통로에 160갤런, 작은공간에는 10개의  5갤런짜리 깡통들을,

동체 후미기총을 제거하고 60갤런연료탱크를, 또는 선회포탑에 60갤런짜리 누출방지

연료탱크를 설치하는등 약1100갤런이 넘는 연료를 적재할 수 있도록 개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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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후부의 기관총들이 제거되자 어떤 조종사가 적을 속이기위해 빗자루를 검정색 페인트로

칠하여 기관총으로 위장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이것은 즉각 채택되어졌다.

 

 

교신은 엄격히 금지될 것이기 때문에 약100kg의 무게를가진 무전시설도 제거되어 중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전기를 제거함으로서 기체의 중량은 줄였으나 이 때문에

폭격 후 착륙지인 중국의 상황을 알 수 없어 참상이 가중되었다는 지적도있다.

 

모든 폭격기에는 속도를 떨어뜨리는 결점이 있었지만 결빙방지장치가 설치되었다.

이것은 중국 쪽은 별 필요가 없었으나 만약 추운 블라디보스톡으로 비행한다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소련의 착륙거부로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폭격은 450m이하의 저공에서 실시할 것이기에 당시 최고의 극비로 분류된

노던 폭격조준기를 제거하고  20센트의 저 비용을 들여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라

불리우는 알루미늄 조준기를 만들어 장착했다.

이것은 제11번기 조종사 챨스 로스 그리닝 대위가 개발한 작품이었는데

450m상공에서 폭격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저공에서는 아주 정밀한 폭격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덕분에 극비의 장비가 적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차단 되었다.

특공대는 텍사스, 뉴 멕시코 지역을 비행하면서  송전탑 보다도 더 낮은 고도를

유지하여 폭탄을 투하하는 훈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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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훈련 중인 둘리틀 특공기

 

폭탄은 TNT와 아마톨(Amatol - TNT와 질산 암모늄의 혼합물)을

각각 절반씩 혼합하여 만든 500파운드(227kg) 특수파괴용폭탄이 적재된다.

폭탄에는 2개의 신관이 장치되었는데 기상이 좋지 않아 아주 저공에서 폭탄을

투하해야할 경우를 대비하여 한 개의 비상 저공용 신관이 추가 되었던 것이다.

폭탄은 120개의 소이 자탄을 가지고 있었다.

후속기는 선도기가 특수폭탄을 투하하여 화재를 일으키면 그 화염을 보고

일제히 폭탄을 투하하게된다.

 

122579468681700.jpg항모 호네트 함상에서 둘리틀 중령이 특공대원들과 500파운드 폭탄 신관 조작 훈련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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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명의 지원자들은 전원이 작전에 투입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병사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에 열중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둘리틀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수준에 미달되는 승무원이나 훈련 중  환자발생에 대비하여 2배 수 정도의 지원자를

모집했던 것이었다. 그 중 만족할 만한 기량을 지닌 자들만을 선발하기위한 방안이었던

것이어서 오직 15대의 폭격기에 탑승할 75명만이 작전에 참가할 수 있을 뿐이었다.

 

조종사들은 극히 짧은 활주거리에서 이륙하는 조종교육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불안해했다. 그러나 인내심 강한 헨리 밀러(Henry J. Miller)해군중위의 열성적인

교육덕분에 조종사들은 빠른 속도로 어려운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둘리틀은 육군조종사들이 해군 교관의 지시를 잘 따라주어서 안도했다.

 

에그린 기지의 한 모퉁이의 두 개의 활주로에 흰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활주로 옆에는 끝부분을 나타내는 깃발을 세워 조종사들이 참고하도록했다. 

밀러 중위는 213m의 거리를 활주하여 폭격기를 이륙시키는 시범을 보였다.

다음은 특공대원들의 차례였다.

조종사들은  폭격기 엔진을 최대로 회전시킨다음 브레이크를 풀고 흰 선을 향해 달려나갔다.

rpm을 급격히 최대로 올리다보니 엔진에 과부하가 걸렸다.

하지만 짧은 활주로에서 이륙하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폭격기가 흰 선에서 겨우 30cm정도의 여분만을 남겨두고 이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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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린 기지의 둘리틀 특공대 B-25B 폭격기의 이륙훈련.

오른쪽 흰 깃발이 가상의 항모 비행갑판 끝 지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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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네트 비행갑판의 폭격기 발함 시의 대형

 

항모 비행갑판의 활주거리는 오직 142m밖에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항모에서는 바닷바람과 항모의 속력등이 짧은 활주거리를 어느정도 상쇄해준다

할지라도 질주할때 자칫 0.1초라도 실수하면 실속을 일으켜 바다에 추락할 위험이

매우컸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훈련되었다.

훈련 중 한명의 조종사가 이륙에 실패하여 폭격기를 크게 손상시켰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폭격연습은 모래 주머니로, 사격연습은 대부분이 실탄없는 기관총으로 이루어져

실탄사격은 그리 많이하지는 못했다.

 

작전에 자원한 군의관 토마스 로버트 "닥" 화이트 중위에게 맡길 수 있는 임무라고는

기관총수밖에 없었다. 화이트는 그 임무를 아무런 불만없이 맡았는데 사격 평가에서

2번 째로 높은 명중률을 기록하여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122579492681994.jpg연료 증설 작업을 하는 동안 헌병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미군은 둘리틀 특공대의 일본 본토 공습작전에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우려하여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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