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진주만 정보수집
미국이 태평양 함대를 진주만으로 전진배치했을 때
일본 군령부는 진주만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고자 하였다.
처음엔 호놀루루에 있는 총 영사관에게 군사정보 수집을 명령하려 했으나
결국 군인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사관은 이전 부터도 첩보활동을 해왔으나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군령부는 외무성에 이같은 사실을 극비로 전달하고 협조를 구했으며,
해군장교를 총영사관 직원으로 위장하여 호놀루루에 파견할 것이라는
군령부의 요청을 외무성이 허가하였다.
그 인물은 요시카와 다케오라는 일본해군 정보부 제 3국 소속의 해군소위였다.
그는 원래 소위로 복무했다가 몸이좋지 않아 전역한 예비역으로서
다시 복귀명령을 받고 현역으로서 사무직에 재직중이었다.
미남이며 학창시절에는 검도 챔피언이기도했으며
해군사관학교 생도시절에는 수영선수권 챔피언이었던 그는
만성위장병 때문에 전함승선의 꿈을 접고 군복을 벗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상부로부터 미해군 함선에 관한 공부를하라는 명령을 받게된다.
그리고 얼마 후,
오전근무는 외무성에서, 오후 근무는 군령부에서 하라는 명령을 받게되었다.
이어서 앞으로 하와이 총영사관에서 위장근무하게될 것이고 이것은 극비로서
가명을 써야한다는 지시와함께 요시카와는 모시무라 타다시라는 가명으로서
외무성의 삼등서기관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1941년 3월, 가공의인물 모시무라는 합법적으로 호놀루루 부두를통해
일본 총영사관으로 들어가게되었다.
공격받기 전의 히컴 공군기지 정문
총영사는 스파이 임무를 받고 온 이 젊은이를 보고는 무척놀랐다.
도무지 스파이짓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멋진 29살의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심받을 짓을 철저히 삼가하면서 하와이주둔 미 함대와
군사시설에대한 첩보수집활동에 들어갔다.
호놀루루 시내를 비롯하여 오아후 섬을 드라이브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진주만과 히컴 비행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한 술집에서는
매너좋은 단골손님으로 통하게 되었다.
모시무라는 진주만의 함선 수용능력, 함선의 비율, 함선 계류지점,
미해군의 습관, 항공기의 초계활동, 새로운 군사시설 등에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미함대의 출항에 걸리는시간과 함대의 대형등에 관한 정보였는데
이것은 일본군이 공격하였을 때, 혹은 공격개시 전에 미국함대가 진주만내에서
도망갈 경우를 대비한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그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찻집을 출입하는 미해군 병사들의 대화도 엿들으며
첩보를 수집했으며 기상학자를 찾아가 진주만의 기후에 대해서도 묻고 다녔다.
물론 스파이로서 의심받을만한 행동은 일체 하지않았다.
사실상 진주만은 스파이활동을 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진주만 전체가 관광코스였기 때문에 누구나가 자유롭게 관광을 즐길 수 있었고
심지어 해군기지와 비행장도 종종 일반에 개방되어 견학장소로 이용되었다.
카*헤 비행장을 정탐하기 위해 총영사관의 여직원과함께 유람용 보트를 탔다가
밑바닥에 설치된 유리를통해 진주만 내의 수심이 너무얕다는 것도 발견하게되었다.
모시무라는 미국함대가 주말에는 어김없이 귀항하며 오아후 섬의 방어태세는
너무나 허술하다는 첩보를 일본에 전달하였다.
이때문에 일본군은 함대가 모두 모여있게될 휴일공격을 선택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더 악화되자 일본본토에서는 보다 더 광범위한 첩보활동을
명령하였고 모시무라는 그 이유를 알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스파이 활동에 전념하였다
요시카와 다케오(모시무라 타다시). 나카오 기타 호놀루루 총영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시무라와 기타 총영사(등을보인 사람)
그러나 오래전부터 일본의 고민은 동양인이 활발하게 첩보활동을 전개하게되면
그 피부색 때문에 아무래도 눈에 잘 띄게되는 약점에있었다.
그래서 일본 첩보당국은 동맹을맺고 있던 독일에게 협조를 요청하게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은 독일선전상 괴벨스가
자신의 애인을 포함한 그 일가족을 하와이에 간첩으로 보내게된다는 것이었다.
괴벨스는 자신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이 탄로나자 곤란에 처해있었는데
그때마침 일본으로부터 협조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괴벨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애인인 루스 케엔 일가족을 선택하였다.
1935년, 루스의 아버지 오토 케엔(otto kuhn)박사는 일본어와 고대 하와이역사를
연구하기위한 목적으로 미국에 이주하여 자연스럽게 일본 총영사관과 연결되었다.
그는 딸과함께 하와이를 여행하였고 일본어 연구를 핑계로 일본영사관을 자주 출입하였다.
어머니는 호놀루루 시내에 미장원을 개업하여 미해군 고급장교 부인들을
손님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되었다. 자주 파티를열며 사람을 사귀었던
이들 가족은 1년 후 진주만으로 이사를가게된다.
그러나 미장원은 계속하여 성업을 이루었는데, 그 이유는 하와이에
유럽스타일의 머리를 할 줄아는 미용사가 별로 없었던 때문이었다.
루스도 미용을 할 줄알아서 장교부인들의 인기를 모았다.
이들가족에게는 일본 영사관 직원(스파이)과 함께 하와이 지형과 해안선조사,
태평양 함대의 동향조사 등등을 수집하라는 임무가 내려져 있었다.
오토 박사의 부인은 2번에 걸친 장기간의 여행을떠났는데
그 여행지가 도쿄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부인은 일본에 도착하여 그동안수 집한 미군의 정보들을 보고하였고
일본은 그 보답으로 거액을 계좌로 송금하였다.
루스의 동생 한스도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모두 가족에게 알려주는 등
온가족이 스파이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미일관계가 악화되자 가족은 다시 이사를하게되는데 그곳은 진주만이
훤히 바라다보이는 오아후지역 언덕지대의 야자나무 숲에 지어진 별장같은 집이었다.
일본은 집구입 비용으로 14000달러를 제공했다.
여기에서 루스는 일본 잠수함과 등화로 암호를주고받았다.
물론 그 조명으로 이루어지는 신호방법은 일본 영사관이 교육하였던 것이다.
또한 미리 계획하여 세탁물을 건조대에 얹는 방식을 이용하여서도 정보를 알려주었다.
오토박사의 가족들은 1941년 12월 2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있기 며칠 전에
해상에 잠입한 일본군 잠수함과 조명신호를통해 진주만의 함대동향에관한
전반적인 첩보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진주만 공격 하루전, 만이 함대로 가득차자 폭격해야할 지점과
해서는 안되는 지점을 알려주기도하였다.
일본군은 공로를 치하하고 행운을빈다는 암호를 보내주었다.
이제 일본군은 루스의 가족을 하와이에서 빼내올 작전을 개시하였다.
진주만 공격 당일, 일본군 잠수함 한 척을 이용하여 가족을 구출하는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일요일 아침, 루스의 가족은 잠수함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면서 폭격당하는 진주만의 상황을 언덕 반대쪽의 일본인 스파이에게
신호로 알려주었고, 그것은 다시 영사관으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일본군의 폭격이 너무나 정확하자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미국 정보부가 긴급하게 움직이기시작하였다.
정보부원들은 폭탄의 비를뚫고 의심되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루스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가족들은 모두 쌍안경으로 진주만 폭격모습을
보면서 정보를 전달하느라 그들의 방문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은 그자리에서 체포되었는데 진주만 공격 95분 가량 중
80분만의 정보가 신호로 보내진 까닭이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 도중에 체포당했던 것이다.
일본군 잠수함으로 도망가기위해 챙겨놓은 가방 속에는
많은 액수의 달러와 일본 지폐가 발견되었다.
독일 선전상 괴벨스의 정부였던 딸과함께 진주만에 잠입하여
일본의 스파이 노릇을한 독일인 베른 할터 오토 케엔.
그는 체포 후 스파이 행위를 인정하지않다가
미군 정보부가 제시한 전문들을 보고는 범행을 시인했다.
가택수색을통해 얻어진 증거물에의해 가족은 재판에회부되어
아버지 오토 케엔과 딸 루스 케엔은 유죄로서 사형을선고받았고
어머니와 동생은 석방되었다.
그러자 아버지 오토는 딸을 살리려 청원을하게되고 독일의 모든정보와
하와이에서의 일본군 첩보망에 대해서 실토하였다.
여기에서 루스와 괴벨스의 애정관계가 밝혀지게된 것이었다.
결국 딸은 목숨을 건졌으며 아버지는 중노동 30년 형으로 감형되어 복역한 후
독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루스는 8년 이상 100년까지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의 여자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여기에서 5년 간 복역한 후, 감형되어 독일로 추방당했다.
복역 중 너무나 늙어버린 모습의 그녀는 정보부원의 감시 아래 뉴욕 항에서
독일로 향하는 배에 태워졌던 것이다.
가족의 미국 내 재산은 모두 몰수되어 경매에넘겨졌다.
일본군 i -15급 잠수함
일본에서 암약 중이던 신화적인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가
1941년, 중대한 첩보를 입수하여 소련에 전달하게된다.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고 천연자원을 얻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는 정보였다.
이렇게되자 소련군은 일본의 침입에대비하고있던 시베리아 주둔 사단병력을빼 내
독일군과 싸우게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일본이 소련과의 전쟁에 참여하길 바랬지만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결국 재앙과도같은 결과를 맞이하게된다.
조르게는 1941년 10월, 소련으로 또 하나의 중대한 정보를 보내려했는데
이것은 일본이 60일 이내에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라는 충격적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정보는 소련으로 보내지기 직전에 체포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소련은 이에 앞서도 비슷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했지만 일본에서 너무나 먼 거리에
위치한 하와이 제도까지 들키지 않고 올 수 없다 하여 믿지않았다
기습준비를 완전히한 일본....
그러나~~ 미국은??
과연 진주만은 어떻게 될것인가???
5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