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영어학교.

미연시다운족 작성일 09.01.03 01: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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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방경비대의 행진 모습>

 

1945년 12월 5일 미 군정청에 의해 '군사영어학교' (Military Language School)가 설치됩니다. 개교식에는 미군정장관 '하지' 중장과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이 참석하여 축사를 했습니다.  서울시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의 건물을 빌려 설립된 군사영어학교는 애초에 '기초적인 군사영어 해독이 가능한 미군 지휘관의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시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영어실력에 따라 A,B,C,D 등 4개반으로 나누어 군사 영어 이외에 국사, 참모학, 소총 분해, 자동차 운전 등의 교육을 받았죠. 하지만 군사영어학교의 설립에는 이런 실용적인 목적 이외에 해방이후 난립했던 좌, 우익 사설(私設) 군사 단체들을 정리하겠다는 미 군정의 의도도 있었죠. 국군의 역사에서 군사영어학교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학교에서 건군의 주역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초 미 군정은 군사영어학교의 정원을 60명으로 예정하여 광복군 출신 20명, 일본군 출신 20명, 만주군 출신 20명으로 할당하여 학생을 모집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에 있던 광복군은 자신들이 개선하여 건군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군사영어학교에 참가하는 것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 때문에 군사영어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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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초기 국방경비대의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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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8월 이후 신 복식 개편 복장 좌:장교 우:사병>

 

실제 군사영어학교를 통해 임관한 장교 110명의 이전 경력을 살펴보면 일본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 일본육사 출신이 12명, 학병(학도특별지원병, 명칭과는 달리 대부분이 강제 징집이었던) 출신이 72명, 지원병 출신이 6명이었고, 만주군 출신이 18명, 중국군(광복군) 출신이 2명이었습니다. 마땅히 건군의 주역이 되어야 했을 광복군 계열이 불참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또 미소의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군사영어학교 학생들도 양분되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죠. (실제 이 학교 출신 임관자 중 상당수가 이른바 '숙군' 과정에서 희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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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경비대 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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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5월 1일 개교한 조선 경비사관학교 정문>

 

 

군사영어학교는 이듬 해인 1946년 1월, 국군의 전신인 '남조선 국방 경비대'가 창설되면서 지금의 육군사관학교가 자리한 태릉으로 이전하여 4월말 폐교(5월 1일 조선 경비 사관학교 개교)할 때까지 모두 110명의 장교를 배출하였습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들은 이전 군경력에 따라 대령에서 소위까지 계급을 받아 임관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새롭게 창설된 국방 경비대의 기간요원으로 활약하게 되죠.  군사영어학교 출신 임관자 110명 중 한국군의 별을 단 사람은 모두 68명에 이릅니다.

 

글출처: 곰PD의전쟁이야기

사진출처:곰PD의전쟁이야기/국방일보/오마이뉴스/본인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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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사진소개는 본인은 원문글보다 추가해서 좀더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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