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새벽 칼바람이 부는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해병대 서용운 중사가 시외버스 승객 19명을 인질로 잡고 ‘귀신 잡는’ 해병대요원과 숨쉬기도 어려운 팽팽한 대치를 하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해 극도로 흥분한 서 중사는 버스안에 크레모아를 설치해놓고 한손에는 크레모아 격발기를, 또 한손엔 장전된 M16소총을 들고 “도망간 아내를 데려오라” 고 소리를 질러댔다. 서 중사나 서울진입을 막고 있는 해병대원 모두 탈출구는 없었다.
정적을 깨듯 통제된 고속도로를 통해 허름한 봉고차 한대가 나타나 머리부터 온통 검은색의 복장을 한 10여명을 내려 놓았다.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트렁크에서 망원렌즈가 달린 저격용소총, 기관단총 권총 등 온갖 무기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잠시후 작전개시를 알리는 ‘저격’ 명령이 떨어지자 행동이 기민해지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출발” 검은 복장의 2명이 허리를 90도로 꺽고 지그재그로 시외버스 앞쪽으로 내달리자 버스창밖으로 소총이 난사됐다. 서 중사의 시선이 앞쪽으로 쏠리는 틈을 이용해 다른 한켠에 있던 2명이 버스밑으로 신속하게 숨어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버스후미의 범퍼를 밞고 올라서 있었다. 한발의 총소리를 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86년 12월3일 있었던 소위 ‘추풍령 무장탈영병 사건’ 의 전말이다.(당시 일반인에게 서 중사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말 없이 왔다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영화의 한장면처럼 사라진 검은 베레모에 칡흙같은 검은 옷을 입은 대원들이 바로 국군 대테러부대인 ‘707특수임무대대’ 요원들이다.
제목 : [앞과뒤] 군 자살이 많은 이유(이준희 사회부차장) 1998-12-20 18:36:49 본문 : 1/4 ───────────────────────────────────────
요즘 새삼스럽게 기억에 떠오르는 오래된 사건이 있다. 86년 연말 경부고속도로추풍령휴게소에서 폭발물과 M16 자동소총을 든 모부대 중사가 시외버스 승객을 인질로 잡고 18시간이나 군과 대치했던 사건이다. 당시 엄청난 병력을 동원하고도 수십명 인질이 다칠까봐 어쩌지 못하던 군은 결국 특전사 대테러부대요원을 투입, 인질범을 사살하고 승객들을 전원 무사히 구출해 냈다. 기자들은 마치 영화장면과도 같은 이 기막힌 작전에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이렇게 뻔히 현장을 지켜본 기자들 앞에서 군은 눈도 깜짝 않고 인질범이 자살한 것으로 공식발표했다. 말썽의 소지는 조금이라도 용납못하는 강박증과 방자한 권위의식의 표출이었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보다 앞서 84년 당시 전북 군산시 도심 한복판 관광호텔에서 수백명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질극을 벌이던 군인 2명이 사살됐을 때도 역시 군의 발표는 자살이었다. 「관행」이 이러할진대 그많은 군내 의문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매년 400명에 달하는 군내 사망사건은 대부분이 자살, 혹은 본인의 결정적잘못에 따른 사고사로 발표된다. 그 와중에서 머리와 양가슴에 3발이나 총탄을 맞은 시신도 버젓이 자살체가 되는가 하면, 밝고 쾌활했던 성격도 원래 우울하고 내성적이었던 것으로 바뀌어 부모, 형제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현장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유족이 반박증거를 찾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유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망사건이 연평균 20여건이나 되지만 당초의 사인이 번복된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군이 비판여론에 몰릴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것이 사기문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진실과 상관없는 강요된 자부심이 사기로 착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군내 의문사에 대한 전면 재조사는 「진짜」 사기의 근거인 신뢰를 세우는 작업이다. 설사 몇몇 사인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인다해도 그건 민군관계의 정립을 위한 불가피한 진통쯤으로 받아들이 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