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제공] 금강산과 맞닿은 동쪽끝 GOP부대

dugue29 작성일 09.02.24 01: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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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강원대 김상훈 교수 (www.kishkim.com)
글 : 심지운 중위 (22사단 공보장교)
자료제공 : 육군 본부

갑작스런 폭설이 강원도 영동지역을 사납게 물들였다.
지난밤부터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한 눈발은 새벽의 빗장이 열렸을 즈음엔 때 아닌 폭설로 그 질감을 바꾸었다.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스산한 바람은 산기슭을 휘감고 계곡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고도가 높은 산 위에서 맞는 바람은 제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이곳은 마치 바람의 요람인 양,
훈풍으로 살갑든, 광풍으로 요란하든 모든 바람은 이 고지(高地)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달음질치는 듯하다.

통신장비를 하나하나 체크하고 조심스럽게 실탄을 장전하고 도열한 장병들.
눈앞에 굳게 닫혀있던 통문이 철커덩 열리면 그들은 조심스레 가벼운 발걸음을 천천히 떼기 시작한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잠든 새벽. 차고 시린 공기가 살갗을 위협할 때
그들은 검은 하늘에 홀로 빛나는 북극성과 같은 눈빛으로 매복지에서 새벽의 빗장을 굳게 지킨다.
사회에서 익히고 배운 습관과 삶의 규칙은 조금씩 군인에게 요구되는 규율과 방식으로 서서히 바뀌어가고
그런 바꿈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그들은 다시 태어난다. 대한민국의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최전방 GOP부대에도 별빛은 고르게 내려앉는다.
전군에서 유일하게 GOP와 해안을 담당하고 있는 이곳. 산과 바다를 둘러싸고 똬리를 틀고 있는 철책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저 산의 신음과 바다의 시름은 해마다 명절이면 노구(老軀)를 이끌고 민통선 안 통일전망대를 찾는
이산가족의 가슴앓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으리라. 허리 잘린 산하의 모진 삶은 검은 장막이
수놓는 어두운 새벽, 순찰자들이 조심스레 내뿜는 따뜻한 입김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위로 받는지도 모른다.

이제 기억 속에서 이곳에서의 작은 흔적도 한 개의 나이테가 되어 단단히 여물어갈 테다.
차갑게 굳어가는 풍경 너머로 추억의 빗장이 열리면 언제고 또 기억으로부터 불러올 수 있을 테지.
그렇게 세월에 묻혀가고 어느새 또 다른 일상에 몸을 누인 내게 불쑥 찾아들, 그런 날이 오겠지.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본 새벽하늘엔 시린 공기만이 나처럼 서성이고 있다.
소총을 처음 잡았을 때의 그 차디찬 철의 감촉을 나는 이제 다시 느껴볼 수 없으리라.
식당 한켠에 고이 접은 손수건처럼 놓인 내 이름 석자가 선명한 식판에도 추억의 향기가 묻어난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끝없이 앞으로 고개를 향하는데, 아쉬움 가득한 내 발걸음은 잠시 주춤거린다.
이제는 흐린 잔영으로 아른거릴 추억이여. 낡은 라디오 음성처럼 무뎌질 기억이여.

* 사진설명
1. 최전방임을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표지판
2. 동쪽끝 최전방을 철통경계하고 있는 육군장병들....사진 우측으로 동해안과 금강산의 구선봉,
그 앞의 감호가 보인다.
3. 통문 투입 절차 중 하나인 투입자 서명.
4. 통문 투입 전, 수색대원들의 장비를 점검하는 대대장.
5. 통문 투입 전, 손을 맞잡은 수색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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