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입니다 ``
이곳은 음 9시 48 분
오늘은
7년전쟁의 중부 -프랑스의 승리 - 편입니다
Battle of carillon 현재 뉴욕에잇는 Ticonderoga 라는지역에서 일어난 전투이지요
1758 년 7월 8일 12시 30 분경 전투는 영국군의 진격으로시작되지요
그에앞서 당시 7년전쟁의 상황은 프랑스의 승리가 연속되는 상황이엇고
영국은 믿엇던 대륙군의 패배와 유럽전쟁상황에서도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자
대륙을포기하고 유럽을 택하냐 , 유럽을 포기하고 우리땅지키면서 신대륙에서
싸우자 둘중에 하나인상황이엇죠
7년전쟁의 시작인 미요르카 섬 전투에서 스페인 프랑스 연합함대에게
함대를 전멸당하고 섬마저 빼앗겨 대서양의 패권을 잃고잇던순간 (전쟁초기 )
영국은 결국 유럽에 상륙하느니 대륙을 얻는게 낳다 하여
유럽에서 전투는 방어모드 대륙은 공격모드로 전환 하게됩니다 .
그리하여 영국은 총 15만에 달하는병력을 7년전쟁동안 대륙으로 보내게 되는데
영국은 15만의 병력외에도 이미 대륙에는 민병대 포함 20만정도의 병력이 준비되잇던상태엿죠
말그대로 전술로밀리면 화력으로 쏟아부어주마 라는작전
하지만 프랑스역시 영국의 작전을 간파 어마어마한병력을 캐나다 (퀘벡) 으로 보내게 되는데
당시 배의 수준으로는 적어도 몆개월은 항해 해야하는거리엿고 또 가는도중 적을만나면
싸워야되고 등등의 문제로 프랑스 의 지원군은 9월쯤 도착예정이엇죠
영국의 지원군 은 6월초에 모든전선으로 지원되고 영국은이제 프렌치들에게 패배를되갚아줄
타이머를 작동시킵니다.
한편 비상이걸린 캐나다의 모든프랑스군은 지원군이 오기전 어떻게 버티냐를 간구하던도중
영국군 제임스 에이벌크럼비 장군이 인디언포함 22000에 달하는병력으로 현재의 뉴욕
ticonderoga 지역에잇던 프랑스군요새 로 진격한다는 소식이 전해옵니다.
요새의 지휘관 프랑코아 샤를 대령은 급히 지원군을 구하러 전령을 보내고
퀘벡에 주둔하던 " 몬캄" 장군이 지원군을 이끌고 6월 21일 쯔음에 도착합니다.
허나 요새를 지키던병력은 고작 600명정도엿고 몬캄장군이 끌고온 지원병력은 겨우 3500명
샤를대령은 자신의 인디언부하들에게 정찰을 지시하고
현재의 카리용요새
영국군의 루트
빨강색으로 제가 표시한곳이 영국군의 루트입니다.
제임스장군은 조지 강상류에 상륙하여 레이틀스네이크 산을 가로질러 진격하는 지름길을
놔두고 우회하여 진격하는길을 택합니다.
매복의 위험과 적을 갈라놓기위함이엇죠
몬캄장군 ( 후 퀘벡전투에서 전사 )
은 자신들의 부하에게 샴플레인강변에 참호를파라고 지시를하게되고
그말은곧 요새와 좀거리를둔다는말이엇죠
샤를대령은 밖에서 대기하던 자신들의병사를 요새안으로 들어오라 지시를하게되고
그렇게 서로 요새와 밖의 몬캄의 부대는 떨어지게됩니다.
후에 영국군이 도착 6000명에 달하는 하이랜더와 다른보병 척탄병 인디언들을 포함한
2만명의 영국군은 쥐방울 만한 요새를 보고 공격준비를 하게됩니다
영국군들은 몬캄이 땅을파고 기다리고 잇단것은 모르고잇엇지요
여기서잠깐- 샤를대령은 vaudreuil 장군의 지휘하 에잇던 장교 엿고
vaudreuil 장군은 몬캄장군의 라이벌격이엇죠 몬캄장군 과 샤를대령은 그래서 서로의부대를 분리시킨거
라고도하구요 ?
음 믿거나말거나
여튼 영국 제임스장군은 몬캄이 숨어잇는지고모르고 부대의 절반을 북쪽루트로 보내게됩니다
그리고 요새에대한 공격이시작되고 몬캄에비해 전투경험이 부족햇던 제임스는
숫자만많으면 되는거아냐 ? 하며 공격을 개시합니다 . 하지만 그 의 부대가 강변쪽에 자리를잡을쯤
참호에잇던 프랑스군이 마구잡이로 총을 쏘기 시작합니다
뭐뭐지 하던 영국군은 요새로 공격하라는명령만 받앗기에 앞뒤에서 총알이 날라와도 진격할수밖에없엇죠
그결과 엄청난 숫자의 영국군이 쓰러지고
그 보고를 받은 제임스는 자신의 병력을 다시 반으로 쪼개여 반은 요새 반은 몬캄에게 진격을 명령합니다
몬캄의 부하들은 모두 베테랑급 병사들이엿으며 요새에잇던 병사들또한 죽기를각오하고 싸우던터엿고
영국군또한 베테랑도 잇엇지만 2만의 병력중 절반이 영국에서 갓건너온 어린아이들이라 영국군에겐
지려고 하는전투나 다름없엇죠
허나 숫적으로 밀리는 프랑스군은 요새에서 결국 육탄전을 벌이게되고
3시간이 지날쯤 영국군의 공격을 막고 재정비하던 몬캄부대는 요새가위험하단걸 알게됩니다
하지만 몬캄은 영국군에게 포위된 터라 움직일수없엇고 결국 자신의 모자에 칼을꽂고
요새쪽으로 소리를질러 상황을 물어봅니다.
하지만 요새에서는 함성만들릴뿐이엇고 몬캄은 요새가 함락됫다 하더찰라
30분정도가 지나고 요새 의 꼭대기엔
프랑스 대륙군의 깃발이자 카리용요새의 깃발이 올려집니다
요새가 함락될줄알앗던 몬캄의 부대는 용기를얻엇고 다시진격해오는 영국군을
독오른 용기로 모두 닥치는대로 쏴죽입니다.
카리용전투의 리인액트 입니다.
당시에도 이랫겟지요
닥치는대로 죽인 프랑스군은 몬캄의 선두아래 모두 요새쪽으로 진격을하게되고 영국군은
진열이 무너진상태에서 돌격해오는 프랑스군을 보자 프랑스군의 배가되는병력이 다짜고짜
도망을 치게됩니다.
몬캄의 선두아래 진격하는 프랑스군
몬캄장군
영국군의 진영은 곧 모두 무너지고 제임스장군을 포함한 모든병력이 조지강 상류에 대기하던 함선으로 모두 줄행랑을
치게되죠 .
프랑스군의 진형
전투가 끝난후 요새에서살아남은자는 150명이엿으며
5시간정도 지속된전투에서 프랑스군 몬캄장군 부대의 사망자는 100명 500명정도가 부상
그리고 영국군 제임스 장군의 피해는 사망이 3000명 부상이 6000명에 500명정도가 강에서 익사
300명정도가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히게됩니다.
지원군의 도착으로 사기가 불어잇던 대륙군으로썬 어이없이 그지없는 패배엿고
지원군의 도착때까지 전선을 유지 지켜야만 햇던 프랑스군으로써는 희망을 안겨준 승리엿습니다.
하지만 이전투후 전세는 점점 프랑스군에게 불리해져갓으며 (대륙에선 이기다 , 유럽내 전투에선 패배 )
결국 후에는 퀘벡을 빼앗기고 되찾고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으로 빼앗긴후 전쟁이끝나며 캐나다는
영국땅이되고맙니다.
허나 전에도말햇듯이 프랑스 캐나다인 이라 불리는 퀘벡인들은 자신들의 상징으로
아직도 그당시 프랑스군의 상징이던 이깃발을 퀘벡시의 깃발로 사용하고잇습니다.
전투후의 몬캄과 그의부대 많은숫자가 다치긴햇으나 영국군에비하면 비교도안될정도엿으므로
프랑스에게 기대의외의 승리를 안겨준 몬캄은 그이후 퀘벡의 사령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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