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매뉴얼, 일병은 방법없다 1부

행동반경1m 작성일 09.06.13 01: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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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가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계급이 어느 계급일까? 바로 일병이다. 이등병이 제일 많이 사고를 칠 것 같지만, 오히려 어리버리해서 보이는 실수보다 일병의 어설픈 고참의욕이 더 많은 사고를 부른다. 속담에도 있지 않던가,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짬으로 치자면 아직 한참 모자르지만 이미 자기 밑의 이등병 후임들을 보며 '고참'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후임병들에게만 선무당의 존재라면 낫다. 상병이나 병장들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뀌어, 같이 짬 먹어가는 고참급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 외에 여러가지 이유들로 일어난 사고에 우연히 계급이 일병인 경우도 있겠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일병 사고' 라고 포털에서 검색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할 건 없다.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군생활 매뉴얼'이 있는 것 아닌가. 일병 때 실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과 병영생활을 기준으로 일병 매뉴얼을 작성하기로 한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니 똥꼬에 힘 꽉 주고 따라오길 바란다.


1. 진지공사


(출처 - 네이버카페 PS3&FRIEND)

진지공사는 대부분 2주간 실시 되는데, 첫 주는 부대 내 국기계양대 옮기기, 사열대 짓기, 호 수리등 비교적 부대 밖 진지공사를 하는 것 보다 수월하다. 자칫 이 '수월하다'는 이야기를 오해할 가이들이 있을 수도 있는 까닭에 이야기 하자면, 사회에서 '노가다'라고 부르는 일에 정확히 두배쯤 힘들다고 생각하면 된다. 육체적인 노동량은 비슷하겠지만, 다들 힘들고 짜증난 상태라, 굼뜰 틈 없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담배 하나 피우는 휴식시간이 왜 꿀맛 같다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드디어 부대 밖 진지공사.

이건 대부분 산에서 이루어진다. 왜, 산에 올라가다 보면 군인들이 파 놓은 교통로와 위의 참고 사진과 같은 모양의 호가 있지 않은가. 그건 포크레인이 와서 해주는 것도 아니고, 기계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 전부 군인들의 수작업으로 만든 작품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상병 고참 하나가 진지공사를 하러 산에 올라가다 벌집을 발견했다. 대부분 산에 올라가면서 벌이나 뱀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고 올라가지만, 나는 그 고참의 뒤를 따라가다가 그 고참이 멈칫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고참은 뭔가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들고 올라가던 삽으로 그 벌집을 건드렸다.

고참은 벌에 뒷목과 손을 쏘였고 퉁퉁 부은 채로 엠블에 싣려 내려갔다. 난 아직도 그때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그토록 해맑게 웃는 고참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모든 것을 다 해냈다'는 듯한 표정으로 편안히 엠블에 싣려 내려가던 고참의 미소.

그 후 우리는 허리깊이 이상으로 땅을 파가며 교통로를 냈다. 천삽일휴, 천 번 삽질에 한 번 휴식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나마 중대장이 좀 똑똑하고 영리하면 부대원들은 시키는 노동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경우,

"중대장님, 여기 나무 뿌리가 있는데 말입니다."

"뽑아"

(1시간 후)

"너무 굵어서 안 뽑힙니다. 도끼로 찍어도 안됩니다."

"그럼 옆으로 돌아서 파"

요즘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가 유행인 것 같은데, 군대식으로 달리 이야기 하자면, 진지공사 나가면 개고생이다.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 시야확보를 한다고 나뭇가지 등을 낫으로 쳐내는 것은 이미 병장이 대부분 맡았을 것이고, 흙을 각잡고 다듬는 것은 꺽인 상병들이 대부분 할 것이다. 일병은 답이 없다.

그래도 그나마 한가지 팁을 주자면, 곡괭이질과 삽질 중 택일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면, 삽을 들어라. 곡괭이가 편해보이지겠지만 그걸 잡으면 계속 땅을 까야(?)하고, 삽질은 조를 짜서 번갈아 가며 한다. 괜히 힘자랑한다고 곡괭이를 잡았다가는 5분만에 지친다. 쉬워 보여도 기술 없이는 다음 날 허리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동반하는게 곡괭이 질이다. (사실, 삽질도 별만 다를 바 없다)


2. 경계근무와 불침번


(출처 - 뉴시스)

평소 무슨 날만 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군장병들은 변함없는 철통 경계태세와, 국방의 안전을 위해 철책의 경계근무 어쩌구..." 이따위 뉴스를 들을 수 있다. 보통의 부대는 저 자세로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꼼짝없이 서 있고, 특수한경우 2시간에서 4시간까지 근무를 선다는 부대도 있다. 특히나 나처럼 독립중대나 독립소대 같은 경우 하루에 3-4번씩 근무가 있는 날도 있었다. 근무지원을 나가면 맞교대(이거야말로 정신을 차릴수가 없음)의 상황까지도 오게된다. 

총을 들고 철책 너머를 바라보며 미동도 없는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는가? 저 자세로 계속 서 있다보면 총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짬이 안될때에는 가장 근무서기 싫을 새벽 2시나 오후 7시 이쯤 배정받는 일도 많을 것이다. 막 잠들었는데 깨서 근무를 나가야 하고, 일과 다 끝나고 저녁 먹은 뒤 자유시간에 근무서는 심정, 나도 잘 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계원보다 짬이 딸리면 그냥 열심히 근무서는거다.  

보통 고참과 후임이 같이 근무를 나가게 되는데, 이때 절대로 심한 장난을 치지 않길 당부한다.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 군시절 중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사고사례는 밤에 같이 근무를 나간 선임이 후임을 성폭행 한 것이었다. 캄캄한 밤에 둘만이 있는 곳에서는 시키는대로 하는 후임이 재미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을 넘어서면 곧 범죄가 될 것이고, 심한경우 가이들은 영영 사회와는 바이바이 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일병인 자신이 후임이 되어 고참과 함께 근무를 나가도 마찬가지다. 고참이 심한 장난을 친다면 그 자리에서 위급하지 않는 한 절대로 허튼 생각을 하면 안된다. 요즘엔 일반인들이 군인의 총기를 뺏어가는 사고가 많아 전 부대의 경계병들은 모두 실탄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싫은 고참하고 나왔다고 해서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기지 마라. 그거 당겨서 잘 된 케이스가 있나? 고참들이 싫다고 누군가와 면담하는 대신,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졌던 그 일병은 그 후로 행복한 군대생활을 하고 있나? 

전역하고 나면 안주거리가 되는 군생활, 당시엔 전부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목숨걸지 마라. 그 외에 여자친구가 바람났다고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지 마라. 머리에 총알 박아 넣으면 그 여자친구가 지금이라도 잘못했다며 사과할까? 남겨진 부모님은? 아직 사회에서 펴보지도 못한 꿈들은? 순간 한 번의 충동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한다. 제발 그러지 마라.

불침번 근무를 하면서는 다른 고참들이 하는 걸 보고 잠깐 누워 있는다든지, 아니면 몰래 앉아 있는 다든지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요령껏 안걸리면 된다. 뭘 하든간에 군대에서는 안 걸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걸린다면? 그 후 힘들어질 군생활과 갈굼도 책임져야 할 것이다. 불침번이 잠들어버리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근무시간에 달콤한 잠을 자는 대신, 일주일정도는 웃을 일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3 고참과의 대화

일병쯤 되면 조용히 시키는 것만 하던 이등병 때와는 다르게 고참들이 떠드는 이야기에 끼어드는 일이 생길 것이다. 가끔 TV를 보며 병장들과 수다를 떠는 일도 있을 것이고, 이때 융통성이 필요하다. 이 '융통성'에 대해서는 [군생활 매뉴얼, 군대축구의 모든 것]에 달아주신 '히히'님의 댓글을 좀 변형해 소개하고자 한다. 고참과 후임이 같이 축구 경기를 보며 나눈 대화다. 

(TV에서 축구 중계중, 업사이드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고참 : 야야야, 저게 업사이드야?

후임 : 업사이드 같은데 말입니다.

(이때 업사이드 깃발이 올라간다)

고참 : 업사이드 아니라니까. 심판 저 병X 같은 ... 와 돌겠네, 야, 저게 업사이드야?

후임 : 심판이 병X이지 말입니다.

살다보면, 이렇듯 의견을 굽혀야 하는 순간이 있고 자신의 주장을 철저하게 밀어 붙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바른말 잘하고 옳은말 잘하는 것은 알겠는데, 괜한 일로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업사이드라는 것을 고참에서 설득해서 좋을게 뭐가 있겠는가. 이때 필요한 것이 융통성이다. 

한가지 더 예를 들자면, 내 군생활 시절 '방아깨비'를 잡아 놓고 '메뚜기'라고 우기는 고참이 있었다. 이에 맞서던 상대는 다음달 일병을 다는 일명 '엘리트' 이등병. 

고참 : 야, 이게 메뚜기야. 방아깨비는 다르게 생겼어. 

후임 : 그건 방아깨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참 : 메뚜기라니까. 내기할래?

후임 : 방아깨비가 맞습니다. 

고참 : 너 이거 메뚜기면 냉동 쏴. 방아깨비면 나랑 말 놓자. 

후임 : 메뚜기는 머리가 뭉뚝하게 생겼습니다. 

그 후, 아주 민주적인 방법으로 '다수결' 을 한 결과, 그 방아깨비는 '메뚜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른 소대 고참이 "그거 방아깨비 아니냐?" 라고 했지만, 원칙은 다수결 이므로 그 이등병은 PX에 가서 '방아깨비라고 한 죄' 값을 치뤄야했다. 물론 나도 방아깨비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방아깨비든 메뚜기든 내 군생활보다 소중하겠는가.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 참고로 난 '포스트잇'을 '스포티지'라고 우기는 고참에게도 반발하지 않았다. 스포티지가 차 이름인 걸 알았지만, 역시 내 군생활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일병 시절엔 힘들다, 몸도 피곤한데다가 이등병들을 가르치기도 해야 하고, 어느정도 보호를 받던 이등병 시절과 달리 철저하게 '군인'대우를 받게 된다. 다음 편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훈련을 나가면 배식을 하는 것도 일병이고, 휴일에 작업병을 부르는 방송이 나오면 일병이 나간다. 일하는 병사, 그래서 일병이다. 4계급중 50%의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항상 잠도 부족한 까닭에 일병을 데려다 5분만 의자에 앉혀놓으면 졸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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