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훈련은 어느 계급에 받는다는게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 대부분 이등병과 일병을 거치며 한 번은 받게 된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이 훈련에서 '일병'으로 참가해 '조교'를 할 수 있는 가망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올빼미'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긴데, 사실 이것도 편하게 받는 방법이라든가 그런게 없다.
그렇기에 유격을 앞두고 연병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왜? 축구하다가 발목이라도 겹질리게 되면, 유격행군 및 유격훈련을 안 받는다. 일부 독한 지휘관을 만나면 엠블에 태워서라도 데리고 가 근무지원이라도 시키겠지만, '유격열외'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연병장에 몸을 맡기는 일부 인원들도 볼 수 있다.
훈련의 강도에 대해서는 '훈련소'시절을 잊게 해 줄 정도라고 하겠다. 병장으로라면 군대에 다시 가고 싶다는 예비역들도, '올빼미'로 유격을 받아야 한다면 분명 농담이었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요즘이야 규정으로 몇회 이상인가는 못하도록 되어있다고 하지만, 90년대 군번 예비역이 들려주는 '김일성 눈깔을 뽑습니다' 같은 PT의 경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훈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궁금하다고? 쪼그려 앉은 자세로 '사마귀 권법'같은 손모양을 하고 손을 휘두르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주변에 30대의 예비역이 있다면 한 번 시범을 요청하기 바란다. 왠만한 개콘 코너들보다 훨씬 재미있다.
PT8번 이라고 들어봤는가? 다이어트에 직효다. 아침에 일어나서 100회, 저녁에 자기전에 100회 하고 잔다면, 여성분의 경우 48Kg의 몸무게를 가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온 몸 비틀기'라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병때 유격은 미군부대로 파견가는 바람에 열외했고, 병장 말년에는 중대장과의 빅딜로 유격장 근무지원을 했지만, 당시 무기고까지 들려오던 PT8번의 신음소리를 잊을 수 없다.
인터넷에서 PT8번 이나 온몸비틀기로 검색을 하면 멋있게 다리를 쫙쫙 뻗은 사진들이 많지만, 그건 솔직히 몇 회 하지 않았을 때 찍은 사진이라고 보면 된다. 10회를 넘어가게 되면 위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체는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면과 가까워지고, 군화와 방탄모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물건이 된다. 차라리 열외되어서 얼차려를 받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인원들이 많아진다.
예비역들간에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중 하나는 PT8번이 힘드냐, PT11번이 힘드냐는 것이다. PT8번이야 전국 공통이겠지만, PT11번도 공통인지는 모르겠다. '쪼그려뛰기'나 '쪼그려 높이뛰기' 등으로 불리며 3-4회만 넘어가도 입질이 시작되고 그 후에는 극도로 페이스가 떨어져 결국 제자리에서 꿈틀대는 상황이 온다는 바로 그 체조다. 8번이냐, 11번이냐에 대한 것은 다시 예비역들의 열띤 토론을 부를 것이라 생각한다.
훈련장 이동시 뛰어서 이동해야 하고, 맨땅에 눕는건 예사, 비라도 와서 땅이 젖어있으면 진흙탕에서 하는 것이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자세가 잘못되면 어김없이 디멘터 처럼 따라붙은 조교들.
"뒤로 열외 합니다." "본 조교와 눈 마주치지 않습니다."
같은 중대 끼리는 심하게 갈구지 않지만, 배속을 뛰거나 다른 중대의 '아저씨'가 조교라면 상황은 다르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한계까지 간다. 2일차에 이미 다들 온 몸에 알이 배기고 걸음을 잘 못 걷는다. 부대에서 유격장까지 행군으로 이동을 해서 이미 정상이 아닌 몸으로 유격훈련을 받고 다시 행군을 해서 부대로 복귀한다. 유격이 끝나면 연병장에서 일주일간 축구하는 인원들을 볼 수 없다.
이 외에도 참호격투나 화생방, 기타 등등의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 하자면 2회 연재로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글을 읽고 악몽을 꿀 예비역들이 많은 까닭에 이쯤에 유격 이야기는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댓글로 달릴 수 많은 예비역들의 간증(?)을 들어보길 바란다.
2. 겨울엔 역시 혹한기?
훈련의 꽃인 유격에 대응할만한 훈련이 있으니, 바로 가장 추울때 실시한다는 혹한기 훈련이다. 첨부 사진을 넣을까 하고 찾아봤더니 대부분 특전사나 해병대 수색대의 사진이 많은 것 같다. 그 사진들을 보며 너무 긴장할 건 없다. 육군의 경우 맨 몸으로 눈 밭을 구르거나 얼음물에 들어가는 훈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장갑끼고 스키파카 입고 안면마스크를 썼다고 해도 몇시간씩 고정자세로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매복도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손과 발의 추위는 아무리 대책을 세워도 막을 수가 없다. 동상환자가 속출한다. 오히려 약진앞으로를 하며 눈밭을 뛰어다니는게 땀도 좀 나고 좋다.
텐트 안에서 잠을 잘 때는 전투화를 비닐에 싼 뒤 머리맡에 두고 자거나 침낭 안에 넣고 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전투화가 얼어 신을 수가 없을 것이다. 몸이 피곤해서 잠은 금방 오겠지만, 침낭 밖으로 내민 얼굴이 어는 듯한 느낌에 자주 깨게 된다. 침낭에서 나와 텐트 문을 열고 전투화를 꺼내 신고 소변을 본 뒤 다시 텐트안으로 들어갈 때의 불편함은, 야전부대를 나온 예비역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옆에서 자는 고참을 건드려 깨우는 날이면 혹한기 훈련이 조금 따뜻해(?) 질 수도 있다.
내가 친구들에게 우리 부대는 기갑부대인 까닭에 혹한기도 장갑차를 타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편하게 훈련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추운 겨울날, 장갑차가 따뜻할까? 장갑차에 히터가 나온다고 하지만 히터를 튼 일은 한 번도 없다. 난 지금도 왜 히터를 틀지 않을거면 히터를 만들어 놨는지가 의문이지만, 뭐 여러가지 사정이 있을테니 접어두고, 겨울철 장갑차 안은 냉장고라고 보면 된다. 차라리 나가서 걷고 싶다. 덜덜덜 떨며 발을 구르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격의 '훈련'이 힘들었다면 혹한기는 훈련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가 힘들다. 어딘지도 모르는 논밭에 내려 살기위해 전투식량을 씹어 먹는 것, 사회에서는 난로도 켜고 옷도 두껍게 입겠지만 '군용'이라고 쓰여있는 모든 물품은 보온과 상관이 없다.
이렇듯, 일병은 도무지 매뉴얼을 쓰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그저 유격 때 열외 당하지 말고 PT체조 열심히 하고, 행군시에는 뒷꿈치 부터 내 딛어서 물집이 잡히지 말라는 정도? 아니면, 혹한기에는 뜨거운 물 채워 준다고 할 때 항상 있던 물도 버리고 받아 놓고, 핫팩을 넉넉하게 챙겨가라는 정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시기를 못이기고 탈영을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근데 그것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다. 일병의 시기만 지나가면 상병이다. 실질적인 '고참'이 되는 것이며, '실세'가 된다는 말이다. 그 순간이 정말 못견디게 힘들어도 지나가며, 분명 쨍하고 해뜰 날이 온다. 부탁한다. 조금만 버텨라. 일병만 달면 군생활 편할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일병을 달고나니 더 힘들어진 까닭에 군생활이 계속 힘들어지는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더 힘들어 지지 않는다. 주머니에 손 넣을 수 있는 날이 온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