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서울 여의도 비행장이다.
오늘날 여의도는 고층빌딩과 국회등이 자리잡고 있지만 1955년도엔 군용 비행장외엔 아무것도 없던 곳이다.
현재 KBS앞의 대로가 과거의 비행장 활주로였다. 그곳에서 1980년대에만 해도 국군의 날 행사와 시가행진의 출발점이바로 여의도 비행장의 활주로 터였다.
1955년 여의도 비행장 사진을 감상해 보자.
다음사진은 한강형태와 활주로로 봐선 현재의 서강대교 북단쪽에서 촬영한 듯 하다. 활주로 왼쪽 부대터가 오늘날 국회와 KBS등이 자리잡은 자리로 추정된다.
여의도 비행장은 당시 K-16비행장으로 불리웠다.
이륙을 준비중인 C-124 수송기. 예전에 여의도 전시장에 전시되었던 기체다
여의도 비행장에서의 이승만 대통령, 당시 여의도 비행장은 서울 공항으로 불리웠고
서울의 관문이었다
1955년 맥스웰 테일러 대장의 한국방문때의 여의도 비행장 모습이다.
뒤의 비행기는 C-121 콘스텔레이션
House Boy Lee at K-16 (Youido Island) Seoul, Korea 1955
사진설명 원문이다. 하우스 보이 "리" 모자의 모표가 高 인걸로 봐선 고등학생인가 보다.
글자그대로 하우스보이다.
당시 워낙 먹고살기 힘든때인지라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당시엔 고아가 하우스 보이를 하기도 했는데 아마 이 사진의 주인공도 전쟁기간동안 고아로서 하우스보이였다가
1955년엔 고교생인이 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을 해 본다.
오늘날 개념에선 "알바"라고 해야 하기도 뭐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관련 일을 하는 건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유명한 원로 가수, 예를 든다면 패티 킴, 조영남, 신중철, 현미,등 많은 이들이 미8군 클럽 무대 출신 가수들이다. 당시로선 최고의 수입원이 미군부대였다.
여의도 비행장에서 본 북한산과 삼각산이다.
1955년만해도 아무것도 없는 여의도 비행장이다.
최근 군용비행장 소음문제로 주민들이 소송을 재기하는데 내가 볼땐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허허벌판에 일제시대부터 있던 비행장이었고, 그후 비행장 근처에 민간인들이 슬금슬금 들어와
산 것인데, 이제와서 시끄럽다고 소음피해 소송이라는 것이 참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 가관인 것은 비행장을 이전하란다. 시끄럽다고..... 아니 누가 먼저 있었는데.... -헐.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돌 빼 낸다는.....
< 출처 : 야후 - 비겐 (viggen)님 블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