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최초 국산 헬기 수리온이 출고돼, 한국은 세계 11번째 독자 헬기 개발국가가 됐다.
흔히 ‘잠자리 비행기’로 불리는 헬기는 겉모습은 단순해 보이지만,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10개 나라만 개발에 성공했다. 헬기 제작에 첨단 기술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도 핵심 기술 이전을 꺼리는 헬기 선진국의 텃세는 기승을 부렸다. 헬기는 회전 날개를 돌려 수직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얻는다. 일반 항공기의 날개에 해당하는 헬기의 회전 날개(로터 블레이드)는 헬기 선진국들이 기술 이전을 꺼리는 대표적인 핵심 품목이다.
수리온 개발 주관기관 가운데 하나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회전 날개 개발 경험이 전혀 없어 처음엔 다국적 헬리콥터 생산회사인 유로콥터사의 기술 협조를 기대했다. 유로콥터가 해외 기술협력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기술 자료를 요청하면 유로콥터는 ‘프랑스어로 된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자료 제공을 계속 미뤘다.
문장수 한국항공우주산업 책임연구원은 6일 “2007년 초 프랑스로 출장을 가 유로콥터 담당자에게 사정해 엔지니어를 통해 힘들게 기술 자료를 얻었다”며 “그런데 유로콥터의 보안담당자가 귀국하는 공항까지 쫓아와 자료를 다시 가져갔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회전 날개 독자 개발에 나섰다. 회전 날개를 만들려면 몰드(틀) 제작이 필수적이지만 기술과 경험 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어느날 문장수 책임연구원은 한국항공우주산업 본사가 있는 경남 사천 버스터미널 앞을 지나다 붕어빵을 사먹게 됐다. 문 책임연구원이 보기엔 붕어빵을 굽는 빵틀 모양이 회전 날개 몰드와 비슷했다. 그는 붕어빵 장수에게 “처음 장사를 시작해 붕어빵을 제대로 굽는 데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붕어빵 장수는 “석 달이 지나야 반죽 안의 단팥 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제대로 된 붕어빵을 구울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붕어빵을 제대로 굽는 데도 석 달이 걸리는데 최신 복합재 회전날개 제작을 몇 번 실패했다고 좌절할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연구를 시작했고 다른 동료들도 힘을 합쳐 잔업, 철야는 기본이고 휴가, 명절도 반납하며 품질 개선 및 공정 개선을 통한 회전 날개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
헬기의 핵심 장비 중 하나인 상태감시장치(hums) 개발도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이 장비는 헬기의 구동품 상태를 모니터하고 제어함으로써 최상의 조건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원천 기술이 없는 우리나라는 미국 업체인 지이에이(gea)와 원천 기술 제공을 포함한 협력 계약을 맺었다.
2007년 1월 지이에이가 보낸 서류 봉투가 도착했다. 김외철 한국항공우주산업 책임연구원은 “보물섬의 위치가 그려진 보물지도만큼이나 소중한 자료였기에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류 봉투를 열어본 순간 김외철 책임연구원의 얼굴은 하얗게 얼어붙고 말았다. 잔뜩 기대했던 기술자료 봉투를 열어보니 10쪽가량의 외형 치수와 관련된 피상적 내용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 원천업체인 지이에이는 몇 가지 핵심 장비는 기술이전 불가를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
결국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거의 백지상태에서 독자 개발에 들어갔다. 김 책임연구원은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면 한번은 가야 할 길이었기에 무모한 도전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숱한 시행착오와 좌절을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으로 극복하고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시제품을 완성했다. 원천기술 제공 업체를 방문해 시험해본 결과 ‘완벽하다’는 평가 결과도 받았다. 우리 손으로 만든 이 장비는 한국형 헬기에 장착되는 것은 물론이고 상태감시장치의 원천 기술 업체인 지이에이로부터 270여대 구매 제의를 받아 역수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
헬기의 두뇌로 불리는 임무체계장비(mep) 개발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2007년초 한국항공우주산업 임무장비체계 담당팀과 유로콥터의 자동비행조정계통 담당팀이 처음 만나 각자 설계해온 임무체계 장비를 맞춰봤는데, 그동안 양쪽이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작업을 해온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1년 남짓한 작업 결과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애초 설계 기간이 짧았던 터라 설계 개념을 바꾼다면 예정된 일정 안에 설계를 끝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 개발팀은 온갖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쉬는 날 없이 일했다. 개발팀은 물론 협력업체 담당자들도 24시간 휴대전화를 켜놓고 문제가 생기면 한밤중이나 새벽이라도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받은 전국의 협력업체들은 즉시 경남 사천 공장까지 달?都? 외국 업체들과의 작업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1월 실험실에서 통합시험 직전 통합시험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입국한 외국인 기술자들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제대로 된 기능을 구현할 수 없다’고 뒤에서 빈정거렸다. 조심스럽게 전원 스치위를 켜자 다기능 시현기의 모니터에 각종 비행정보가 떴다. 성공이었다. 실험실 통합 시험을 무사히 마친 임무체계장비는 지난달 31일 공개된 수리온에 탑재됐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699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