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이 끝난지 5년여가 흐른 50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국해안에 77기동함대가 구성되자 자연스럽게 스카이레이더도 한국전선에 파견되었다. 해군에 배치된 이 기체들은 B-29같은 대형타격기가 없는 해군에있어 매우 중요한 기체였다. 해병대가 장진호에서 지옥같은 철수를 할때도 해병대의 철수로를 따라 적이 매복한 능선을 쉴새없이 폭격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북한의 전력망을 파괴하는 댐폭파작전 당시 항공어뢰를 투하 댐을 박살낸것도 이기체다(이 작전으로 당시 투입된 항공부대는 댐버스터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 스카이레이더 일러스트 검정색으로 칠해진 기체가 한국전 당시 스카이레이더이다. 이후 밝은회색으로 도색이 바뀌었다.
한국전 이후 스카이레이더는 미군의 항공전력제트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많은 수의 제트 함재기들이 생산되었고 시험평가되었으나 스카이레이더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다. 이유는 제트엔진의 효율성등의 문제로 인해 스카이레이더와 같은 강력한 탑재력을 확보한 제트함재기가 개발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A-6인트루더가 대량생산된 이후에야 대체가 가능했다). 그런 까닭에 스카이레이더는 베트남전의 전반기 동안에도 여전히 해군의 중공격기 전력으로 최신예 팬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항모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 베트남전 당시의 항모 소속 스카이레이더의 모습...
↖ 1964년 8월 13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에서 발진하는 VA-145소속 A-1H 137-559
↖ 1964년 10월 30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에서 1000 Lb x 1, 500 Lb x 4, 250 Lb x 8 장착 후 대기하고 있는 VA-145소속 A-1H
베트남전 확전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의 복수작전인 "피스애로우"작전때도 스카이레이더는 선봉에 서서 북베트남군 어뢰정기지를 공격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스카이레이더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무리 탑재량이 많아도 북베트남의 현대화된 대공화력을 감당하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이날 격추된 2기중 스카이레이더에 탑승한 새서 중위는 격추되어 전사하고 A-4스카이호크의 앨버레즈 중위는 포로가 되었다. 이후에도 잠시동안 스카이레이더는 북베트남에서의 근거리 공격이나 라오스등 방공망이 약한 지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 1964년 9월 10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에서 출발 준비중인 VA-145소속 A-1J들
↖ 1964년 9월 10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의 캐터펄트에서 출발하고 있는 VA-145소속 A-1J 142-028
위 두사진은 피스애로우 작전당시의 모습이다. 이무렵만 해도 스카이레이더는 미해군의 주력 중공격기다. 스카이호크라는 공격기가 있긴 했으나 경공격기로 탑재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미해군에서 스카이레이더가 철수한 것은 베트남전의 전반부가 끝날 무렵인 68년롤링선더 종료시점이다. 그전에도 최신항공기가 우선배치되는 대서양함대의 경우 신예A-6인트루더가 배치되었으나 생산량이 부족해서 태평양함대 전체에는 지급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롤링선더 종료로 해군전력이 약화된 그시점에는 인트루더가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된 것이다.
그전까지 스카이레이더는 주로 남쪽에 고정배치된 항모1척에서 주로 라오스 공습이나 지상병력의 공중지원을 하였다.
예를 들면 북부 라오스 근처의 특수부대 캠프가 공산게릴라나 월맹군의 습격을 받을때 제트기는 의외로 도움이 안된다. 탑재량도 상대적으로 적고 무엇보다 속도가 빨라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경험많은 월맹군이나 베트콩들은 제트기가 지원나오면 접전거리를 줄이기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그러면 오폭을 우려한 미군제트기들은 지원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경우 스카이레이더의 활약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트기에 비해 느리지만 장갑으로 보호되는 스카이레이더는 웬만한 소화기사격에는 꿈적도 않고 탑재한 엄청난양의 무기를 서서히 전장을 체공하며 가공할 화력을 퍼붓는 것이다. 오죽하면 나중에는 월맹군 문서에 스카이레이더가 날면 무조건 흩어지고 바닥에 엎드리라는 지침이 내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외에 스카이레이더의 눈에 띄는 활약이 있다면 미그기를 격추한 것이다. 미해군소속의 공격대 스카이레이더 4대가 북베트남에서 격추된 조종사를 구출하는 작전을 지원나갔다가 현장에서 미그기와 교전끝에 격추시킨 것이다. (이는 프로펠러기가 제트기를 격추한 특이한 사례로 한국전 당시 해군 코르세어가 미그기를 격추한 사건이래 보기드문 경우다.) 물론 1대1로 교전하였다기 보다는 여럿이 보여준 팀웤에 미그기가 당한 것이지만 영광스런 스카이레이더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 미그기를 격추한 스카이레이더와 동일한 비행대대 소속의 기체이다.
↖ 1965년 6월 20일 MIG-17을 격추시킨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NE 577 이미지
↖ 1965년 6월 20일 MIG-17을 격추시키는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NE 577 기록화
↖ 1965년 6월 20일 MIG-17을 격추시킨 뒤 미그기 킬마크를 그려넣은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NE 577
(그위를 보면 배를 침몰시킨 킬마크도 그려져있네요)
↖ MIG-17을 격추시킨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파일럿 Charles W. Hartman와 Edwin A. Greathouse(팔을 들고있는 두사람 차례대로)가 동료들에게 어떻게 미그기를 격추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저 부러워하는 시선~)
↖ 작전중인 USS Constellation(CVA-64)소속 A-1
↖ 전설적인 탈출스토리로 유명한 뎅글러 소위(좌측끝)....
라오스에서 대공포 진지 공격도중 격추되었다. 불시착한 기체에서 탈출했으나 라오스 게릴라에 체포되어 라오스 포로수용소에서 장기간 억류생활을 했으며 사살당하기 직전 수용소내 다른 미군포로들과 탈출 라오스를 횡단하여 태국접경에서 미군헬기에 구조되었다. 함께 탈출했던 포로들은 모두 실종되었고 그중 마지막까지 뎅글러와 함께 도피생활을 하였던 헬기 조종사 출신의 포로는 라오스 원주민에게 살해되었다.
라오스에서 탈출하면 십중팔구는 목숨을 잃기에 조종사들은 차라리 북베트남지역에서 포로가 되기를 희망했다. 당시 라오스 게릴라는 미군포로를 살해하기로 악명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전후 라오스에서 귀환한 포로는 10명이 채 되지 않았으며 더구나 스스로 탈출에 성공한 포로는 뎅글러가 유일하다. 뎅글러는 이후 그 경험을 "라오스탈출"이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이렇듯 베트남전에서 대활약한 스카이레이더는 전반전인 롤링선더가 종료한후 A-6인트루더로 교체되면서 미공군 특수작전대와 남베트남공군으로 잉여기체가 넘어갔다. 다음편부터는 베트남전의 후반부까지 맹활약하며 사실상 스카이레이더의 전설을 만든 미공군 소속 스카이레이더를 소개하고자한다.
제 공 : 미군공격기 50년사 세계최신예기 98 중에서...
질문 : 사진을 따로따로 올리려고 하는데 자꾸만 이미지하면서 올린 사진이 밑으로 내려가네요..
넘 오랜만에 올려서 그런지 ㅡ,.ㅡ;; 그냥 이미지 말고 사진올리기 하면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