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존재한 또 하나의 실미도 ‘까치부대’
김포저널 발굴 특종 7년간 존재 119명 생존, 8명 정부로부터 보상받아
마니산 정수사 일대, 현재 훈련흔적 그대로 남아
북한 8군단소속 김신조가 청와대를 습격한 1968년이후 74년 남북공동성명이 있기까지 7년간 국내에는 북파공작부대가 존재했었다.
육군은 HID, 공군은 실미도부대, 해군은 UDU, 그리고 해병대가 운영한 MIU부대(해병북파공작대)가 그것이다.
강화도에 존재했던 MIU부대(일명 ‘까치’부대)는 육상침투부대인 HID, 해상침투가 목적인 UDU부대, 공군첩보부대 실미도부대와 달리 육, 해, 공 어느 곳을 막론하고 즉각 침투하여 임무를 완수하는 ‘살아서는 돌아오기 힘든’ 대한민국 최고의 전천후부대로 당시 대원들은 전한다.
까치부대가 주둔했던 강화도 마니산 정수사 부근 일대는 현재 울창한 수목으로 뒤덮혀 있지만 부대의 흔적들은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다.
내무실이 있던 축대, 탄약고, 하강 훈련장의 로프매던 지주대, 유격장이었던 암벽교장 등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세상에 알려질 날을 기다리며 침묵하고 있다. 이곳 암벽교장은 떡갈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암벽에 올라가면 강화도 남단 갯벌과 인천 영종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MIU부대’(일명 까치부대‧해병대 북파공작대)는 ‘68년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 사건’ 직후 실미도 부대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병대에서 창설한 비편제 특수부대다. 계급은 없었으며 부대장은 회장, 부부대장은 사장, 다음은 전무, 상무, 과장, 직원등 일반회사에서 사용하는 직함을 계급으로 대신했다.
1968년 11월 중앙정보부는 최초 장기하사관 11명과 사병 2명을 차출하여 마니산 서남쪽 정수사아래 텐트를 치고 합숙훈련을 시작하면서 MIU부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2년후 하사관 15명 사병 15명을 선발하여 2진으로 투입시켰으며 현재까지 밝혀진 총인원은 장교(공작관) 13명, 요원 158명이며 현재 연락이 가능한 요원은 공작관 5명, 요원 114명이다.
그중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하거나 혹독한 훈련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요원이 13명,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요원이 4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MIU부대’의 목적은 북한 8군단같은 특수부대를 일격에 격퇴하고 주석궁에 침투할 수 있는 목적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선발은 해병대원중에서 우수하고 강인한 자를 중심으로 선발하였으며 선발기준은 장남과 외아들은 제외하고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과 특히 운동 주특기자를 대상으로 했다.
선발과정에서 외아들과 장남을 제외한 것은 훈련과 작전중 사망해도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보호하기 위함이며 당시 고교졸업자 이상을 선택한 것은 북한의 모든 사항을 암기해야 하는 지적능력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선발은 야구선수의 경우 100M 떨어진 곳에서 달려가는 사람을 상대로 돌을 던져 쓰러뜨릴 수 있냐고 질문한 뒤 있다고 하면 확인과정을 거쳐 입대를 결정했다.
복싱선수 출신으로 중1에서 고3까지 6년을 선수 생활한 이질범(해병대북파공작원 회장)씨의 경우 “같은 덩치 3명과 싸워 몇 분내 쓰러뜨릴 수 있냐”고 질문받고 “30분내 자신있다”고 답하자 실제 경기후 입대가 결정됐다. 입대후 요원들은 위장을 위해 머리를 길게 기른 상태였으며 북한군 복장에 무기조립, 북한상황을 숙지‧암기하며 혹독한 훈련에 임했다. 평상시 임무수행 요원은 40-50명을 항상 유지했으며 훈련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해 결손인원이 생길 때마다 인원을 보충하여 동일한 능력과 힘을 유지했으며 모든 요원들은 훈련시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유서를 쓰게 했다.
훈련은 계절별로 내용을 달리했는데 봄에는 강화도내 하수구를 대상으로 생존훈련을 했으며 1주일은 하구수내에서 생활했다. 하수구훈련은 평양시내에 잠입했을 경우 피신과 생존을 위한 유일한 공간이란 점에서 선택됐다. 여름에는 고무보트(IBS)를 이용한 해상침투훈련, 가을에는 공군첩보부대에서 공수훈련을 받았으며 겨울에는 대관령에서 스키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담력훈련을 위해 비오는 날 공동묘지 밑을 파서 관위에서 취침하는 훈련도 병행됐다
침투를 위한 훈련은 대형 에드블룬에 수소가스를 넣어 부공하고 3000M 상공을 유지한 체 북풍을 이용, 잠입하는 훈련으로 에드블룬 2개를 연결하기도 했다. 치악산 정상에서 훈련했을 당시 단양 논에 떨어졌는데 간첩으로 오인, 영주경찰서에 연행되어 중앙정보부 확인을 거쳐 풀려나기도 했다. 모든 부대의 훈련, 특히 북파공작대 훈련에는 침투와 복귀를 위한 기안계획이 있으나 ‘MIU부대’는 투입작전계획은 있으나 돌아오는 계획은 없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75년10월 부대내에서 사병이 당직사관을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해군첩보부대 이관철부대장이 ‘MIU부대’ 김기태회장을 찾아와 ‘북한과의 화해무드’를 말하며 더 이상 특수부대 존재이유가 없다며 해체시킬 것을 명령함에 따라 7년 동안 비밀리에 악명을 떨치던 해병북파특수공작대(해군첩보부대 503기지)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후 ‘MIU부대’ 출신들은 2003년 12월 해병 북파특수공작대본부를 결성했다. 이들은 북파공작대 ‘MIU부대’ 실체를 인정받기 위해 2003년 12월부터국정원, 정보사령부, 해병대를 방문 실체 확인을 어렵게 받아냈다.
북파공작 특수임무자의 특별보상법과 예우법(2004년 1월8일 국화통과)에 따라 보상해줄 것을 줄기차게 투쟁한 결과 121명이 보상을 신청했으며 현재 8명이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았다. ‘MIU부대’ 실체 확인을 위해 홀몸을 동분서주했던 해병 북파특수공작대본부 이질범회장(현재 양평군 거주)은 해병대사령관에게 △실체인정 △해병역사지에 기록 △위령탑 또는 충혼탑건립을 주장했으며 확답을 받은 상태다. 이질범 회장은 인터뷰에서 강화주민께 죄송함을 전했다.
훈련과정에서 다소간 주민들게 피해를 입혔으며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절실한 행동으로 “기회를 만들어 사과하고 싶다”고 전했다. 마니산 ‘MIU부대’ 훈련장은 최근 해병대 수색대를 전역한 해병 예비역들이 ‘해병생존훈련단 그린베레’라는 해병대 훈련캠프 를 운영하며 선배들이 훈련했던 곳에서 그 정신을 사회인에게 전하고 있다.
MIU(Mission Impossible Unit)는 ‘불가능이 없는 단체’라는 뜻으로 제2대 회장인 이도형씨가 대한민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가 언제든지 특수임무를 완수하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청룡특수수색대는 예전 마니산 일대에 일명 "마니산 까치부대"로 칭하는 MIU 의 전신이다
MIU는 HID,UDU와 함께 당시 북파부대로 활동했었으나 불가피한 연유로 인해 이후 해체(684유격부대-실미도 부대관련)되었다 해체이후 MIU 출신(부대장을 제외 1사단특수수색대에서 차출을 통해 전원하사관으로 이루어져 있었슴)들은 해군의 UDU로 해병대의 여러부대로 갈려지게 되었고 남아 있던 잔류인원들이 청룡특수수색대의 창설멤버가 되었다(77.1.13창설-당시 초대 수색대장 대위 박만희)
청룡수색대를 방문하게 되었을때 부대입구에서는 이런 문구가 있다
"하늘!땅!바다! 그리고 지옥에서의 도전!"
청룡특수수색대는 중대급편재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소수의 병력이다 이 부대의 상징은 "흑상어" 모토는 간단하다 "언제 어디서든-Any time! Any where!) "마니산 까치부대"의 후예라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이들은해병대에서 천리행군을 최초로 실시한 부대이기도 한 이부대는 년 야외훈련만 8개월 이상 이루어져 있다
역사가 짧다는 점에서 전술적인 발전을위해 더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이곳 부대장은 지적한다 하지만 결코 기술적인 측면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오히려 더 나은 점이 많다고 한다 "저희 수색대는 기본 교육장소가 저수지 와 한강 하류 염화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통상 저수지 가 바다보다 훈련하기에 더 쉬울것만 같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는 이점에 대해서 설명하며 저수지는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시야 확보가 어렵고 한치 앞도 내다 보이지 않는다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염화강 같은 경우 유속이 7-8노트로 빨라 일반인들은 들어가는것조차 엄두를못낼 정도라 한다 또한 수온이 5도 이하로 물에서 교육받아야 하는 부대원들에게는 혹독한 추위와의 싸움도 감수해야 하는 이중고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대원들은 모든 훈련을 아니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해내고 있다고 수색대장은 강조한다
"여하튼 적지와의 근접거리로 인해 지속되는 긴장감 속에서도 이러한 강인한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 수색대는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건 명령이 떨어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임무완수를 위해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수색대장은 이렇게 잘 따라주는 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또한 "청룡수색대원들은 접적지역 즉 전쟁발발 동시에 가장 집중 포화가 예상되는 중심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임무 완수를 위해선 교육훈련의 고통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수색대의 작전명령은 팀이 임무수행을 하는 것인데 이에 따른 팀별 교범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있다 물런 이점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부대들 또한 똑같습니다"라고 지적한다 어려운 개념만을 나열하는 것이 교범이 되어선 안된다는 그의 주장은 실제 상황 속에서 습득할 수 있는 것들로 예를 들어 교범이 세부적으로 짜여진다면 부대원들은 손쉽게 소화할 것이며 이해가 빠르다는 것이다
청룡특수수색대의 작전환경은 거야말로 다양하다 이들의 임무가 말해주듯 교육훈련또한 기초교육과정인 특수수색교육에서 과거 MIU부대가 사용하던 마니산 일대에서의 암벽등반과 각종 산악침투,폭파 훈련 서측도서와 서해해상,한강하구와 염화강 일대에서의 잠수,수중폭파와 해상침투,목표타격 훈련,수색매복정찰,생존,도피,저항,탈출,회수,통신,각종화기 조작법등을 실시하며 강원도 00에서는 동계혹한기 일환으로 7주간의 훈련이 이루어 지며 특전사와 해군특수전여단에 기본공수에서 고공침투훈련과 UDT교육등의 위탁교육을 실시하며 1사단,6여단 특수수색대와 미해병 폴스리컨은 물런 특전사,해군특수전여단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전술전기를 연마하고 있다 이부대 이00 하사의 경우 8개월 이상의 야외훈련으로 인해 학교를 잘가지 못해 항상 교수님들께 미안한 맘 가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끝으로 부대장은"부대에서 고등훈련을 이수한 베테랑 하사관 자원을 잘 활용하여 이를 지휘체계에서도 고급인력의 생생한 현장 체험을 수색대원들에게 전파하여 개선점을 찾아 이끄는 체제가 되었을때 작전 능력은 배가 됩다 그리고 해병대의 하사관 TO관련해서 베테랑 하사관들이 매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는데 이또한 해병대가 풀어야 될 과제 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청룡 특수수색대원 들의 아침마다 외치는 구호가 생각난다
"악에서 악으로! 안되면 될때까지! 안하면 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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