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DEX 2009의 스타
누가 뭐라고 해도 지난 서울 ADEX 2009의 스타는 미 공군의 C-17 글로브마스터 III(Globemaster III)다.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비행성능으로 수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C-17의 서울 ADEX 2009 참여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언론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하는 다른 항공기들에 비해 새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전 배치된 지 이미 14년이나 된 C-17은 미 공군에서만 200대 이상이 운용되고 있고, 수시로 주한 미 공군기지에 이착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산 에어쇼를 통해 일반에도 공개가 됐다.
한국 공군의 대형수송기(C-X) 획득 사업은 이미 경쟁사인 록히드마틴의 C-130J로 사실상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인데다 한국은 물론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C-17급 수송기획득사업을 진행하는 국가도 없다.
C-17이 대형수송기라는 핸디캡도 있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물론 항공 마니아들조차도 C-17이 시범비행을 해봐야 얼마나 역동적인 기동을 보여줄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굳이 무리해가며 성남 상공에서 시범 비행을 보일 이유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잉은 미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C-17의 시범비행을 강행하는 승부수를 띄었고, 결국 경쟁사의 C-130J가 전시장을 지키는 동안 수송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바꿔 버리는 데 성공했다.
▲ 매우 역동적인 공중기동 성능을 과시한 C-17
첨단 항공기술의 집약체
C-17이 C-130에 비해 단순히 덩치만 더 큰 것이 아니다. 가격은 C-17이 C-130보다 3배 정도 비싸지만 실제 수송능력 부분에서는 C-17 1대로 C-130 4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C-17 4대(1대는 예비기체)로 C-130 12대, 1개 대대에 필적하는 작전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작전 반경에서도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C-130J-30이 21.7t의 화물을 적재한 상태에서 약 1,287㎞를 비행할 수 있는 반면 C-17은 최대 74.8t의 화물을 적재한 상태에서 약 3,700㎞를 비행할 수 있다.
15.9t의 화물을 동일하게 적재했을 경우 C-130J-30의 최대 항속거리는 4,618.8㎞인 반면 C-17은 무려 9,028㎞나 비행할 수 있다.
이 거리는 서울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와 남미를 제외한 북반구 대부분의 국가와 동남아 및 호주를 작전반경에 둘 수 있다는 의미다.
참고로 C-17의 최대 이륙중량은 무려 265.4t이나 되며 미 공군의 경우 통상 약 45.5t 내외의 화물을 적재하고 7,400㎞를 비행한다.
▲ C-17만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짧은 착륙거리와 지상에서 후진 능력은 EBF방식의 파워드 리프트와 역추진 장치 덕분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운용 가능
C-17은 활주로가 짧은 비행장에서도 급강하에 이은 저속 최종 접근 및 착륙이 가능한데 실제 길이 910m, 폭 18m의 활주로만 확보된다면 어디에서나 이착륙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25m 넓이의 공간만 있다면 180도 선회도 가능하고 지상 장비의 지원 없이도 이착륙 및 이동, 화물 적재 및 하역이 가능하다.
이것은 EBF(Externally Blown Flap system) 방식의 파워드 리프트(Powered Lift)와 역추진 장치 덕분으로 C-17만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짧은 착륙거리와 지상에서 후진을 가능케 한다.
강력한 엔진 덕분에 C-17은 화물을 만재한 상태에서도 후진이 가능하며 약 2도 경사의 언덕도 후진으로 올라갈 수 있다.
또한 최첨단 수송기답게 계기판 중앙의 컬러 CRT를 중심으로 EFIS, HUD 등의 장비가 일목요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자동화가 이루어져 단 2명의 조종사로도 기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이처럼 최첨단 항공기술이 적용된 C-17은 단 3명의 승무원으로도 운용이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승무원 숫자는 탄력적으로 증감이 가능하다.
▲ C-17의 조종석은 최첨단 수송기답게 HUD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계기로 가득 차 있다.
과연 한국시장에서도 통할까?
C-5A급 전략수송기와 C-130급 전술수송기를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가답게 C-17의 성능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만약 우리나라가 C-17을 도입할 경우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해외파병이나 평화유지군 활동 요구는 물론 인도적 차원의 난민구호와 국제 방재활동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국가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제는 우리도 전차 수송능력을 갖춘 전략수송기 1개 대대정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국회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한국공군 나아가 한국정부가 지금 당장 C-17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C-X사업 대상기종으로 C-130J가 낙점된 상황에서 추가로 C-17을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더욱이 현재 한국공군은 C-17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C-17 도입 시 새로운 비행대대의 창설 및 조종사 양성, 지원 체계 도입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군의 C-X사업이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이미 지난여름 언론을 통해 C-X사업의 최종 우선협상 대상자로 록히드마틴의 C-130J가 선정됐다는 내용이 보도됐지만 정작 방위사업청은 발표를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 거의 수직에 가깝게 뱅크를 준 상태에서 우선회 중인 C-17. 관측임무를 맡은 C-17 승무원이 급격한 기체 운동 시 발생하는 원심력을 견디기 위해 바닥에 앉아있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4대라는 숫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변수다. 일부 전문가들은 4대라는 도입 숫자만 놓고 본다면 C-130J 4대로는 공군의 수송기 전력 증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미국의 정책에 변화가 생겨 보잉이 C-17의 한국 판매에 대한 다양한 옵션 제시 혹은 장기 임대방식을 통한 C-130J 수준의 도입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역전될 수 있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 C-X사업은 록히드마틴을 위해 차려진 밥상이며 이미 기운 대세를 뒤집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잉은 무리수를 둬가며 C-17의 홍보에 전력을 다했다. 미 공군 더 나아가 미국의 범국가적 차원의 지원 역시 확고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C-17이 과연 태극마크를 달고 한반도의 하늘을 비상할 수 있을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실현 가능성은 51%다. 만약 공군의 C-X사업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되고 보잉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C-17의 도입 가능성은 백일몽(白日夢)이 아니다.
▲ 굉음과 함께 성남공항을 이륙해 급상승 중인 C-17. 과연 한국시장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출처: 유용원의 군사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