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5편 급박했던 후퇴 명령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10.01.19 08: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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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말 벌어진 운산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미군의 모습이 중공군 사진사의 앵글에 담겼다. 중국이 펴낸 전사자료집에 등장하는 사진이다. 잡힌 포로들은 그해 10월 31일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미 1기병사단 소속 8기병연대 3대대 대대장과 부대원들로 추정된다

 

철수 결정한 밤 “적, 적이 진지 안으로 … 쾅” 미군 긴급 무전

 

 

후퇴를 건의하는 미군 10고사포단장 윌리엄 헤닉 대령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나와 대구 북방의 낙동강 전선에서 처음 만나 이곳 최전선까지 함께 전투를 겪어왔다. 그전까지 그는 늘 여유가 있었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당황하는 기색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 운산에서 본 그의 표정은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무래도 후퇴를 해야 하는가’. 나는 천신만고 끝에 평양을 거쳐 이곳에 진출하기까지의 상황들을 되돌아봤다. 이제 조금만 더 북진을 하면 최종 목표인 압록강 수풍댐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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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그 직전에 사흘 동안 군단장 자리에 있으면서 운산 이외의 상황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 1사단의 동쪽에서 작전 중이던 국군 2군단의 상황도 매우 심각했음을 알게 됐던 것이다. 2군단의 예하 2개 사단은 대규모로 포진한 중공군 병력에 노출돼 있었고, 특히 6사단의 2개 연대는 압록강변까지 진출했다가 고립돼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동부전선의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국군 1사단이 싸우는 운산과 동쪽으로 인접한 2군단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판단은 무엇인가. 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후퇴도 작전이다. 적이 강하면 일단 물러나 반격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나중에 반격을 하려면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병력과 물자를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헤닉 대령에게 물었다. “포탄이 얼마나 남았나.” 헤닉은 “1만5000발 정도 남아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만약 우리가 오늘밤 중으로 철수한다면 그 화력을 적 정면에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제 프랭크 밀번 미 1군단장을 비롯한 상부의 허락을 얻는 작업이 남았다. 나는 지프로 영변 쪽으로 내려간 뒤 다시 미 1군단 본부가 있는 신안주로 달려갔다. 길이 험했다. 아니, 내 마음이 급했는지 모른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다가 커브길에서 그만 차량이 뒤집히고 말았다.

 

다행히 지프 위에 있던 기관총 받침대가 엎어진 차량을 지탱해 주었다. 목숨을 잃을 뻔한 큰 사고였다. 가까스로 다시 길을 달려 미 1군단 군단 본부에 도착했다. 미 1기병사단장 호바트 게이 소장도 마침 그곳에 있었다.

나는 “오늘 중으로 철수해야 한다. 전선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고 말했다. 밀번 미 1군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그는 이어 전화기를 들어 월튼 워커 미 8군 사령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다소 긴 통화를 마친 그는 “오늘 밤 안으로 철수가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나는 밀번 군단장에게 “적의 전방으로 포를 쏘아 탄막(彈幕)을 형성하면서 전선 병력을 철수하기로 헤닉 대령과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밀번 소장은 철수 명령을 내렸다. 국군 1사단은 즉시 운산에서 빠져 나와 입석(立石)과 영변을 잇는 선까지 남쪽으로 철수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게이 미 1기병사단장에게 국군 1사단의 후퇴를 엄호하라고 명령했다. 평북 서부지역에서 신의주 방면으로 진격하던 미 24사단에도 후퇴 명령을 내렸다.

나는 밀번 군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장 전화로 운산에 머물고 있던 3개 연대 연대장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게이 소장과 함께 그의 미 1기병사단 사령부로 향했다. 이때 그의 예하 8기병연대는 용산동이란 곳을 지나 운산을 향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철수 명령에 앞서 미 8기병연대는 국군 1사단 작전지역을 지나 북진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운산으로 향하는 두 갈래 길 가운데 서쪽 도로를 택했다. 국군 1사단의 퇴로인 동쪽 도로와는 산 하나를 가운데 둔 길이었다.

이 길이 ‘생사를 가르는 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밀번 군단장과의 회의를 마친 뒤 게이 소장과 그의 사단 사령부에 도착한 때는 1950년 10월 31일 자정 무렵이었다. 사령부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넘어가는 듯 급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8기병연대와의 무전 통화였다.

“흑흑(거친 숨소리). 적, 적, 적병이 전차에 기어오르고 있다.” 이어서 “콰-쾅” 하는 폭발음이 무전기에서 새어 나왔다. “적이 우리 진지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전차 위에 적들이 올라탔다.” “따다다다다당-.”

충격적이었다. 이동하던 미군이 중공군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총성과 폭음, 그리고 고함소리가 무전기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운산전투 현장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를 직접 듣게 된 것이다

 

 

 

제 6편에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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