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을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총은 발사할 때마다 ‘위로 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발사격에서도 그런데 연발로 쏘면 정말 심합니다. 그래서 사격장에서 초보자가 잘못 연발사격을 하게 되면 말 그대로 총구가 하늘로 향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당연히 표적에 제대로 명중하는 총알은 줄어들게 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왜 총은 사격할 때 위로 튀려고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총알이 발사될 때 생기는 반작용의 힘의 축과 그 총을 지지하는 힘의 축이 어긋나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은 글록 사진을 가지고 재현해본 두 힘이 작동하는 모습입니다. 보통 총구는 총의 맨 윗부분에 있고 그 총을 쥔 손의 손목은 그보다는 아래에 있습니다. 어떤 물체에 서로 반대가 되는 두 힘이 어긋나게 가해지면 중간에 낀 그 물체에는 회전력이 생기게 되죠.
그 회전력이 바로 총을 위로 튀게 만드는 힘의 주원인입니다. 이 회전력을 최소화 시킬수록 첫 번째 탄을 쏜 다음에 2번째 탄을 표적에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걸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걸 줄일수 있을까요?
초록색 화살표의 길이가 길수록, 빨간색 화살표의 힘들이 셀수록, 회전력(파란원)은 커지죠
우선 두 힘이 작을 수록 회전력은 약해집니다. 위력이 약한 탄을 쏘는 총은 당연히 위로 튀는 힘도 약해집니다. 반대로 위력이 강한 탄을 쓸수록 위로 튀는 경향은 커지죠. 그래서 무조건 강한 총탄을 쏘는 총이 장땡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근데 <아이리스>에서 킬러로 나오는 탑 군은 자그마치 .50구경 매그넘 데저트이글을 쓰더군요...-_-;;;
이 탄약은 지금까지 나온 양산형 자동권총탄 중에서 가장 강력한 탄 중의 하나인데... 총알도 비싸고 총도 비싸다는 점도 문제지만, 이렇게 강력한 탄을 쓰는 권총은 반동도 그만큼 커서 전투용으로는 젬병입니다. 어차피 일반적인 군용 권총탄인 9밀리 파라블럼탄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얻을 수 있는데 뭐하러 50구경을 쓰냐고요...
실제로 저 데저트 이글은 사격장에서 반동 자체를 즐기려는 사격애호가나 큰 총으로 폼 재고 싶어하는 찌질이 양아치들이나 쓰는 물건입니다. 결코 프로의 선택은 될 수가 없죠. 진짜 잘 훈련된 프로라면 .22구경 권총으로도 할 거 다 합니다.
사실 하는 짓 전부 킬러라기 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운 듯...
두 축의 거리가 짧을수록 회전력은 약해집니다. 그래서 권총을 잡을 때 위로 올려잡으라고 하는 겁니다. 아래 그림처럼 똑같은 글록권총이라도 아래로 엉거주춤하게 잡고 쏘면 더 많이 튀겠죠.
아이리스 포스터의 소연씨가 그렇게 잡고 있었습니다. 보통 불량한 그립(bad grip)이라고 하죠. 헐리웃 영화에도 이런 불량한 그립은 종종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맨 온 파이어>의 덴젤 워싱턴도 이렇게 불량하게 글록을 쥐었던 적이 있군요.
알콜중독에서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라는 설정에 맞춰서인지 불량 그립을 보여주는 크리시(덴젤 워싱턴)
아래로 잡아서 두 축간의 거리(연두색 화살표)가 더 길어진 상태
<페이스오프>의 존트라볼타도 마찬가지. 손과 총의 뒷부분 사이에 틈이 저렇게 보이면 안됩니다.
물론 급하게 총을 쥐거나 하면 저렇게 되기 쉽고, 초보자일수록 저런 실수를 하기 쉽죠.
총 잘못 쥐었네. 트라볼타 군!
이렇게 빈틈이 있으면 안된다규!
실제로 사격경기용 권총들은 총구와 손목의 축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안 그래도 사격경기용 총은 탄약의 위력도 약한데, 저렇게 잘 설계되어 있으면 당연히 위로 튀려는 반동은 더 약해지고 그러면 사격의 정확도가 높아집니다.
손목의 축과 총열의 축이 거의 근접한 사격경기용 총과 자세
그러면 경기용 총만 아니라 전투용 권총도 저렇게 설계하면 좋지 않겠냐고요?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전투용 권총은 탄 자체가 크고 세기 때문에 저 간격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슬라이드(노리쇠)가 후퇴할 통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손잡이는 그보다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죠.
물론 같은 자동권총이라도 설계에 따라서 간격이 넓은 경우도 있고 좁은 경우도 있습니다. 글록이나 콜트45 같은 권총은 두 축간 간격이 좁은 권총의 대표격입니다. 당연히 반동을 통제하기도 더 쉽죠. 반면에 스미스웨슨의 전통적인 자동권총이나 지그(SIG)의 권총들은 좀 간격이 넓습니다. 그래서 반동이 더 크다는 평을 듣곤 합니다. 베레타나 CZ 같은 총은 그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도 어떤 설계자들은 총을 좀 ‘잘’ 설계해서 이 간격을 최대로 줄여보려 했습니다.
핀랜드의 발명가 얄리 티마리(Jali Timari) 라는 사람이 만든 야티매틱 이라는 기관단총이 그 중 하나죠.
이 총은 노리쇠가 총구와 일직선으로 후퇴하는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위로 후퇴합니다.
그래서 총 전체가 총구와는 삐딱하게 어긋나 있습니다. 뭔가 잘못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죠.
어쨌든 이렇게 하니 총구의 축이 거의 손목의 축과 비슷한 높이까지 내려갈 수 있었죠.
그래서 2킬로그램을 좀 넘는, 가벼운 총임에도 불구하고 반동은 상당히 낮은 총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총은 핀랜드의 무기수출법의 규제도 있고 구조가 특이해서 고장날 가능성도 높지 않겠냐는 우려도 벗어나지 못해서 결국 어영부영하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동영상을 보시면 반동도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래도 이 야티매틱은 그냥 사라지지는 않고 몇몇 영화와 만화에 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실베스터스탤론이 주연한 엣날 영화 <코브라>에 등장했죠. 위에는 거대한 레이저 포인터를 장착하고선 마치 첨단 무기인 것처럼 등장하는데 사실 그냥 가볍고 (크기에 비해서는) 위로 튀려는 반동이 약한 SMG일 뿐이라능.
스탤론이 들고 있는 야티매틱. 영화 자체는 정말 짜증날 정도로 단순무식한 세계관
(그래도 스탤론이 이 영화로 브리짓 닐슨과 만났다능...)
그 외에 <크라잉프리맨> 이라는 19금 일본 만화에도 등장했고 (사실 이 총을 처음 본게 이 만화였음. 음란폭력만화의 새 기준을 세운...) 허영만 님의 <망치>에도 등장하는 활약을 보여주었죠.
아, 크라잉프리맨... <대남>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했던...
이후에도 몇몇 발명가들은 이 두 축선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마침내 이 두 축간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버리는데 성공한 설계가 나왔거든요.
바로 이 글의 주인공 크리스 수퍼 V 시스템입니다.
이 방식은 손목의 축과 총알이 나가는 총구의 축이 일직선입니다
총 같지 않은 총. 크리스 수퍼 V 시스템의 첫번째 시제품
그럼 슬라이드는 어디로 후퇴하냐고요? 이 총의 슬라이드는 뒤가 아니라 아래로 후퇴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총의 반동은 위가 아니라 오히려 아래쪽을 향하게 되죠. 조금이라도 남았을 위로 튀는 힘을 아예 상쇄시켜버리려는 설계입니다. 이러면 연발로 쏴도 총구가 위로 튀려는 반동은 거의 0가 되겠죠.
그 덕분에 총의 모양은 도저히 총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 되었지만... 모양이 이러면 아무리 반동이 0라고 해도 실전에서 써먹기가 힘들어집니다. 원래 총의 모양이 그냥 나온게 아니라 그런 모양이 가장 쓰기 좋기 때문이죠. 저런 모양의 총은 조준하기부터 아주 애매하쟎아요.
이렇게 쏘는 수 밖에...
그래서 크리스 수퍼V 는 껍데기를 좀더 총 모양 스럽게 고쳐봅니다.
바로 아래 사진처럼. 이름하여 TDI 벡터(Vector)가 나온 것이죠.
명칭을 정리하자면, 크리스 수퍼 V는 이 작동시스템의 이름이고
이 시스템을 사용한 총의 이름이 TDI 벡터입니다. 앞의 TDI는 이 총을 만드는 회사 이름.
TDI 벡터
내부 작동 구조를 설명한 그림
묘한 구조 '치고는' 비교적 단순한 분해조립
동영상은 여기
사진을 보시면 총구의 축과 총을 잡을 손목의 축이 일치함을 알 수 있죠.
이러면 앞서와 마찬가지로 총이 위로 튀려는 반동은 거의 0가 되면서도 총을 조작하거나 조준하기도 쉽습니다. 이 총은 .45구경 탄을 쓰는 기관단총(SMG)입니다.
45구경은 권총탄 중에서는 센 축에 드는데, 이런 설계는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사격을 해본 사람들의 말로는 .45구경탄을 쓰는 이 정도 크기의 SMG 중에서는 가장 안정된 사격이 가능하다고들 하더군요.
(여기서 반동 제로라는 말은 과장입니다. 아무래도 총알이 발사될때의 반작용에 따른 반동은 없을 수가 없죠. 단지 총의 반동 중에서 위로 튀려는 반동 만을 0에 가깝게 줄인다는 뜻입니다)
한손으로도 잘 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저렇게 들고 있는게 더 힘들 듯...
그러나 문제는 과연 .45구경탄 정도의 위력을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설계변경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겠죠. 지금도 .45구경탄을 쓰는 수많은 SMG 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UMP 같은 총이라면 굳이 저런 모양을 하지 않아도 훈련만 잘 받으면 적절히 반동을 통제하면서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고요... (사실 동영상을 보시면 이 벡터도 반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 뭐...)
UMP가 더 단순하고, 조작하기 편하고, 그렇다고 크게 반동이 센 것도 아니고...
결국 개발자의 거창한 의도와는 달리 이 크리스 수퍼V는 실전에서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작사에서는 어떻게든 총좀 팔아보려고 홍보에 열심입니다.
총덕들을 위한 다큐 <퓨쳐웨폰>에도 등장하고(위의 동영상이 그거임), 잡지 표지로도 나오고, 게임이나 영화에도 등장시키려 노력중이죠. 최근에 장안의 화제가 된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2>에도 이 총이 나옵니다. 뜬금없이 미국을 침공한 러시아군 중에 이 총을 가진 애들이 있다는... 아니 어쩌다가. 이건 데저트이글을 든 북한 킬러만큼이나 황당하지만, 뭐 게임회사에 로비를 많이 했던가, 아니면 게임 개발자들이 이 총을 좋아해서겠죠.
어쨌든 반동 0에 도전한 정신은 높이 살만 합니다만,
뭐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실전보다는 앞으로도 영화나 게임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총.
크리스 수퍼 V (혹은 TDI 벡터) 였습니다.
자료제공 :싸이코 /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