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전 한일전

면죄자 작성일 11.10.02 14:22:01 수정일 21.01.26 17: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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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직전  서울의 대신들은 식솔들을 황해도쪽으로 미리 피난시킨다

2. 선조임금 역시 후궁들과 중전을 황해도로 피난시키고 자신도 도망칠 궁리를 하다 대신들의 항의를 받는다.

3. 선조임금은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들도 식구들 피난 시키면서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 



-진도와 해남현  명량-

1. 이순신은  일본의 대규모 연합함대를 명량으로 유인하기 위해  명량해협 밖에 있는 벽파진에 16일간 정박한다

2. 이 기간동안 일본함대의 선발 척후부대가  벽파진의 이순신 함대에게 야습을 걸어 오다 개털린다. 

3. 몇번의 입질 끝에  이순신 함대의 숫자가 10여척이란것을 간파한 일본함대는 대대적으로 조선수군 섬멸작전을 세운다

4. 입질하던 일본함대가 일거에 벽파진으로 몰려올것을 예상한 이순신은 9월16일 야간에 함대를 명량해협 후미에 있는 

    전라우수영으로  이동시킨다. 

5. 야간에 감쪽같이 사라진 조선함대를 아침에서야 안 일본함대는 약이 바짝올라 명량해협으로 즉각 따라붙는다. 

    일본함대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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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당일 > 

1.아침 일찍 명량해협으로 진입하는  일본수군에 맞서 이순신은 우수영에서 함대를 빼 명량해협 앞쪽에 포진 시킨다.

2. 민중의 영웅인 이순신을 돕고자 참가한 피난민들의 민간 피난선들이 조선함대 후방에서 군함으로 위장하여 

   일본함대로 하여금  후방에 매복이 있는것처럼 위장한다. 

3. 아침 일찍부터 영웅 이순신의 싸움을 구경하러 나온 민초들이 진도와 해남현 산봉우리에 올라 관전한다. 


4. 이순신의 통제사령 기함 1척만이  해협의 전방에서 일본군 선봉 구루시마 해적당의 함대 30여척과 1라운드가 시작된다.

5. 임진년 이순신에게 살해당한 형의 원수를 값고자 선봉을 자처한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함대가 겹겹이 이순신의 기함 포위

6. 관전하던 조선의 수많은 민초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통곡함.."우리 수사또 나으리 이제 마지막 ㅜㅜ" 

7. 1시간여 싸움끝에  구루시마 해적함대 30여척이 개털리고  전장의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이순신의 기함!!

8. 싸움끝에 이순신의 기함이 홀로 서있는것을 목격한 조선민초들 우뢰와 같은 함성!!(조선수군 만세~ 이순신 만세~)


     이때의 모습을 <행록>은 이렇게 전한다 ..

이날 피난민들은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해전을 관전했다.  내습해온 적전은 겨우 3백척 만을 헤아릴 수 있었으며, 나머지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으로 큰 바다에 꽉 차있어서 바닷물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배는 겨우 10여척, 마치 바위가 알을 누르는 것 같은 형세였다.

 

제장들은 패전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큰적을 만났으므로 사기가 저하되어 마음은 죽고 혼백을 빼앗겨 모두 물러나 도망치려 했으나 오직 장군만은 필사의 각오를 하고 바다 한복판에다가 닻을 내렸으므로 적에게 포위 당했다.

 

구름과 안개 속에 묻힌 것 같은 접전이었으며 단지 흰 칼날이 하늘에 번쩍이고 우레 같은 포성이 바다에 진동하였다.

피란민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통곡하며 말하기를,

“우리들이 여기에 온 것은 오로지 통제사만을 의지했기 때문인데 이제 일이 이러하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가야하는가.”했다.

 

갑자기 적선이 약간 물러나는 것이 보이더니 장군이 탄 배가 우뚝 서 있었으며 아무 탈이 없었다.


9. 뒤에서 도망칠 궁리를 하며 관전하던 이순신의 부하들  슬금 슬금 이순신의 기함 곁으로 옴.

10. 13척으로 구성된 조선함대가  몇시간동안 일본 함대와 난전을 펼침. 일본함대 개털림. 

11. 못견딘 일본함대 퇴각 , 이순신 함대는 명량해협을 박차고 나와 일본함대를 벽파진 까지 추격 

12. 끝까지 한일전을 관전하던 조선의 민초들  울면서 만세와 함성, 노래~ 

13. 이 일전을 관전한 남도의 민초들에 의해 이순신은 신(神)이 됨.... 


*  명량해전에서 쇠사슬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는 구라임.  

*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기전 진도군수로도 재직했었음., (즉 명량해협을 이미 잘 알고있었다는것)

*  명량해전 당일 이순신의 몸상태는 고문후유증으로 병색이 완연한 병자였음..

<참고서적 : 선조실록, 난중잡록, 행록, 난중일기> 


1597년 음력 9월 16일

 

十六日甲辰 晴 
십육일 갑진 맑다. 

早朝 別望進告內 賊船不知
아침에 별망군이 나와서 보고하는데

其數 鳴梁由入直向結陣處云 卽令諸
적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곧장 우리 배를 향하여 옵니다"고 했다.

船擧碇出海 則賊船百三十餘隻 回擁我諸船
곧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330여 척이 우리의 여러 배를 에워쌌다.

諸將等自度衆寡之勢 便生回避之計
여러 장수들이 중과부적임을 알고 돌아서 피할 궁리만 했다. 

右水使金億秋所騎船 已在二馬場外 余促櫓
우수사 김억추는 물러나 아득히 먼곳에 있었다.

余促櫓突前 亂放地 玄各樣銃筒 發如風雷 
(내가)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여 (지자포·현자포등)각종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대니, 마치 나가는 게 바람과 우레같았다.

軍官等麻立船上 如雨亂射 賊徒不能抵當 乍近乍退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히 서서 빗발치듯이 쏘아대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하곤 했다.

然圍之數重 勢將不測 一船之人 相顧失色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 싸여 앞으로 어찌 될지 한 가진들 알수가 없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었다.

余柔而論解曰 賊船雖多 難可直犯 少不動心 更盡心力射賊射賊 顧見諸將船 則退在遠海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게는 맞서 싸우지 못할 것이다. 일체 마음을 동요치 말고 힘을 다하여 적선을 쏘아라"고 하고서,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 바다에 있으면서 관망하고 진격하지 않았다.

欲爲回船軍令 則諸賊乘退扶陞 進退維谷 
(나는)배를 돌려 바로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그 목을 베어 효시하고 싶었으나, 내 배가 뱃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차차로 멀리 물러날 것이요, 적선이 점점 육박해 오면 일은 아주 낭패다.

令角立中軍令下旗 又立招搖旗 則中軍將彌助 項僉使金應?船 漸近我船 巨濟縣令安衛船 
곧 호각을 불어서 중군에게 명령하는 기를 내리고 또 초요기를 올리니, 중군장 미조항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차로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왔다.

先至 余立于船上 親呼安衛曰 安衛欲死軍法乎  安衛欲死軍法乎 逃生何所耶 安衛慌忙 突入賊
내가 배 위에 서서 몸소 안위를 불러 이르되,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해서 어디 가서 살 것 같으냐"고 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船中 又呼金應?曰 汝爲中軍 而遠避不救  大將 罪安可逃 欲爲行刑 則賊勢又急 姑令立功 
다시 김응함을 불러 이르되,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고 하니,

兩船先登之際 賊將所騎船指其摩下船二隻  一時蟻附安衛船 攀緣爭登 安衛及船上之人 
두 배가 곧장 쳐들어가 싸우려 할 때, 적장이 그 휘하의 배 세 척을 지휘하여 한꺼번에 개미 붙듯이 안위의 배로 매달려 서로 먼저 올라 가려고 다투었다.

各盡死力 或持稜杖 或握長槍 或水磨石塊  無數亂擊 船上之人 幾至力盡 吾船回頭直入
안위와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어지러이 싸우다가 힘이 거의 다하게 되었을때 나는 배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如雨亂射 三船之賊 幾盡顚? 鹿島萬戶宋汝悰 平山浦代將丁應斗船繼至 合力射殺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선 세 척이 몽땅 다 엎어지는데, 녹도만호 송여종, 평산포대장 정응두의 배가 줄이어 와서 합력하여 적을 쏘았다.

無一賊動身 降倭俊沙者 乃安骨賊陣投降來者也 在於我船上 俯視曰 著畵文紅錦衣者 乃安骨陣 賊將馬多時也
항복해온 왜놈 준사란 놈은 안골포의 적진에서 투항해온자이다. 내 배 위에서 내려다 보며, "저 무늬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놈이 적장 마다시다"고 하였다. 

吾使無上金乭孫 要鉤釣上船頭 
나는 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구리를 던져 이물로 끌어 올렸다.

則俊沙?躍曰 是馬多時云 
준사는 펄쩍 뛰며 "이게 마다시다"고 하였다.

故卽令寸斬 賊氣大挫 
그래서 곧 명령하여 토막으로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여 버린다.

諸船知不可犯 一時?? 齊進各放地玄字 聲震河岳 射矢如雨
이때 우리의 여러 배들이 일제히 북을 치며 나아가면서 지자포·현자포 등을 쏘고, 또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그 소리가 바다와 산을 뒤흔들었다

賊船三十一隻撞破 賊船避退 更不近 我舟師
적선 서른 척을 쳐 부수자 적선들은 물러나 달아나 버리고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欲泊戰海 則水勢極險 風且逆吹 勢亦孤危 移泊唐?島經夜 此實天幸 
이것은 실로 천행이다.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도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무안군 암태면)로 진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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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李舜臣)

 

1545년(인종 원년) 3월 8일 ~ 1598년(선조 31년) 11월 19일

조선 중기의 무관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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