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정 보
● 전투시기 : 1951.2.1-2.10 ● 전투지역 : 인천 ● 주요지휘관 : 노명호 소령, 김종기 소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해군의 제 2차 인천 상륙작전의 개요
아군의 재반격 시기에 아군 해군은 인천의 동요하는 적을 몰아내고 인천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습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해군 병력으로 구성된 아군 특공대 37명은 인천에 기습 상륙하여 마치 대부대가 상륙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전술을 쓰면서 인천 시내의 적을 격멸하였으며, 이에 적은 대부대가 상륙한 것으로 판단하고 패주하였다.
2월 1일에 PC-71-함은 서해지구에 제 95.14 기동분대와 협동작전을 수행하라는 작전명령을 받고 06:00에 부산을 출항하여 2일 10:50에는 덕적도 전양에 도착한 다음 3일 11:50에는 적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적의 장악에 있는 인천 항내에 돌입하여 월옥도 전방 1000야드 지점에 육박하여 적에게 포격을 가하여 이를 분쇄하였다. 이 전투에서 적의 응수로 말미암아 PC-701함의 주포장 최석인 병조장이 우퇴부로부터 대퇴부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었으며 조타사 임인정 수병이 경상을 입었으나 중상자는 곧 미 순양함 헬레나(Helena)호로 수송 케 하였다. 한편 인천 항외에 있는 덕적도에는 주둔부대장 김종기 해군 소령이 1개 중대의 해병대를 거느리고 주변의 도서 확보와 육지의 정보수집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수집된 정보에 의하면 지상의 적은 아군의 반격으로 후퇴 중이며 인천 시내에 적도 크게 동요를 일으키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때마침 앞서 인천에 기습을 감행하였던 PC-701함이 덕적도에 기항하자, 덕적도 주둔부대장 김종기 소령은 동 함에 편승하여 인천항내로 재차 침입하여 적정을 조사하게 되었고 함장 노명호 소령과 김종기 소령은 이 자리에서 덕적도 주둔 해병대 병력을 인천에 기습 상륙전을 감행할 계획을 구상 협의하게 되었다. 2월 10일 작전 실시의 날은 왔다. YMS-310함(함장 대위 함덕창)은 07:00에 상륙예정부대인 덕적도 주둔 해병대를 수송하라는 명을 받고 인천 외항을 출발하여 10:10에 덕적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도내에 산재하는 해병대를 소지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조수관계도 좋지 못하여 약속된 시간인 16:00에 병력을 수송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같은 급보에 접한 PC-701 함장과 덕적도 주둔부대장은 작전에 차질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긴급조치로서 각 함정에 지원자를 모집 상륙부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15:00에 각 함정을 집합시켜 함정에 배비된 소병기의 수가 제한되어 있음으로 많은 지원자 중에서 상륙 부대장 김종기 소령과 소대장 최영섭 중위 외 35명 계 37명의 특공대가 조직 되었다. 앞서 덕적도에 파견된 YMS-510함에게는 그대로 해병대의 승함을 계속하여 끝나는 대로 인천으로 회항토록 지시한 다음 상기 37명의 특공대는 상륙함으로 지정된 YMS-302함(함장대리 중위 정락중)에 승조하여 PC-701함과 YMS-301함 그리고 YMS-306함 등 지원함과 더불어 16:30에 팔미도를 출발하여 일로 상륙 예정지점인 인천기계제작소 전방 암벽을 향하여 출동하였다. 18:00에 전날의 약속대로 UN 함정으로부터의 지원사격이 시작되었으며 또한 동요함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YMS-302함은 만조시를 이용하여 예정지에 접안하고 전 상륙부대를 상륙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상륙에 성공한 부대장 김종기 소령은 전 대원을 집합시켜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이제 우리들은 적지에 있다. 함포는 우리가 행동하는 범위 내에는 떨어지지 않게 되어 있다. 너희들은 돌아가려해도 보다시피 우리를 싣고 온 함은 이미 이안하고 없다. 나를 믿고 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이제 해군 사병인 너희들을 육전을 위하여 훈련할 여가도 없고, 장시간에 걸쳐 지시할 여유도 없다. 너희들은 이제 이곳에서 헤어져 각자 진격을 개시하여 21:00까지 이미 302함상에서 지시한 대로 인천시 기상대고지에 집합하라. 21:00까지 집합하지 않는 사람은 사망자 확정한다.』 마침내 특공대의 진격은 개시 되었다. 각 대원은 마치 우리의 대부대가 상륙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대대 앞으로」「중대 앞으로」등의 구령을 고함지르며 돌격해 나갔다. 21:00에 부대장 김종기 소령은 도망치는 적을 쫓아 기상대고지에 도착하였는데 도중에 체포한 적병을 심문한 결과 적은 우리 대부대가 상륙한 것으로 착각하고 이미 퇴각하였다는 것이었다. 차츰 각 대원이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김소령은 그들이 도착하는 대로 고지에 불을 피우며 분주히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만세와 군가를 부르게 하였다. 아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한편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함에서였다. 마침내 전원이 집결하였으며 부대장 김종기 소령은 발광신호로서 『21:00 아군 기습상륙부대는 기상대고지를 점령함』이라는 신호를 기함에게 보냈다. 23:00에는 다시 1개 분대를 시청에 파견하여 이를 점령하게 하여 이곳에 부대본부를 설치하였다.
4. 해군의 제 2차 인천 상륙작전의 결과
11일 아침 동쪽 하늘은 밝아왔다. 잔운에 뒤덮인 인천시 거리는 요소마다 지키는 우리 특공대원 외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적은 완전히 패주하여 버린 것이며, 불과 37명의 우리 해군의 특공대는 지상의 아군이 미처 진격하기에 앞서 인천을 완전히 탈환확보 하였다. 07:00에는 앞서 덕적도에 갔던 YMS-310함이 해병대 80명을 태우고 도착하여 인천의 치안확보를 맡게 되었으며 16:00에는 UN군의 수색대가 인천에 돌입하였으나 우리가 이미 진주확보하고 있음을 확인하자 뒷일을 일임하고 되돌아갔다.
아시는분이 있으려나모르겠네요..
이 글속 노 명호 소령님께서 저희 조부님이십니다..
93년도에 돌아가셨지만..ㅎㅎ
할아버지 훈장보다가
할아버지 생각나서 한번 올려보아요 ㅎㅎ.
(맨위 단체사진 가운데 넥타이하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