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배운것?

작성일 12.03.31 16: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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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은 의미 없음)

 

 

 

요즘 군대 꿀보직을 했다 안했다가 유행인 것 같네요.

전 그렇게 "힘든 일을 했다 또는 힘들지 않은 일을 했다" 라는 부분 보다 최소한 군복무를 하면서 배운것이 삶을 사는데

있어 도움은 된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경우 군입대 전의 가정의 환경이라면 장남이니까, 또한 어머니 손을 많이 거쳐서 자란,

쉽게 말해 대부분의 한국 가정의 귀한 아들로 자라다 보니 연장을 만지는 일도 적고, 수도가 고장나고, 전기에 문제가 생기거나, 가끔가다 이사 가서 망치질 할때 망치질을 못해서 못을 5,6개는 써야 제대로 못을 박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못마땅 했던지 제 아버지는 "넌 꼭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라고 하셨죠.

여기까지는 뭐 군복무를 하신 분들의 가정 환경과 비슷할겁니다.

 

아버지께서 입대날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우선 자대배치를 받아라. 그리고 누군가 널 찾아온다면 무조건 따라가라."

이해를 못 했습니다. 전 그당시 군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고. 아버지도 군복무를 하셨다곤 하지만 큰아버지께서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를 하셨고, 아버지께서 큰아버지 덕에 70년대 군복무 시절 5개월만에 병장을 달고 2년 넘게

연대 왕고 생활을 하셨다는 얘길 아버지 군대 후임이셨던 분을 통해 들은적이 있고, 요즘 군대는 그렇지 못하다라는

걸 알고는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전 GOP 박격포 직책을 받고 GOP로 올라갔습니다.

입대 후 50일이 지날때쯤 제가 근무 나가 있을때 새벽 3시에 연대장한테 전화가 왔다더군요.

올게 온겁니다. 보안사, 기무사, 군단장에서 연대장에게 전화를 하고는 제 직책 변경을 하라고 지시 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선택은 대다수의 사람이라면 그런데 따라가서 흔히 말하는 꿀보직을 잡아서 군생활을 하면 되는거겠죠.

관사 관리병, 휴양지 관리(?),  기무사, 연대장 전령 등 . 직책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기무사 준위의 입에서 누가

들으면 억 소리나는 직책을 쭉 나열하면서 하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더군요.

이상하게 이등병때 되면 모든게 겁나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더군요.

기무반장이 전화를 주면서 아버지와 통화를 해보라는데,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께서 이런 얘길 하시더군요.

"그쪽에서 불러주는 직책을 해라. 하지만 군복을 입었지만 군인 답지 않은 일은 하지 마라"

거기서 불러주는 직책은 총 한번 잡을 일 없는, 가정부 같은 직책들뿐이라 전 거절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쪽에서 상부 명령이니 무조건 해라 라는 식으로 나오니 거절 할 방법도 없더군요.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했더니 답답함에 눈물이 나오더군요. "차라리 이런데 보낼거면 자대 배치 받기 전에나

보내지 왜 자대에 다 적응하고, 하루 하루 즐겁게 지내는 이 상황에 절 힘들게 하시는거냐고"

결국 아버지도 수긍을 하셨고 전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원래의 GOP 부대로 돌아갔습니다.

 

 

뭐 연대 자체는 "이런 빽이 있는데도 거절하고 힘든 일을 택한 병사" 라는 인식이 생겨 거의 영웅 대접을 받더군요.

이건 좋았습니다. "쟤 빽이 끝내주니까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겠다"

간부들의 터치도 좀 적긴 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아는 간부는 몇 안되었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는 간부 몇몇이

괜시리 찾아와서 자기네 분대가 아니라고 엉뚱한 일을 시키거나 그러면 그 다음날 중대에 피바람이 불곤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흔하디 흔한 병사 고참의 갈굼 같은건 단 한번도 받은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그거에 우쭐해지고, 계급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타소대 고참들도 뭐라고 하고는 싶은데 그런 배경이 있으니 함부로 못하겠다라는 불만이 나왔다더군요.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느껴서 마음을 고쳐 먹고 전역하기 한달 전 까지는 A급 병사의 이미지를 쭉 유지를

했습니다. 뭐 후임들만 FM 고참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죠.  

 

어쨌든 그 이후 대부분의 훈련도 뛰었고, 주로 하는 업무가 작업이다 보니

사회에서 만져볼 일도 없던 예초기라던가, 망치질, 용접, 대민지원도 대부분 농업시설 보수, 철거 위주로 가더군요.

그렇게 전역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땐 2년의 시간 낭비였던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만,

 

어느새 시간이 흘러 아버지께서 병으로 돌아가시고 장남으로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입장에서.

과거의 가장이 하는 부분. 수도를 고친다던가, 전기문제, 망치질, 이사갈때 에어컨을 뜯는다던가. 벌초시즌때 예초기를

돌린다거나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어느새 제가 혼자 알아서 하는 수준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뭐 그런건 누구나 다 한다 일수도 있지만,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는 분들과 동등한 수준을 가졌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요.

 

 

군복무 어짜피 누구나 2년을 하는 거겠지만, 전 그 꿀보직이라는 것을 했다는 것에 대해 서로 부러워 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여기에 올라오는 그 어떤 꿀보직 보다 더 편한 직책을 할수도 있었던 입장이니까요.

어딜 가던간에 부대에서 수십번 산을 탔다면 전역 후 등산이 취미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작업병을 했다면 전역 후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가 집안에서 하는 일들을 직접 할 수 있는 것이고.

요즘 젊은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친구들 보면 "날 화나게 하는 건 절대 못참는다" 라고 하지만,

군대가서 화가 나더라도, 억울하더라도 "죄송합니다"라는 이 말 한마디를 할 수 있는건 사회 경험이 매우 많거나,

혹은 군복무를 했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큰 용기이며 큰 처세술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친구들도 제게 변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웃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소름끼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군대에서의 생활이 조금 더 사회에 적응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두서없이 쓰는 글이라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어쨌든 어딜 나왔던, 무슨 직책을 했던지간에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거기서 해왔던 수많은 행동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인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얼 했던지 간에 귀중한 삶의 2% 이상을 희생하신 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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