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우 수용소(DACHAU CONCENTRATION CAMP)의 해방 #1/2 - 오전
1945년 4월 29일에 이뤄진 수용소의 해방과 무장친위대의 대량학살에 관한 문서
* 06:00
SS중위(Obersturmfuhrer) Heinrich Skodzensky, 새롭게 급히 선출된 다하우수용소의 경비대 지휘관의 역할은 560명(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해있는)의 점호를 실시하였다. 일개 중위에 불과한데도 이 거대한 수용소의 지휘관이 될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진짜 지휘관 'Martin Gottfried Weiss'이 전날밤 '도망'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1,000명의 알게마인 친위대와 수용소 경비대(the Allgemeine and Death's Head SS guards)를 이끌고 열차를 통해 가면서 남긴 명령은 '항복하라'였다.
* 07:35
미45사단(Thunderbird, U.S. 45th Division), 157보병연대(157th Infantry Regiment), 3대대(3rd Battalion)는 Gross Inzemoos(Augsburg에서 북동쪽으로 10마일 떨어진)에 강하하였다. 3개의 중대(Companies)는 전차의 지원을 받고있었다.
* 08:30
저격병을 처치 한 후, 3대대는 다하우에서 4마일 떨어진 곳에서 Ampermocking 근처의 다리가 끊어저 잠시 멈추었다.
SS중위(Obersturmfuhrer) Heinrich Skodzensky는 항복을 하려고 하였으나 누군가 쏴서 죽었다.
* 09:30
제101전차연대(101st Tank Battalion)은 다른 강을 건너는 길을 찾아서 다하우 시로 들어갔다.
* 10:00
3대대의 두개의 중대(K와 L)는 뮌헨(Munich)을 공격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I'중대는 대기중이었다.
* 10:15
3대대의 지휘부(HQ)는 다하우 수용소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 10:30
'I'중대와 'M'중대의 잔류병력은 수용소 방향으로 진격했다. 탱크는 the Amper River에 놓여있는 다리를 20야드 남겨놓고 강을 건너지 못한 독일군을 다수 죽였다.
* 10:45
'L'중대의 중위 'L.R. Stewart'와 상사 'Robert Wilson'은 독일 기관총에 의해 가로막힌 인도교를 발견한다. 교전이 발생하고 독일군이 도망가자 'I'중대가 건너갔다. 탱크와 'L'중대는 다하우의 패잔병 소탕과 뮌헨에 대한 공격을 위해 뒤에 남았다.
* 10:55
정보정찰대(An Intelligence & Reconnaissance (I & R) patrol)가 수용소의 외곽에 도착하였고 적의 공격을 받았다. 4명이 탄 지프가 지휘부(HQ)에서 수용소로 가서 독일군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이 상황은 종료되었다.
* 11:00
"I'중대의 선도병들이 수용소에 들어가 열차의 객차에 죽어있는 죄수들을 발견한다. 'Pfc. John Degro'는 자기가 수용소를 최초로 해방시키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 11:20
미군은 피수용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수용소내부에 도착했다.
* 11:25
샤워실로 가장된 가스방(gas chamber)이 발견되었고 피수용자들의 시체가 어디서나 발견되었다. 소각로도 발견되었다.
초기의 수용소 시설이 열악하여 사망율이 높자 1942년에 새로 지워진 건물로 "Baracke X"type로 불려졌다.
* 11:30
미군 헌병(American GI)은 얼어붙었다.
그리고 화가나서 총구를 122명의 독일군에게 겨누었다. 그들 대부분은 무장친위대였다. 수십명의 피수용자들이 뛰어와서 약 40명의 간수들을 때려죽였다
'I'중대의 이등병(Private) 'John Lee'는 나중에 신문기자에게 '최소한 60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 12:00
독일군의 모든 저항은 끝이났고, 숨어있던 피수용자들이 모여들었다. 358명의 독일군이 포로로 잡혔다. 그들중 대부분은 부상을 당한 무장친위대 병사(Waffen SS men)로써 침대에서 끌려나왔다.
* 12:05
미군헌병인 별명이 "Birdeye"인 'M'중대의 기관총 사수가 갑자기 소리쳤다. "도망가려 한다!" 그리고 그의 30구경 기관총을 쏘았고 12명이 죽었다. 중령(Lt. Colonel) Felix Sparks는 그를 제지했고 기관총에서 떨어지게 한다음 "너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 수용소에서 사살된 무장친위대 병사들(Tarnjacke, camouflage uniforms)
머리를 볼때 미군의 45구경 권총으로 정면에서 쏘아진것 같다. 총을 쏘는 것을 보고 한쪽 팔을 들어 가리려 한것으로 보인다. 4월30일에 찍힌 사진으로 근접사살된 것 같다.
* 12:15
명령은 다시 보류되고, 조용한 상황이 되었다.
* 12:25
준장(Brigadier General) Henning Linden과 부대가 수용소에 도착하였다. 여기자가 문으로 들어오자 피수용자들이 도망갔다.
* 12:30
대부분의 피수용자들이 돌아와서 가까이 다가왔다.
* 12:45
장군이 떠났다.
*12:50
대령(Col) Sparks는 일지를 작성하였고,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 처형대가 위치한 병원 구내에서 대략 200명의 포로가된 독일군이 적십자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고 사진의 왼쪽에서 네번째에 소위(Lt) William이며 대략 5명의 피수용자가 미군을 돕고있다.
다하우 수용소의 해방 #2/2 - 오후의 학살
* 13:30
대령(Colonel) Walter O'Brien와 대위 Minor S. Shirk가 캠프를 둘러본다.
* 14:30
대령 Sparks는 수용소의 외곽에 지휘소를 세우고 그의 상관인 'Frederick' 장군의 도착을 기다린다. 이동안 소위 Walsh와 'I'중대의 부대원들은 뮌헨에 대한 공격을 준비한다.'Chaplain Loy'는 다하우 시로 돌아간다.
* 14:35
Lt. Howard Buechner와 Lt. Robert Kimsey가 수용소에 도착한다. 두명 다 의료진이며 한명은 의사다.
* 14:45
병원에 버려져 있던 환자가 대부분인 346명의 독일군이 'I'중대의 중위(1st Lt) Jack Bushyhead에 의해 처형된다. 그는 오클라호마 출신의 인디안(체로키)이었다.
* 왼쪽에서 첫번째가 1st. Lt. Jack Bushyhead, 두번째가 1st. Lt. William E. Rogers, 세번째가 1st. Lt. Howard A이다.
1945년 5월,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에 오베르살츠베르크(Obersalzberg)산 정상에 있는 히틀러의 별장을 점거한후 히틀러의 자동차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Lt. Busyhead는 기관총으로 346명의 독일 경비병을 다하우 수용소를 해방시키면서 사살하였고ㅡ 대령 Buechner는 40년간 비밀을 지켰다. 이들을 드라마로 각색 한것이 "Band of Brother's"다.
위의 사진은 포즈도 똑같다.
* 60명의 죽거나 부상당한 독일 경비병이 기다란 벽에 놓여져 있다. 한 명의 미군병사가 쭈그리고 앉아 model 1919A4 기관총을 잡고있다. 멀쩡한 4명의 독일군이 벽에 서있고 그의 옆에는 아직 살아있는 병사들이다. 사진을 찍은후 몇초 후, 기관총이 발사된다. 병원건물이 오른쪽 뒤로 보인다.
* 14:47
중위(Lt) Buechner는 기관총 소리를 듣고 위 사진의 학살장소로 몇분 뒤에 도착한다.
* 14:49
중위(Lt) Kimsey는 수용소 캠프의 간수들을 몰살시킨 것을 확인하였다. 모든 붙잡힌 독일군은 죽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미군중 누구도, 군의관 Dr. Buechner를 포함하여 치료를 해주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독일군을 확인사살한다.
* 15:00
중위(Lt) Buechner와 부대원은 17:00까지 수용소 내부를 둘러본다.
* 18:00
1연대의 C중대와 "L'중대의 1개 소대가 경비업무를 위해 도착하였다.
의무병 Sgt. Ralph Rosa와 그의 의료진이 학살장소에 도착한다.
* 중위(Lt). Buechner에 의해 그려진 처형 약도다. 죽은 독일군은 'X'로 표현되어있다. 검은 점은 미군병사다. 기관총은 흰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화살표는 총격방향이고 한명의 브라우닝 자동소총 사수가 'Bar'로 표시된 곳에 서있다. "A'라고 표시된 부분이 Lt. Buechner의 위치다. 그 왼족에는 Sgt. Rosa다. 왼쪽에 25라고 적혀있는 장소가 아래 사진에 삽으로 죽는 간수가 있는 곳이다.
* 한 그룹의 독일군 경비원들을 독일 소총으로 무장한 피수용자와 미군이 애기를 나누고 있다.
이 피수용자는 다음사진에서 삽만 들고 경비원을 죽이는 장면에 나오는 사람이다.
* 두명의 피수용자가 넘어져 있는 친위대 간수를 삽으로 죽일 준비를 하고있다.
뒤에는 병원의 벽에 쓰러져 있는 독일군들이 보인다. 이 사람은 위 사진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같다.
* 14:53
* 다하우 수용소에서 독일 경비병에 대한 보고서
. 확인사살 122명
. 피수용자들에 의한 살해 40명
. 'Birdeye'에 의한 살해 12명
. 기관총에 의한 처형 346명
=== 전체 처형인원 520명
. 수용소 점거를 위한 전투중 사살 30명
. 도망 10명(일시적임)
=== 전체 사살인원 560명
* 1933년에서 1946년까지 206,206명의 죄수가 다차우 수용소에 들어왔다. 그중 몇 명이 죽었는가는 알려져있지 않다. 소련군 포로들이 대략 수천명이 사살되었고, 게슈타포에 의해 특별취급(Sonderbehandlung="Special Treatment," a Nazi euphemism which signified "killing")표식이 붙은 시민들은 죽이도록 되어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음의 기계로 죽여졌다. 이러한 사람들은 서류로 남아있는게 없고 1933년에서 1945년사이 다하우 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은 5,000명을 넘지않는다. 해방이 되는날 대략 전체 32,000명의 피수용자들중 2,500명이 유대인이었다.
* 1986년 9월, 무려 40년이 지난후 학살은 은퇴한 미군 대령 Howard Buechner가 자서전을 펴내면서 알려졌다. (복수의 시간,"The Hour of the Avenger")
* 1991년까지 미군은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고 비밀로 분류되어 있었다. 비밀보고서에는 그날에 있었던 일을 잘 알려주는데 한명의 중위가 4명의 독일군에게 비어있는 박스카로 들어가게 한후 1명씩 사살한 내용이 들어있다. 다른 미군병사는 곤봉으로 아직 신음을 내고있는 이들을 때려죽였다. 몇몇의 미군헌병은 독일군 간수들이 피수용자들에게 삽으로 맞아죽고 있을때 등을 돌려 모른척 했다. 이것은 독일군들이 살해당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친위대의 사격장소인 다하우의 부근인 Hebertshausen에는 수천명의 소련군 포로들이 1941년과 1942년에 처형되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