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이 홈은 전사자의 치아 사이에 고정·결속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홈의 용도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놓은 공식 문서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또한 정설에 속한다.
실제로 6·25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서 볼 때 시신의 치아 사이에 인식표를 고정시킨 전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홈은 미국에서 1900년대 초 인식표를 제작할 당시 내용을 정확히 새겨 넣을 목적으로 스테인리스를 기계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병사에서부터 장군(제독)에 이르기까지 군인이면 누구나 항상 휴대해야 하는 이 인식표가 새롭게 바뀐 모양으로 육·해·공군 장병들에게 지급되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육군은 7월1일부터 새 인식표를 지급, 착용토록 규정화했다. 다만 현재 육·해·공군의 관련 부대에 따라 현용 인식표가 재고로 남은 곳도 있어 이것을 모두 사용한 뒤 지급할 예정이다. 공군은 11월부터 입대하는 장병이 지급 대상이다.
바뀐 인식표의 특징은 가로 5cm, 세로 2.8cm 타원형을 유지하되 전사자의 치아 사이에 고정·결속하는 용도로 만들었다는 3mm 정도 팬 홈을 없앤 것이다. 또 후면의 테두리를 이루는 접힌 부분도 기존 0.8mm에서 1.5mm로 늘렸으며 무광택으로 처리했다.
홈을 없앤 이유는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바와 같이 인식표를 전사자의 치아 사이에 끼워 고정할 경우 이미 경직된 시신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인식표를 시신에 결속하기만 하면 추후 신원 확인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육군본부 부관감실 관계관의 설명이다.
홈을 없애고 뒷면 접힌 부분도 더 넓힘으로써 제작 및 생산성을 월등히 높이는 효과도 거뒀다.
이등병에서 장군(제독)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형태·내용으로 지급되고 있는 인식표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군인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증표. 신원 확인, 부상시 혈액형 확인, 그리고 각개 점호 등의 용도로 쓰인다.
1948년 국방경비대 창설시부터 활용됐으나 몇 번의 모양·내용 변경을 거쳐 6·25전쟁 중인 1951년 4월1일 각개 점호 실시와 함께 현행대로 정착됐다. 스테인리스 재질에 군별·군번·성명·혈액형을 기재한 타원형의 인식표 2개를 목에 걸도록 하고 있다.
줄이 길고(69cm) 짧은(16cm) 두 개로 된 것은 유사시 긴 줄에 부착된 인식표는 시신에 결속하고 짧은 줄의 것은 최종 목격자가 떼어 휴대한 후 원활한 인사처리를 위해 지휘계통으로 제출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기재 내용은 변하지 않았으나 육군의 경우 1999년 1월13일부터 ‘대한민국 육군’을 뜻하는 ‘KA’를 ‘육군’으로 기재하고 조합형으로 새긴 이름을 완성형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동양에서는 중국 진시황(BC 240~221) 때 금·은·구리 등으로 만든 인장을 목에 걸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서양에서는 1096년께 십자군 표시를 목에 걸었던 것을 최초로 보고 있다.
이어 1802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사용하다가 1914년 영국군이 혈액형을 기재, 장병들에게 휴대케 했고 미국은 1917년 현재처럼 인식표를 휴대토록 국방부가 결정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목걸이로 착용토록 하고 있으나 중국군은 군복 안감에 특수색실로 박음질해 식별 가능토록 하고 있다.
모양은 직사각형·원형 등 나라마다 다르다. 프랑스·독일은 한 개로 제작하되 상하로 분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