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약혼자라 자칭하고 찾아온 얼굴도 모르는 펜팔녀

babyARA 작성일 13.06.28 14: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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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D-day 418일.
멀고먼 서울에서 면회온 펜팔녀 .........

때는 바야흐로 1981년 9월 초순경으로 접어들었다. 제대날짜 D-DAY 418일 남았으니까 상병 때 일이였다. 그동안 펜팔을 시작한지 두 달 정도 지나고 나니,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편지 속에서 어느 정도 마음을 읽은듯하다. 지난주에 그녀가 느닷없이 오빠 보려고 면회를 가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면회를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답답한 군부대 울타리 안에 있는 군바리는 이제나 저제나 울타리 밖을 넘보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기만 해도 헬렐레한다. 그러나 생각치도 못한 그녀가 면회 온다는 편지를 받고나니 마음 설레기 마련이다.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마음씨는 어떨까? 혼자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마음 설레며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기다리던 주말의 아침이 밝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한 시간, 또 한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한나절이 지났다. 오후에는 그녀가 정말 면회를 올 것인가?................그러나 혼자만의 욕심 이였는지 모른다. 주말 오후 3시가 지나자 "이제는 틀렸구나!" 실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하루쯤은 기다려 보자고 마음을 달래면서 주말 밤은 깊어만 같다. 

기다리다 지친 주말은 지나가고, 드디어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행여나 오늘은 그녀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외출복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군화도 반짝반짝 광을 내면서 마치 맞선이라도 보는 총각같이 마음 설레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벌써 오전 10시가 넘었다. 오전 중에 그녀가 면회를 안온다면 결국은 포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바로 그때, 주번하사로 부터 전달이 왔다.
 
"김털보, 약혼자 면회 왔다." 

그녀가 면회 오는 것은 맞지만 약혼자는 또 무슨 말인가? 암튼 지금 그녀가 면회 온 것은 맞는 일이고, 잠시 후면 그녀의 얼굴을 볼 생각에 가슴이 쿵쿵대며 방망이질 한다. 그리고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면회장소를 향하여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원래 면회 오면 대대CP에 신고를 하고 외출증을 받아서 함께 외출을 나간다. 

하지만 대대CP를 들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갑자기 몇 일전에 긴급비상이 발령되어 군단 내 모든 장병은 외출외박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면회도 가족이 아니면 절대 면회신청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외출은 안 된다고 통보를 받았고, 면회객들이 기다리는 면회장소로 곧 바로 달려갔다. 

당시는 면회장소가 별도로 없었고 테이블 몇 개에 의자가 비치된 PX가 면회할 수 있는 장소로 한정되어 있었다. PX에는 휴일이라, 장병들이 간식거리를 사기위해 줄줄이 들락거리고 있었으며, 구석구석 과자를 먹으면서 담소하는 사병들이 보인다. PX 안쪽을 눈알을 굴려서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가씨가 눈에 뜨인다. 

아직 그녀의 얼굴은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그녀가 권명희가 분명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녀의 앞에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권명희씨?" "네 그런데요." 그녀는 군복의 이름표를 보더니 살짝 일어나면서 가볍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네, 멀리서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지요?" (당시 서울에서 인제를 가려면 4시간정도 걸렸다.) 

사실 얼굴도 모르던 그녀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순진한 털보였다. 그리고 딱딱한 PX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낯선 처녀, 총각은 맞선보는 자리 마냥 서먹하기만 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척 대화를 이여 갔고,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계속 앉아 있을 거예요. 외출 안 나가요?" 

"사실 비상대기 상태라 외출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아! 그래서 위병소에서 약혼자 아니면 면회 안된다고 말했군요." 위병소에서 면회가 안된다고 하자, 눈치 빠른 그녀는 약혼자라 자칭하고 면회신청을 했던 것이었다. 어차피 외출이 안된다고 하자 그녀는 가지고 온 쇼핑백에서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오색으로 장식된 김밥을 정성 들어 싸가지고 왔고, 몇 가지 과일도 가지런히 준비한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 이였다. "김밥 준비하려면 새벽같이 일어났겠군요." "예! 동생들이 같이 준비해줬어요." "동생들이라면.........?" "서울에는 같이 있는(공장에) 동생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녀가 면회 가면 같이 먹을 거라고 소풍 도시락처럼 푸짐하게 준비를 했지만, 결국은 PX에서 도시락을 먹게 되었다. 

김밥을 하나하나 집어 먹고 있을때 ,그녀는 핸드백에서 사진을 한 뭉치 꺼냈다. 

"이건 어디서 찍은 것이고, 옆에 있는 이는 누구이고................" 

그저 사진을 같이 보면서 "예! 예" 대답만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한마디 던진다. 

"말 편하게 해요. 동생한테 예대하는 오빠가 어디 있어요." 

먼저 이렇게 말을 꺼내자 어색하지만 그래도 말하기가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어! 그래~~~ 그래" 말투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을 때 중대후임이 PX에 들어와서 면회 왔다는 아가씨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는지 주변을 서성대고 눈길을 주고 있었다. 

"박상병! 이리 와서 김밥 같이 먹자" " 아임니더! 지는 예 잠시 볼일이 있어서 왔심니더" 박상병은 빠르게 PX를 빠져 나갔다. 그녀와는 초면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벌써 면회한지 2시간정도 흘렀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고, 말주변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이여 나간 나 자신이 기특하기만 했다. 

잠시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면서, "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여분으로 준비한 김밥을 챙겨 담은 쇼핑백을 손에 쥐어 주면서 "가지고 가서 같이 근무하는 분들과 드세요." 두 시간 남짓 PX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보겠지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면서 그녀는 위병소에 방문증을 반납했다. 

"다음에 또 뵐게요."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돌아서 갈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하이힐을 신어서 키가 늘씬하게 커보였고, 깔끔한 투피스 차림에,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날리면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다음 기회에 그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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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연애한번 제대로 못하고 나중에는 단 한방의 중매결혼에 골인한 주인공이지만, 그래도 털보의 군대시절 그녀들에 대한 찬란한 껄떡 거림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어떻게? 쭈우욱~~


출처: http://boskim.tistory.com/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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