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981년 9월 초순경으로 접어들었다. 제대날짜 D-DAY 418일 남았으니까 상병 때 일이였다. 그동안 펜팔을 시작한지 두 달 정도 지나고 나니,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편지 속에서 어느 정도 마음을 읽은듯하다. 지난주에 그녀가 느닷없이 오빠 보려고 면회를 가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면회를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답답한 군부대 울타리 안에 있는 군바리는 이제나 저제나 울타리 밖을 넘보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기만 해도 헬렐레한다. 그러나 생각치도 못한 그녀가 면회 온다는 편지를 받고나니 마음 설레기 마련이다.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마음씨는 어떨까? 혼자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마음 설레며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기다리던 주말의 아침이 밝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한 시간, 또 한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한나절이 지났다. 오후에는 그녀가 정말 면회를 올 것인가?................그러나 혼자만의 욕심 이였는지 모른다. 주말 오후 3시가 지나자 "이제는 틀렸구나!" 실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하루쯤은 기다려 보자고 마음을 달래면서 주말 밤은 깊어만 같다.
기다리다 지친 주말은 지나가고, 드디어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그녀가 면회 가면 같이 먹을 거라고 소풍 도시락처럼 푸짐하게 준비를 했지만, 결국은 PX에서 도시락을 먹게 되었다.
김밥을 하나하나 집어 먹고 있을때 ,그녀는 핸드백에서 사진을 한 뭉치 꺼냈다.
"이건 어디서 찍은 것이고, 옆에 있는 이는 누구이고................"
그저 사진을 같이 보면서 "예! 예" 대답만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한마디 던진다.
"말 편하게 해요. 동생한테 예대하는 오빠가 어디 있어요."
먼저 이렇게 말을 꺼내자 어색하지만 그래도 말하기가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어! 그래~~~ 그래" 말투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을 때 중대후임이 PX에 들어와서 면회 왔다는 아가씨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는지 주변을 서성대고 눈길을 주고 있었다.
"박상병! 이리 와서 김밥 같이 먹자" " 아임니더! 지는 예 잠시 볼일이 있어서 왔심니더" 박상병은 빠르게 PX를 빠져 나갔다. 그녀와는 초면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벌써 면회한지 2시간정도 흘렀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고, 말주변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이여 나간 나 자신이 기특하기만 했다.
잠시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면서, "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여분으로 준비한 김밥을 챙겨 담은 쇼핑백을 손에 쥐어 주면서 "가지고 가서 같이 근무하는 분들과 드세요." 두 시간 남짓 PX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보겠지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면서 그녀는 위병소에 방문증을 반납했다.
"다음에 또 뵐게요."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돌아서 갈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하이힐을 신어서 키가 늘씬하게 커보였고, 깔끔한 투피스 차림에,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날리면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다음 기회에 그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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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연애한번 제대로 못하고 나중에는 단 한방의 중매결혼에 골인한 주인공이지만, 그래도 털보의 군대시절 그녀들에 대한 찬란한 껄떡 거림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어떻게? 쭈우욱~~
출처: http://boskim.tistory.com/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