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육군 부대. 영하의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가파른 산 비탈을 박력 있게 뛰어오르는 이들은 특수부대원도, 신병도 아닌 예비군이다. 군기가 빠졌다는 의미에서 '당나라 군대'로 폄하되기도 했던 예비군이 달라졌다.
이는 국방부가 2011년부터 시범 실시해오다 올해 3월 정식 도입한 '측정식 합격제'의 영향이다. 측정식 합격제는 교관들이 예비군의 군기 복장 태도 사격점수 등을 평가해 상위 20% 우수 분대 및 대원을 선정, 남들보다 2시간 이른 오후 4시쯤 귀가시켜주는 제도다. 웬만한 '채찍'으로는 꿈쩍도 않는 예비군에게 '당근'으로 참여를 유도하는 일종의 성과제인 셈이다.
효과는 상당하다. 국방부 예비전력과 관계자는 "제도 도입 후 훈련 참여도가 부쩍 높아졌다. 성공한 제도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날 훈련에서도 등을 땅에 비비며 철조망 밑을 통과하는 궂은 훈련에 대다수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홍모(27ㆍ사업)씨는 "예전 같으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쉽게 쉽게 합시다'하면서 그냥 넘어갔을 코스지만, 교관이 점수를 매기니 집에 일찍 가고 싶으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내교육 때 자거나, 총을 땅바닥에 끌고 다니는 예비군도 부쩍 줄었다.
그러나 경쟁이 과열되면서 '꼼수'도 생겼다. 이날 일부 예비군들은 사격을 한 뒤 볼펜으로 표적지에 구멍을 뚫어 탄환이 표적에 명중한 것처럼 속여 추가 점수를 받았다. 최모(25ㆍ무직)씨는 "지난번 훈련때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해서 조기 퇴소한 것을 봤다. 나만 안 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볼펜을 챙겨왔다"고 말했다.
생업과 취업난에 지친 20, 30대가 예비군 훈련에서조차 전우애는커녕 또다시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 씁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날 오후 집결시간에 1분 늦은 한 예비군은 같은 분대원들에게 "우리까지 감점을 받게 생겼다"며 적잖은 항의를 받았다.
같은 날 경기 안양시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은 차모(31ㆍ회사원)씨는 "군 입장에선 돈 들이지 않고 예비군들끼리 경쟁을 붙여 열심히 훈련을 받게 만든 영리한 제도"라면서 "직장에서도 경쟁과 성과 때문에 피곤한데, 예비군 훈련에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며 경쟁을 해야 한다니 기분은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