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아돌프 아이히만

신들어라 작성일 16.06.25 22: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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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아르헨티나의 어느 도시

 

두 남녀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마음에 들었는지 분위기가 좋았다.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남자가 웃으며 말하였다.

 

 

닉 아이히만입니다니콜라스라고 불어주세요.”

 

 

 

 

 

 

 

아이히만의 정체는 그렇게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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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 2대 국장 이세드 하렐(Isser Harel))

 

 

 

 

 

 

1957년 늦가을 모사드의 국장 이세르 하렐은

독일에서 온 편지 한 장을 받게 된다.

 

 

  

편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것으로

헤센 주 지방검사인 프리츠 바우어 검사가 쓴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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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헌터로 유명한 프리츠 바우어 (Fritz Bauer) 검사)

 

 

 

 

  

바우어 박사가 쓴 검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 아돌프 아이히만의 소재를 파악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아직까지 나치 출신자들이 많아,


제가 처리하는 것 보다 

모사드에서 처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우어 검사 역시 유대인으로 2차 대전 당시 수용소에 끌려 갔었다.

이후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구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검사가 되었고이후 나치 전범들을 찾아

법정에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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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르 국장은 편지를 다 읽고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이히만이라니.....정말 그 아돌프 아이히만이 맞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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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아돌프 아이히만 중령...

 

 

 

그는 게슈타포와 나치친위대를 거치면서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강제이주를 담당했던전범 이였다.

그는 600만 이상의 유대인을 말살했던 Final Solution을 지휘했던 장교로서

전후에 전범재판에 넘겨졌으나탈출에 성공 

지금껏 숨어 지냈다.

 

  

그는 모사드의 1급 수배자였으며항상 수배명단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던 인물이였지만,

지난 수년간그의 행적은 묘연했으며 어떠한 실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하지만 바우어 검사의 편지로 그 길고 긴 추적의 끝이 보이는 듯 싶었다.

 

 

이세르 국장은 일단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보안 장교였던 샤울 다롬(shaul darom)을 바우어 검사에게 보냈다.

 

 

 

  

1957년 11

 

 

  

바우어 검사를 만나고 온 다롬이 이세르 국장에게 말하였다.

 

  

 

 

바우어 검사 말에 의하면아돌프 아이히만은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이름을 바꾼 채

은거중이라고 합니다최초 첩보획득 경로는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는 유대계 혼혈의 독일인 망명자가 보낸 것으로

본인의 딸과 친하게 지내던 남자가 자신을 닉 아이히만” 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자신 또한 독일에 있을 때 나치를 피해 도망쳐 다니면서

아이히만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혹시 그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아들이 아닐까 싶어

나치 전범자들을 추적하고 있던 바우어 검사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아직 확정적인 정보는 없습니다정보를 추가 획득하여 교차검증을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롬의 말을 듣고 있던 이세르 국장이 입을 열었다.

 

  

 

바우어 검사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던가?”

 

   

 

반드시 이 일을 맡아서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진 법조계에 나치출신 인원들이 있어서,

자신이 나서면 일이 틀어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바우어 검사가 모사드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헤센 주 의회 게오르그 어구스트 진 의장뿐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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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오르그 어구스트 진(georg August Zinn) 헤센 주 의장)

 

 

 

 

그래......그렇단 말이지.....”

 

 

  

 

이세르 국장의 눈은 다롬이 가져 온 보고서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편지엔 짤막한 주소가 적혀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올리보스차카부코 가 4261번지

 

 

 

 

 

그날 밤 이세르 국장은 사무실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는 책상위에 올려 진 보고서를 집으며연신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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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현재 대기 중인 인원 있나?”

 

 

 

 

 

 

1958년 1월 초

 

 

 

엠마누엘 탈모르 요원은 이세르 국장의 명령을 받고,

차카부코 거리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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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더러웠고무질서했다.

어느덧 목표 지점에 이르렀다.

 

  

 

탈모르는 주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확신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여기에 없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그는 이세르 국장에게 보고하였다.

 

 

 

아이히만은 분명 거금을 가지고 도망쳤을 껍니다.

나치 거물들은 전세가 기울 때 이미 자신들의 자금을 다 빼 돌렸을니까요.

그런 그가 이런 허름한 곳에 살고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탈모르의 보고서에 의하면 분명아돌프 아이히만은 거기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세르 국장은 좀 더 조사하고 싶었다.

왠지 아이히만을 잡을 수 있을꺼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세르 국장은 최초 정보 제공자를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그는 바우어 검사에게 최초 정보제공자의 신원을 요청했고,

바우어 검사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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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정보 제공자는 코로넬 수아레즈에 거주중인,

로타 헤르만(Lothar Hermann)이였다.

 

 

이세르 국장은 마침 아르헨티나로 출장을 나간,

이스라엘 경찰 수사부장 에프라임 호프슈테터에게 부탁을 하였다.

 

  

호프슈테터는 모사드의 요청을 받고코로넬 수아레즈로 출발하였다.

그는 거기서 로타 헤르만을 만났다.

 

  

호프슈테터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카를 후퍼트라는 독일인으로 소개했다.

 

 

  

호프슈테터가 말하였다.

 

  

 

반갑습니다전 바우어 검사의 친구 카를 후퍼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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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고바로 아이히만에 관한 얘기를 하였다.

바우어 검사와 탈모르 요원의 보고처럼

 

  

헤르만은 과거 나치에게 붙잡혀 수용소 생활을 했던유대인-독일인 혼혈이였으며,

수용소 생활도중 시력을 잃게 되었다.

 

  

그 역시도 도망친 전범들을 벌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하고 싶어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아들로 추정되는 닉 아이히만을 만난 건

헤르만의 딸실비아였다.

 

  

닉 아이히만의 이름만을 들었을땐우연일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그가 술에 취해 자신은 독일의 장교였으며,

유대인들은 말살돼야 한다며 고성을 지르고 다녔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여기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헤르만은 딸 실비아와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차카부코 가로 가서 조사를 해보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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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도의 아돌프 아이히만)

 

 

  

호프슈테터는 헤르만에게 아돌프 아이히만의 자세한 특징과

인상착의에 관한 정보를 건네주었다.

 

  

호프슈테터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이세르 국장에게 이 일을 보고하였다.

이세르 국장은 헤르만의 보고를 기다렸다.

 

 

몇 달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헤르만의 보고가 모사드로 전해졌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현재 차카부코 가에 있는 그 집은

 

  

프란치스코 슈미트라는 오스트리아인이 10년전에 지은 집으로,

현재 이 집을 다구토 가족과 클레멘트 가족에게 임대했다고 보고하였다.

 

  

이세르 국장은 얼른 전화를 들어

아르헨티나에 대기 중인 요원에게

프란치스코 슈미트라는 인물을 조사해보라고 명령하였다.

 

 

 

얼마 뒤

 

 

 

아르헨티나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 프란치스코 슈미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님.

슈미트는 차카부코 가에서 거주한 적이 없음

 

 

 

이세르 국장은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건파일들을 덮으며아이히만에 대한 수사를 종결하였다.

 

 

 

하지만

 

 

이는 모사드의 크나큰 실수였다.

이 때문에 모사드는 아이히만을 영원히 못 잡을 뻔 하였다.

 

  

처음 수사가 시작되고 1년 반이 지난 1959년 말

 

  

독엘에서 프리츠 바우어 검사가 이스라엘로 왔다.

바우어 검사는 매우 화난 목소리로 이세르 국장에게 화를 냈다.

그는 이스라엘 법무장관인 하임 코헨(HaimCohen)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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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법무장과 하임 코헨(HaimCohen))

 

  

 

 

모사드의 무능함에 대해 이야기 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세르 국장은 그동안의 조사를 얘기하며바우어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이때 이세르 국장은 바우어의 격양된 목소리 중에 낯익은 이름을 들었다.

 

 

  

“ 리카르도 클레멘트라고요? ”

 

 

  

그렇소현재 아이히만은 클라멘트라는 이름으로 숨어지내고 있소이다.”

 

 

  

이세르 국장은 자신이 왜 아이히만을 놓쳤는지 깨달았다.

헤르만의 주장만을 믿고교차검증 없이 슈미트가 아이히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짜 아이히만은 집 주인이였던슈미트가 아니라 세입자였던 클레멘트였다.

 

 

이세르 국장은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을 조사 했었던

즈미 아하로니 요원을 책임자로 임명하고재조사에 들어갔다.

아하로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갔다.

그는 다시 차카부코 가에 있는 집으로 갔다.

 

 

하지만

 

 

클레멘트 가족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들이 살던 집은 새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디서부터 추적을 해야 할까혹시 여기에 정보원을 숨겨두고 떠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자신이 나서서 추적을 할 수도 없었다너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는 벨보이를 고용했다.

 

  

벨보이는 닉 클레멘트 앞으로 온 선물을 들고공사 중인 집으로 갔다.

벨보이는 난감해 하며공사 중인 인부들에게 여기 살고있던,

클레멘트 가족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그러다 어느 도장공이 어렴풋하게 그들의 주소를 알고있었다.

 

 

 

“ 산페르난도 역에서 203버스를 타고아비헨다로 가봐

거기 보면작은 벽돌집이 있는데 아마 거기로 간다 했던거 같아 

 

 

  

벨보이는 신이나서아하로니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러 갔다.

 

 

 

 

아하로니는 새로 얻은 주소로 갔다.

그는 근처 매점에 들러 물건을 사며매점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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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가리발디 가 죠

 

  

 

 

3월 중순

 

 

 

  

아하로니는 가리발디 가로 나섰다.

그는 며칠간 조사를 하며정보를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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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벽돌집이 아이히만의 은신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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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로니 팀이 촬영한 벽돌집)

 

 

 

아이히만의 집으로 지목된 벽돌집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 지형건물사람들의 패턴 등을 조사했다.

하지만 아돌프 아이히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3월 21일이 아이히만 부부의 결혼 25주년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아하로니는 3월 21일까지 기다렸다.

 

 

  

3월 21일 아하로니는 다시 가리발디 가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사진에 한 남자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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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로니 팀이 가방으로 위장한 카메라로 찍은 아이히만의 모습)

 

 

  

 

마르고벗겨진 머리안경을 썼으며콧수염이 있었다.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이였다.

 

 

 

아하로니는 웃으면서본부로 무전을 날렸다.

 

 

  

가리발디 가확인

 

  

 

이 무전은 곧 모사드에 보고 되었다.

이세르 국장은 얼른 벤구리온 총리에게 가서 이 사실을 보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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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르 국장)

 

  

 

아이히만의 소재를 파악했습니다체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은벤구리온 총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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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구리온 전 이스라엘 총리)

 

 

 

  

죽여서라도 반드시 데려오게.

아니....아니야...생포하는게 낫겠네

우리 손으로 법정에 올려서 심판을 해야하니까 말일세

 

 

  

모사드의 주도하에 아이히만을 체포하기 위한 팀이 꾸려졌다.

이세르 국장은 총 12명을 선발하였다.

선발된 인원들은 전원 지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원자들 중 몇 명은 팔뚝에 강제수용소 번호가 문신되어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 학살의 생존자였다.

 

  

국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개인적으로도 아이히만을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였다.

12명중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작전부 인원은 절반 정도였다.

이들은 샤바크에서 지원 나온 두 명의 요원이 지휘하였다.

 

라비 에이탄이 이들의 팀장을 맡았고,

즈비 말킨(Zvi Malkin)이 부팀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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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 에이탄)

 

  

팀장인 라비 에이탄은 작전중 총을 잘 안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오직 자신의 힘과 머리를 믿으며대정보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이미 여러 번의 작전에서 소련의 스파이를 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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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즈비 말킨)

  

 

부팀장인 즈비 말킨은 변장의 귀재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이는 연기분장으로 까지 넓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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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샬롬. 제6대 샤바크 국장)

 

 

 

에이탄의 부관인 아브라함 샬롬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암살이 없었다.

그는 후에 샤바크의 국장이 된다.

 

  

팀원 중 샬롬 다니(Shalom Danny)는 그림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말킨은 이를 연기와 분장으로 발전시켰지만,

샬롬은 이 능력을 위조로 발전시켰다.

샬롬은 정보국에 들어 온 뒤 위조전문가로 작전에 투입됐다.

 

  

이외에도 야코브 가트(Yaakov Gat), 모셰 타보르(Moshe Tavor)

독자적으로 나치 전범들을 추적하여 사살한 현장요원들이였다.

 

 

에프라임 일라니(Efraim Ilani)는 아르헨티나의 거리에 밝았다.

또한 그는 자물쇠 기술자로서 정보국에 들어 온 뒤

수 많은 정교한 자물쇠를 여는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세르 국장은 마지막으로

요나 엘리안 의학박사에게도 작전에 참여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고문과 마취등 의학적인 지원을 위해 부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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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르 국장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팀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12명의 팀을 이끄는 책임자로

이세르 자신이 지원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작전인만큼

결재권자의 위치에 있는 고위급 인사가 있어야

언제든 생길 수 있는 문제에 즉각 대응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히만을 반드시 잡아야 했기에

모사드 국장인 본인이 직접 현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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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말 우선 4명의 요원이 먼저 아르헨티나로 건너 갔다.

그들은 각기 다른 루트를 통해 아르헨티나로 간 뒤

가르발디 가에서 모였다.

 

그들은 203버스 노선을 따라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사각은 어디인지 등등

지역을 정찰 하고 있던 도중

 

 

그들은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벗겨진 머리에콧수염그리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이였다.

 

  

요원들은 며칠간 같은 시각같은 장소로 나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돌프 아이히만을 만났다.

그는 매일 저녁 거의 동일한 시각에 일을 마치고 귀가 하였다.

 

요원 중 한명이 이세르 국장에게 연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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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의 연락을 받은 이세르 국장은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5월 20일에 열리는 아르헨티나 150주년 기념행사 때

이스라엘도 대표단을 보내기로 하였던 것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을 이 비행기에 태워 이스라엘로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이세르 국장을 비롯한 나머지 요원들이 활동을 개시했다.

그들 역시 서로 다른 국가를 경유하면서

아르헨티나로 집결하였다.

 

  

5월 1일 저녁 이세르 국장이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였다.

 

5월 9일 저녁 모사드 요원이 작전본부가 될 아파트를 빌려놓았다.

 

12명의 요원들은 이 날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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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르 국장은 그 동안 이들과 접선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300개가 넘는 카페들을 이용하였다.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카페에서 각각의 요원들을 만나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이들은 이날 한 자리에 모여작전개시를 위한 마지막 회의를 하였다.

 

  

일단 공항으로 가는 길에 방을 빌려 안전가옥을 만든다.

그리고 아이히만을 운반 할 차를 빌린다.

 

 

5월 10아이히만을 체포해서 안전가옥에 감금한 뒤

 

5월 11일 늦은 밤이스라엘 대표단이 탄 비행기가 도착하면

 

자정을 갓 넘긴 5월 12일 새벽에 비행기에 탑승한 뒤 이스라엘로 향한다.

 

계획은 간단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의 외무부가 이스라엘 대표단의 도착일을 

5월 19일로 미뤘다는 정보를 받았다.

이세르 국장은 고민하였다.

 

  

작전 개시 일을 늦추던가

원래대로 작전을 수행한 뒤 아이히만을 9일간 데리고 있던가

선택을 해야 했다.

 

  

후자는 매우 위험하였다. 9일씩이나 아이히만을 데리고 있으면,

그의 가족들의 신고로 아르헨티나 경찰에 발각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작전을 지연시키기엔 이세르 국장은 너무 조바심이 났다.

이세르 국장은 결국 하루만 작전을 연기하기로 하였다.

 

 

 

 

  

운명의 5월 11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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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르 국장의 지시하에 12명의 요원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로 향했다.

그들은 지난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던 자신들의 모든 흔적을 지웠다.

거래했던 물건들은 모두 버리거나반납하였고

각자의 모습은 말킨의 주도 하에 분장하였다.

 

 

오후 6시 작전부 요원들은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탑승하였다.

 

  

첫 번째 차량은 아이히만을 체포하기 위한 차량이였다.

뒤따라 가는 두 번째 차량엔 엘리안 박사가 타고 있었는데,

박사는 여러 약물과 수술도구 그리고 중요한 수면제를 가지고 탑승하였다.

 

 

오후 7시 35분 요원들이 탑승한 두 대의 차량이

가리발디 가에 도착하였다.

 

 

요원들은 계획대로 행동하였다.

체포용 차량은 인도 쪽에 주차하여본 네트를 열었다.

작전부를 지휘하는 라피 에이탄과 즈비 말킨이 차에서 내려

차를 수리하는 척 하였다.

 

 

다른 차는 그보다 앞에 주차하였다.

아이히만이 걸어 올라올 때 라이트를 켜서 

아이히만의 앞이 안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요원들은 아이히만을 기다렸다.

 

 

 

7시 40....

7시 50....

 

 

안전가옥에서 요원들의 보고를 기다리는 이세르 국장 역시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7시 55....

 

  

아이히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두 대나 지나갔지만거기에 아이히만은 없었다.

 

  

 

요원들의 초조함은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8시가 되었다.

 

  

 

8시가 되면 작전을 취소하고 안전가옥으로 복귀하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라피 에이탄은 현장 지휘관 재량으로 8시 30분까지 기다려 보도록 하였다.

 

 

  

에이탄이 이런 결정을 하자마자 상황이 바뀌였다.

 

 

  

8시 5분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각자의 길을 향해 걸어갔다.

날이 어둑해져 이 무리들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잠시 뒤

 

  

앞에 서 대기 중이던 차가 라이트를 켰다.

그리고 그 환한 불빛 속에서 누군가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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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전개시

 

 

  

눈을 가리며걸어 올라오던 남자를 향해 말킨이 스페인어로 말하였다.

 

 

 

실례합니다.”

 

 

 

그 남자는 본 네트가 열려진 채 길가에 멈춰 있는 차량을 보았다.

아마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남자가 차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라피 에이탄과 즈비 말칸이 남자를 잡고 차 뒷자석으로 집어넣었다.

뒷자석엔 이미 또 다른 요원이 들어가 있었다그는 남자를 바닥에 쳐 박았다.

 

  

에이탄과 말킨이 차에 탑승하자차는 바로 출발하였다.

남자가 버스에서 내린지 30초 만에 일어난 일이였다.

 

 

두 차량은 빠른 속도로 가리발디 가를 빠져나왔다.

 

 

차 안에 갇힌 남자는 이미 입에 재갈이 물리고

얼굴엔 검은색 복면이 씌워졌다.

남자는 발버둥을 치며소리쳤다.

 

 

에이탄은 칼을 꺼내남자의 목덜미에 가져갔다.

 

 

죽여 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남자는 이내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해 졌다.

 

에이탄은 남자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

 

 

흉터확인... 우리가...아이히만을 잡았다.”

 

 

에이탄과 다른 요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유대인 게릴라부대가 나치와 싸울 때 불렀던 노래였다.

 

 

8시 55분 두 차량은 안전가옥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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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아이히만)

 

 

  

요원들은 남자를 데리고 들어갔다.

엘리안 박사는 그의 몸을 진찰 하였다.

 

입안에 자살용 캡슐은 없는지

다른 상처는 없는지 확인하였다.

 

다른 요원들은 그와 동시에 그를 심문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출생지는

아들의 이름은

나치 당번호는?

 

그리고

 

 

  

당신의 이름은?

 

 

 

  

남자는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난 당신들이 유대인이라는 걸 알고있소

그리고 날 이스라엘로 데려가려 한다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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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로 위장한 아이히만의 신분증)

 

  

 

 

이세르 국장은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아이히만을 9일간 데리고 있다가 비행기에 태우는 일만 남았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다만

요원들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죽인 이 남자와 24시간 

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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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르헨티나에 온 이스라엘 대표단의 비행기)

  

 

 

 

1960년 5월 19일 이스라엘의 대표단을 태운 비행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착륙하였다.

이제 아이히만을 이 비행기에 태우기만 하면 모든 일은 끝이 난다.

 

  

이세르 국장에겐 두 가지 작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선 첫 번째 작전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아이히만을 몸이 아픈 승무원으로 위장하는 방법이였다.

 

이미 비행기 안엔 이스라엘에서 준비한 위장신분이 있었다.

 

아이히만과 비슷하게 분장을 한 인원이 있었다.

아이히만을 이 인원과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현지의 다른 요원을 통해 이미 교통사고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진단서도 확보해놓았다.

 

  

아이히만을 승무원들 사이에 숨겨 비행기에 태우면 작전은 성공하게 되는 것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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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르 국장은 공항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이 모든 작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세를 국장 뒤로 샬롬 다니가 자리를 잡고 앉아 요원들의 여권을 위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12개의 여권을 모두 다른 사람으로 위조하였다.

 

 

요원들은 미리 준비된 용품을 이용해 위조된 여권에 맞추어 변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오후 9시 이스라엘에서 온 요원들은 3대의 차량에 나누어 탑승하였다.

 

오후 11시 아이히만과 요원들을 태운 3대의 차량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이제 이세르 국장의 최종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세르 국장은 공항에 잠복중인 다른 요원들로부터

이상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차량으로 다가갔다.

이세르 국장은 차량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이히만은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였다.

 

 

 

좋아 출발하게

 

 

 

국장님은 안 가십니까?”

 

 

 

난 다른 작전을 준비중이여서나중에 텔아비브에서 보세

 

  

 

이세르 국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3대의 차량은 활주로를 향해 갔다.

이제 출국심사만이 남았다.

 

  

활주로 입구에서 경비원들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경비원이 다가오자 요원은 창문을 내리고 인사하였다.

 

경비원들은 승무원 제복을 입은 요원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바리게이트가 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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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들은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다른 요원들도 위조한 여권과 변장으로 무사히 출국심사대를 통과하였다.

 

 

오후 11시 45분 아이히만을 태운 비행기가 활주를 시작했다.

 

  

5월 20일에서 21일로 넘어가는 밤

관제탑의 지시로 비행이 연기되었지만

잠시 뒤 비행허가가 떨어지며

 

  

비행기는 이스라엘을 향해 날아갔다.

 

 

 

5월 22일 오전 9시 50

이세르 국장이 이스라엘에 도착하였다.

 

그는 바로 벤구리온 총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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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르 모사드 국장)

 

  

아이히만을 잡았습니다!”

 

 

  

지금 어디 있나?”

 

 

  

이스라엘에 있습니다우리 요원이 감시중입니다. ”

 

  

벤구리온은 그가 아이히만이 확실한지 거듭 확인하였고

그의 신원이 100% 확인되자 그제서야 한도하며의회에 알렸다.

 

이세르 국장은 바우어 검사를 만나아이히만의 체포 소식을 알렸다.

소식을 듣자 바우어는 눈물을 흘리며기뻐했다.

 

 

오후 4

 

  

의회 본 회의에서 벤구리온이 연단에 올라 발표문을 읽었다.

발표문의 내용은 아이히만의 범죄내용과 그를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하겠다는 내용 이였다.

 

 

1961년 4월 11

예루살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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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하우스너 검사)

 

 

그를 기소한 검찰 측 증인들은 당시 유대인 대학살에서 생존한 110명의 인원들이였다.

검찰 측 검사는 기드온 하우스너(Gideon Hausn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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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제르바티우스(Robert Servatius) 박사)

 

 

 

아돌프 아이히만도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독일 변호사인 로버트 제르바티우스 박사였다. 

3만달러에 이르는 아이히만의 변호사 수임료는 전액 이스라엘 정부가 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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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하우스너 검사와 로버트 제르바티우스 변호사)

 

 

 

기드온 검사를 주축으로 이스라엘은 아이히만에게 

Final Solution 작전을 비롯한 수많은 학살에 대한 책임을 주장하며, 증거들을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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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는 아이히만)

 

 

https://youtu.be/9R_T-SVZgh0

(아이히만 재판영상)

 

 

 

아이히만측은 

그는 당시 자신이 저질렀던 행위는 자의가 아닌 

군인으로서 명령에 의한 것 이였다고 변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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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이때 재판을 지켜보던 한나 아렌트는 이를 보고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였다.

 

  

잘못된 법과 정치에 복종한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하로니 팀이 조사하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은거하며 지냈을 당시 

 

그의 언행이나 행동은 명령에 의해 학살을 저지른 자가 아닌,

더 많은 유대인들을 죽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 이였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러한 주장은 당대에 큰 이슈를 불러왔다. 

거센 반대여론에 살해협박까지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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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던 한나 아렌트를 다룬 영화.)

 

 

  

진실이 어찌되었던 간에

 

  

1961년 12월 15이스라엘 법정은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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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중인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이에 대해 항소하였지만 기각 당했다.

그에 대한 사면요청은 이츠하크 벤즈비 대통령에 의해 거부됐다.

 

1962년 531일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다.

그는 사형집행 전 목사와의 시간도 거절하였다.

 

이때 뜻밖의 방문자가 들어왔다.

바로 아이히만 체포 작전을 지휘하였던 라피 에이탄이였다.

 

둘은 아무말 없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시간이 되자아이히만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다음에 죽음의 신이 내려올 때그땐 당신 차례가 되길 바라오 

 

 

 

아이히만은 교수대 위에 올라섰다.

그의 얼굴엔 복면이 씌워졌고,

그의 목엔 올가미가 걸렸다.

 

  

일부 허가된 참관 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나는 전시법규를 준수했고 국기에 충성했다....”

 

 

  

두 명의 경찰관이 동시에 버튼을 눌렀다.

어느 버튼이 낙하문을 작동시키는 버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누가 아이히만을 죽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시신은 바로 화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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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의 일화는 영화로도 나오게 되었다.)

 

 

 

 

  

라피 에이탄은 멀리서 연기가 피어나는 화장터를 바라보았다.

마치 아우슈비츠수용소의 가스실을 보는듯했다.

에이탄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임무 수행을 위해서....

 

  

 

 

같은 시각 즈비 말킨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위독한 상태였다.

말킨의 누나 프루마와 그녀의 어린 아이들은 수용소에서 죽었다.

 

말킨은 허리를 숙여 어머니에 귀에 나지막히 말했다.

 

어머니....누나의 원수를 갚았어요...제가 아이히만을 잡아서 법정에 세웠어요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말킨을 바라보았다.

 

네가 프루마를 항상 기억할거라 믿었단다.”

 

말킨의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1962년 6월 1

이스라엘 영해 밖으로 한 척의 경비선이 나왔다.

해안 경비대의 경비선이였다.

 

  

멈춰있는 경비선에서 경찰관 한 명이 나와 아이히만의 유해를 바다에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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