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cm, 93kg의 당당한 체격을 가지고 20대 후반의 나이에 라이트 헤비급으로 데뷔. UFC에서는 미들급으로 활동했으며2013년 반다레이 실바와의 명승부 난타전을 펼치고 은퇴, 최근까지 UFC 해설가를 맡으면서도 팬들이 선사한 "The All-American" 이라는별명을 썼던 남자. UFC 팬이라면 브라이언 스탠이라는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브라이언 스탠은 미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젊은 시절, 아이비 리그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지만 '나의 길은 군인.'이라며 모두 거절하고1999년 합격률 9%의 미 해군사관학교 입학에 도전했다. 미 해사의 지원란에는 '16∼20세의 미혼인 미국시민으로 대통령,부통령, 연방 의원의 추천자 또는 명예 훈장 수여자의 자녀'라는조건이 명시되어 있는데 (미국 전체 상,하원의원은 모두 합쳐 535명으로 보통 인당 10장씩 추천서가 내려온다.) 브라이언 스탠은 상원, 하원의원 두명에게 추천서를 받았으며 브라이언 스탠을 지목해서 '올해에 내가 추천한 학생들 중 최고'즉, 그 해에 한 장 뿐인 연방의원의 수석 추천서를 받고 미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미 해군사관학교 미식축구 주전 선수 (라인배커)로 활약했다.
(신참 소위 브라이언 스탠) 그는 2003년 미 해병대 소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이라크전에 참전, 미 해병 제2연대전투단 2연대 3대대 화기중대 소속으로3년이 넘게 전선에서 복무했다. 브라이언은 스탠은 24세, 중위 시절 은성무공훈장과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았다.그러나 본인은 자신을 치켜세우는 얘기를 하는 것을 꺼려했는데 그 이유를 밝혔다.
2005년 '투우사(Matador)' 작전 도중, 소대장 브라이언 스탠 중위와 42명의 소대원은이라크 카라빌라 북부의 라마나 다리를 점령하기 위해 이라크 무자헤딘의 방어선을 돌파해야 했다. 그 와중에, 브라이언 스탠과 소대는 적의 대규모 기습을 받고 적진 한복판에 고립되고 만다. 6일 동안......
브라이언 스탠이 지휘하던 소대원의 헤드캠에 찍힌 기습 당시 영상
사망자는 없었지만, 차량 기동 불능, 일병 조나단 로우(Jonathan Lowe)는 다리에 심각한 부상
'즉시 트럭에서 나와라!'
자살 폭탄 트럭의 공격으로, 상병 로버트 개스 (Robert Gass) 의식 불명.
총 30정에 가까운 RPG, 자동기관총 및 급조폭발물 (IED) 공격, 박격포 세례,세 대의 자살 폭탄 차량이 달려드는 상횡에서 소대원 42명의 목숨을 짊어진 24살의 중위 브라이언 스탠은,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활로를 뚫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브라이언 스탠은 두 명의 부상병을 후송하기 위해 구조 헬기를 불렀으나, 야간에 RPG에 격추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결국 적을 따돌려가며 최대한 안전지대를 찾아 헬기를 엄호하면서 부상병을 후송해야 헀다. 그는 소대원을 데리고 앞장서서 4KM 길이의, 적이 포위한 도심지역을 세 번이나 횡단했다.그 와중에 버려두었던 세 대의 차량을 회수하고 결국 근접항공지원 작전도성공적으로 유도하여 새벽녘에 두 명의 부상병 후송에 성공.
그 후 40명의 소대원들과 적진을 뚫고 유프라테스 강 진지에 도착,
6일 동안 적의 공세에서 진지를 사수했다.
이후 아군과 합류했고 기지에 복귀했을 때 결과는
사망자는 0명, 42명 전원 생환
자살 폭탄 공격에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불명이었던 로버트 개스 상병도 후방 이송, 대수술 끝에 생존했다.
훗날 재회한 브라이언 스탠 소대장과 소대원 로버트 개스 상병
생명의 은인을 바라보는 로버트 개스 상병.
(머리에 흉터가 크게 남았다.)
그리하여 복귀한 24세의 브라이언 스탠 중위는
대통령 표창과 은성 무공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브라이언 스탠은 다친 부상병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밝혔다.
'내가 먼저 봤더라면, 내가 작전 지휘를 조금만 더 잘했다면, 내가 더 필사적이었다면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고 하면서.
그래서 '영웅담'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자신이 소대원의 공을 뒤집어 쓴 것 같아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2008년, 브라이언 스탠은 돌연 전역 의사를 밝혔다. 무수한 전역자들의 사회 적응 실패, 자살, 마약중독...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으로 노숙자로 전락한 동료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다 군 생활을 그만두게 된 만 28세의 브라이언 스탠은
UFC 선수 활동
헬스케어 기업 부동산 담당 (Vice president)
대학 풋볼 해설자까지 3개 영역을 오가며 자금을 모았다.(브라이언 스탠은 개인 SNS에서 자신이 과거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로 세 직종 모두가 프리랜서에 가까운,성과 지향에 외부 활동이 많은 업무여서 가능했다고 밝혔다.) 브라이언 스탠은 저녁 시간 훈련을 하고, 주말 풋볼 경기가 있는 날에는 해설을 하며MedAsset이라는 미국 내 4,400개 병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는 헬스케어 기업의 기업 부동산 담당 VP (Vice president)로 재직하면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두 번의 대규모 인수를 맡았다.26개 주의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면서 재임 기간 동안 많은 신규 사업소를 추가하였으며 총 1800만 달러 규모의 모든 임대 협상,건설 프로젝트 및 물류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상장 회사의 부동산 물류 계획 및 관리, 기업 인수 과정에서 관리적이고 능률화 된 프로세스와 지휘 구조를 재확립 한 공로로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2009년 CEO로부터 우수직원 시상을 받기도 했다.
30세, 그는 '맞춤식 취업 교육을 통해 미군 참전 용사 및 배우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 을 위한 비영리 단체 Hire Heroes를 설립했다.사회에서 낙오하는 전우들을 다시 사회에 복귀시키고 적응과 정착을 돕는 단체를 만든 것이다. 2014년에 1,400명 이상의 지원자를 확보하여 기존의 매 주 60명의 참전용사가 취업하던 것을, 117명으로 거의 두 배 늘렸으며월마트, CODE, USO에게서 1500만 달러의 참전 용사 지원 모금을 성공시켰다. '정직, 열정, 효과 및 협력'의 핵심 가치를 개발, 의사 결정 및 로드맵을 제시하였고2015년 참전용사들을 "도움"에서 "채용"까지 전례없는 45%의 전환율로 달성하는 성과를 내었다.
이 곳에서 CEO를 맡는 동안 미 해병대 행사, ADP (미국의 대표적인 고용시장 조사업체. 대기업), 미국 해군 사관 학교,각종 참전용사 재단 등 50 개 이상의 기업과 행사에서 연설을 했다고 한다. 모두 UFC 선수, 해설가 생활동안 병행하면서 한 것이다. 이 참전용사 지원 단체를 운영하면서 이룬 업적으로브라이언 스탠은 이 일로 미 정부에게 두 번째로 감사패와 표창을 수여받는다.CEO로 있는 동안 무려 11,000명 이상의 참전용사 및 제대군인의 사회적응을 성공적으로 돕고 취업을 알선했다.
만 34세, 선수에서 은퇴한 스탠은 UFC 해설자와 Hire Heroes CEO를 겸임하면서 포춘(FORTUNE)지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위 사진이 인터뷰 당시이다) 사실 포춘지 뿐만 아니라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초청되기도 했다. (브라이언 스탠의 정치적 스탠스는 우파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UFC 해설자로 활동하던 2017년 7월,브라이언 스탠은 미국 내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부동산 회사에서 경영진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UFC 해설직을 은퇴하고 미국의 최상위권 MBA인 노스웨스턴 대학 MBA (캘로그 MBA, 마케팅 분야 세계 탑급) 과정에 입학하여세계에서 모인 인재들과 같이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중인 브라이언 스탠은, 만 37세에 제 3의 도전을 시작했다. 가정에서는 세 딸의 아버지로 최근 취미로는 드럼 연주와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 잠들기 전에는 하루 일과 중 실수와 잘못을 되돌아보며 잠들었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며 정신을 깨우고정해진 시간에 몸을 씻고 그 날 할 일을 체계화하여 새벽부터 준비하는 일과를평생을 해왔다는 브라이언 스탠. 현재 39세인 지금도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1980년 출생 전) 미 해병대 예비역 대위 - 은성무공훈장, 미 대통령 표창, UFC 파이터, UFC 해설가, Hire Heroes CEO,예비) 기업 최고운영책임자(COO) 브라이언 스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