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군의 과거..

신들어라 작성일 17.12.08 1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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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군 일반 사병 지급 물품..먹은거에다 엄청나게 집중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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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나중 , 인생이 먼저... 탄약을 팽개치고 와인 부터 보급 우선으로 처리 했다 하는 이탈리아군 전설


 

 


 

이탈리아군 전사戰史 

 


 

기원 전 510년 

 


시바리스라는 도시 국가에서 승리 축하 퍼레이드를 위해 

 

군의 기마대에 소속된 말들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도록 교육했다. 

 

헌데 국가의 운명을 건 결전에서 상대편에서 음악을 연주하자 

 

기마대의 말들이 전원 대혼란. 

 


결국 대패 

 

 





1866년 6월 

 


20만의 이탈리아군은 알프레히트 대공이 이끌던 오스트리아군 7만 5천에게 대패 

 





1866년 7월 

 


국가 통일 전쟁으로 오스트리아에게서 베네치아를 손에 넣으려 벌였던 리사 해전 

 

리사섬을 공격하기 위해 이탈리아 함대가 취한 행동은 아래와 같다. 

 


첫번째 출항, 바다위에서 장황한 연설을 하는 것으로 끝 

 

두번째 출항으로 리사섬을 한바퀴 쭈욱 돌아보는 유람으로 끝 

 

세번째 출항 때는 마지못해 일단 싸우긴 했다. 

 


오스트리아 측은 배 한대도 잃지 않은 반면, 이탈리아 군은 배 3척을 잃음 

 





1895년 

 


에티오피아에서 기관총으로 무장한 이탈리아군이 원주민에게 대패 

 

그 전에 이미 한번 더 진 적이 있기 때문에 연속 2연패 

 

6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패였다. 

 





1896년 

 


다시금 에티오피아와 싸움. 

 


에티오피아군 1000여명의 사상자 발생 

 

이탈리아군 5000여명 사상자 발생 

 







1. 1866년 6월 상대는 오스트리아군 

 


20만의 이탈리아군은 알브레히트 대공이 인솔하는 오스트리아군 7만 5천명에게 대패 

 




2. 1866년 7월 리사 섬 공략 

 


첫번째 출격시는 해상에서 사령관의 장황한 연설만으로 종료. 두번째 출격때는 리사섬을 유람 주유하고 종료. 이후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정부와 국내 여론이 들끓어 비난을 받자 페르사노 사령관의 말은 

 


「 아직 우리 함대는 전투를 할 수 없다! 」 

 


3번째의 출격때에야 마지못해 전투를 시작, 리사 섬의 오스트리아군은 1개연대 반의 병력에 80문의 구식포가 전부여서 이탈리아군도 승리를 낙관하고 함대 28척에서 4시간동안 예비 포격을 가했지만 오스트리아 포대의 반격에 페르사노 제독은 즉각 후퇴(...) 최종적으로 이탈리아군은 군함 32척을 동원하고 병력 26,000명을 상륙시키고 나서 리사섬을 간신히 점령. 

 





3. 1866년 7월 리사 해전 

 


상대인 오스트리아 함대의 함포는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전장식. 이탈리아 함대는 함포의 성능, 장갑함의 수, 함대의 총 숫자와 배수량에서도 상대를 압도했지만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충각 전술에 의해 대패. 

 


개전 직후 사령장관 페르사노 제독은 최신예 장갑함「레디탈리아」에서 바로 며칠전 간신히 함대에 편입해 훈련이 부족한「아폰다토레」로 갈아탐. 이 결과 단종진을 이루던 함열이 일시 정지되고 선두함은 그대로 전진......함열은 분리되었고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 함대의 테게토프 제독은 횡진으로 목조함까지 포함해 전력 돌격. 

 


오스트리아 함대는 목조함까지 싸웠지만 이탈리아의 다른 함대는 방관. 최종적으로 오스트리아측의 침몰은 0, 사망자는 178명. 이탈리아측의 침몰은 3척, 사망자 약 800명. 

 


함대의 양과 질, 모든 스펙에서 오스트리아를 웃돈 이탈리아 함대는 구시대 전술에 대참패. 함고로 충각 전술이 유효하게 기능한 것은 이 해전이 최후. 게다가「 장갑함을 가라앉히려면 충각돌격이 제일!!」이라는 잘못된 전훈을 40년간 세계에 각인시킴. -ㅂ-; 

 





4. 1895년, 에티오피아 아도와의 싸움 

 


기관총까지 장비했지만 왠지 원주민군에게 압도적 대패. 이 직전에 벌어진 안바·아라기의 전투에서도 이탈리아군이 참패한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음. 즉, 이탈리아는 원주민을 상대로 왠지 2 연패......orz 최종적으로는 원주민을 상대로60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대패였음. 

 





5. 1896년 3월 에티오피아 정규군과의 전투. 

 


에티오피아군 전사자 1000여명에 대해 이탈리아군은 5000명 근대에 들어 백인이 유색 인종에게 진 전쟁은 러일전쟁이 최초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처음. 

 




6. 1917년 10 ~11월 카포레토 회전 ( 제 1차 세계대전 ) 

 


오스트리아군과 사이에서 벌어진 카포레토 회전에서 이탈리아군은 대패해 3주간 150 km를 패주. 오스트리아군의 사상자 2만 3천에 대해 이탈리아군은 사망자 1만, 부상자 2만, 포로 29만 3천, 탈주자 3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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