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사들이 수업과 지도방안 등을 공유하는 사이트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번역하는 것은 일본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 대한 가미가제특공대에 관한 교육방법(교육 시나리오)입니다.
번역상 약간의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원본 게시물의 링크
http://www.tos-land.net/teaching_plan/contents/17069
가미카제 특별공격대 수업
제작자 鈴木恒太
학년 초등6 중1 중2 중3 고등
카테고리 사회, 도덕
태그 대동아전쟁 태평양전쟁 사고 역사 특공대
가미가제특별공격대
추천 법칙화 러너스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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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개요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말기, 특히 처참한 오키나와전쟁에서 "가미카제 특별공격대'가 출격했다. 당시의 미래가 있는 젊은이들이, 높은 지성을 가지고 현대를 사는 우리를 위해 출격한 것을 배움으로써,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오늘을 살게 해 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도록 실천.
가미카제 특별공격대 수업
1. 수업의 목적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말기, 특히 처참한 오키나와전쟁에서 "가미카제 특별공격대'가 출격했다. 당시의 미래가 있는 젊은이들이, 높은 지성을 가지고 현대를 사는 우리를 위해 출격한 것을 배움으로써,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오늘을 살게 해 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2. 실천내용
6학년생,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학습이 끝난 후 실천한다.
수업의 시작에서 파워포인트로 다음과 같은 편지(시)를 보여 준다.
우리들의 고통과 죽음이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비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
질문1 :
이 시는 언제 만들어진 것입니까?
아이들 "대동아전쟁 때"
아이 "'고통과 죽음'라고 써 있으니까 전쟁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
파워포인트를 보여 주면서 설명한다.
설명 1 :
1945년 대동아전쟁 말기 .
미국은 이오지마(硫?島)를 제압한 후 오키나와를 목표로 했습니다.
1945년 4월1일 공격해 온 미국의 오키나와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출격한 군인의 말입니다.
지난 시간까지의 복습을 위해 다음의 화면을 보여주며 "이 시대였지요." 라고 가볍게 취급한다.
1941년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개전
1942년 미드웨이 전투
1945년 2월 이오지마 전투 → 3월10일 도쿄대공습 등의 무차별 공습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투하
1945년 8월9일 나가사키에 원폭투하
1945년 8월15일 포츠담선언 수락
지침 1 :
그들의 이름을 "가미카제 특별공격대", 통칭 "특공대"고 말합니다.
모두 따라해 보세요.
아이들 "가미카제 특별공격대"
사진과 같은 젊은이들이
"비행기에 250kg의 폭탄을 싣고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전함을 향해 돌진한다."
라는 사명을 띠고 출격했습니다.
그들의 출격직전의 사진입니다.
특공대 중에는 스스로 함께 싸우고 싶어서 지원한 조선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민족 구별없이 평등하게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를 받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서로 술을 나눠 마시고 많은 사람의 전송을 받으며 출격했습니다.
설명 2 :
그들의 목숨을 건 공격을 본 미국해병대의 말입니다.
해병대 "10명 중 7명은 감격의 눈물을 머금으며 보았고, 나머지 3명은 오히려 증오를 가지고 보고 있다. "
면접관 "너는 어느 편인가?"
해병대 "저는 7명 중 1명이다. "
해병대 "저 사람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있다. 나도 입대 했을 때는 목숨을 바칠 각오였다. 하지만 저런 방식으로는 ... "
일본이 이들 특공지원자인 사람들에게 무감각인 채 있는 것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생략)
그들의 용기, 결단력, 자기희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다시봐도 감탄스럽다.
베르나르 미로 "KAMIKAZE"
질문2 :
미국 해병들은 "특공대" 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요?
아이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굉장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아이들 "자신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질문3 :
목숨을 걸고 출격한 "특별공격대원"은 전쟁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세가지 선택을 제시한다.
① 자폭공격의 성과로 승리한다고 생각했다.
② 이기지는 못하지만, 미국이 무조건 항복을 단념하여 정전협정이 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③ 그래도 이길 수 없다. 진다고 알고 있었다.
"무조건 항복" 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
"무조건 항복" 은 전승국이 패전국이 무엇을 해도 불평을 못하는 조건으로 항복한다는 의미입니다 .
극단적인 예를 들면, 전쟁이 끝난 후 가족이 살해당해도 불평을 할 수 없는 궁극의 항복조건입니다." 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학습의 축적때문인지, ①을 선택 하는 아동은 거의 없었다.
② 이 절반 , ③ 이 절반 손을 있었다.
설명 3 :
"특공대"의 명령을 지휘한 '오오니시 타키지로(大西瀧治?) 중장' 의 말입니다.
이것은 십중팔구 가망없다 .
이것을 성공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오오니시는 바보가 아니다.
설명 4 :
실제로 "특공대"로 출격한 '니시다 타카미츠(西田高光) 중위'의 말입니다.
나는 일단 인텔리 입니다.
이렇게 쉽게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질문4 :
지휘관도 특공대원도 자신들이 출격하여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이들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문5 :
그렇다면, 특공대원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죽었을까요?
① 가족을 지키기 위해
② 일본을 지키기 위해
③ 강제로
④ 기타(자포자기 등)
①이 가장 많았다.
②는 3명.
③은 1명 있었다.
④는 약 절반이었다.
설명 5 :
이것은 특공대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 것이 제일 좋을 듯 하군요
세키 유키오(?行男) 대위
저는 내일, 천황폐하를 위해서 아니고
일본제국을 위해서도 아니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출격한다.
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죽을 것이다.
사이죠(西?)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고생만 끼쳐드려 너무나도 죄송할 뿐이다, 용서해 주십시오.
마리코(?里子)님
아무것도 해주지도 못하고 가는 것은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국가의 안위를 위해 떠난다
그 밖에도 몇 명의 증언을 소개한다.
설명 6 :
모두 가족과 부모에게 "먼저 떠나 미안하다"라고 사과하면서 가족과 일본을 지키기 위해 출격했습니다 .
설명 7 :
"특공대는 강제였는가?" 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습니다.
전쟁 중에 미국에서 지적한 특공대원은 사슬로 조종석에 묶여 있었다, (중략) 마약을 맞거나 만취하거나 (중략), 정신을 마비시켜 출격했다 등의 이야기는 진실과 먼 이야기입니다.
리처드 네올 "세키(?)대위를 알고 있습니까? "
※장개석 중국국민당군은 소위 제2차난징사건에서 병사를 사슬로 토치카에 묶어서 일본군과 싸우게 했다는 증언 · 증거가 남아있다. 중국과 소련의 공산당 군대도 독전대가 조직되어 도망하는 동포군인을 쏴 죽이는 전문부대가 있었다.
결행 앞서서 며칠전, 때로는 몇 주 , 몇 달 전부터 미리 그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베르나르 미로 "KAMIKAZE"
설명 8 :
만약 정말, 마지못해서 한 강제라면, 그 전에 어딘가로 도망갈 수 있었니다.
그들은 미리 출격을 명령받았고,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니다.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어제 조용한 황혼의 논밭 속에서 아직 얼굴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우리들에게 고개 숙여 준 아이들의 애처로움에 강한 감동을 느꼈다.
정말 저런 귀여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결코 아깝지 않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
만약 네가 남자라면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일본인이 되어라
만약 네가 여자라면 마음씨 좋은 여성이 되어다오
그리고 어머니를 잘 모시고 성심껏 효도를 다 하여라
아버지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에게
마지막 일기 해군대위 이치자마 야스오(市島保男) 23세
그냥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뿐, 가벼운 마음이다.
옆의 방에서 "그 누가 내고향 잊을 수가 있나?(誰か故?を思はざる)'를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 평화로운 남국의 분위기다.
무료함에 연꽃을 따러 나갔지만 지금은 꽃을 든 사람도 없구나. 배꽃과 함께 포장하니 어렴풋이 추억을 그리워한다 .
땅거미 속을 누비며 간다.
옆의 방에서는 술을 마시고 떠들고 있지만, 그것도 이젠 그만. 나는 죽을 때까지 조용한 마음으로 있고 싶다.
인간은 죽을때까지 계속 정진한다. 하물며 대화혼(大和魂)을 대표하는 우린 특공대원이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행동을 끝까지 견지하고 싶다.
나는, 자기의 인생은,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를 걸어 온다고 믿고 있다.
정신도 육체도 부모로부터 받은 채로 아름답게 살아남는 것은 신의 크신 사랑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랑 덕분이었다.
지금 끝없이 아름다운 조국에 우리 맑은 생명을 바칠 수 있기에 자부심과 기쁨을 느낀다 .
설명 9 :
방금 전 소개한 "특공대" 를 지휘한 "오오니시(大西) 중장"입니다.
오오니시는 특공대원들을 모아 훈시했다. 대담하다고 알려진 오오니시는 이야기 내내 몸이 조금씩 떨리고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고 한다 .
오오니시는 눈물을 글썽이며 "잘 부탁한다" 라고 훈시를 끝냈다.
오오니시 중장은 조종사 한명 한명과 악수하고 그들의 무운을 빌었다.
오오니시는 군령부 차장으로 내륙으로 귀환했다. 관사에 독거하며 아내와 함께 살지 않았다 .
"일주일에 한 번은 귀가해 부인의 가정요리를 먹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네, 가정요리라니? 특공대원은 가정생활도 모르고 죽어간거다. 614명 모두 말이다. 나와 악수하고 간 것이 614명이나 있었다."
"특공은 통솔권 밖이다 "
"죽을 때 가능한한 고통스럽게 죽는다 "
이 말대로 (종전 다음날) 조력자 없이 할복자살을 하여 15시간동안 극악의 고통끝에 사망했다.
설명 10 :
유서(1945년 8월16일)입니다.
"피로 물든 유서(1945년 8월16일)"
특공대의 훌륭한 영혼들에게 말한다.
지금까지 잘 싸워 주었다 ... 고맙다 ... 진심으로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너희들은 일본의 최후의 승리를 믿고, 육탄으로 산화해 갔다.
그러나 너희들의 귀한 믿음은 결국 달성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너희들과 너희들의 유족에게 사과한다.
그런 미래를 살 전후의 일본 청소년들에게 말한다.
가볍게 행동을 하면, 이적 행위가 되니까,
나의 죽음으로 폐하의 고귀한 결정에 따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교훈으로 삼아 준다면 기쁘겠다.
전후를 사는 일본인들아, 앞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 것이다 ....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결코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일본의 아이들. 너희들은 "일본이라는 나라" 의 보물이다.
어떤 때도 "절대 꺾이지 않는다!" 라는 특공정신을 계속 지켜, 일본 전민족의 복지와 세계평화를 위해 ... 최선을 다 해라.
해군중장 오오니시타키지로(大西瀧治朗) 命
설명 11 :
오오니시 중장은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어서, 이러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① 일본 민족이 장차 멸망할 때에, 온 몸으로 이를 막았던 젊은이들가 있었다는 역사를 보여준다.
② 이것을 들으시고 폐하께서 친히 그분의 마음에 의해 전쟁을 그만두게 됐다는 역사를 보여준다.
※ 이것에 의해 종전에 반대하는 세력의 반란을 막으려 했다.
설명 12 :
특공대로 죽은 "니시다 타카미츠(西田高光) 중위" 의 말입니다.
나는 우선 인텔리입니다.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다고 해도 ...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우리의 생명은 조약의 조건에도, 그 후 일본인의 운명에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민족의 자부심 ....
모든 사람들이여... 잘 있거라, 뒤를 부탁한다.
설명 13 :
"전쟁에 져도 이 후의 조약의 조건에 하나라도 일본에 유리한 조건을 도출하기 위해"라고 생각하고 출격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니시다타카미츠 중위 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
"모든 사람들이여.... 잘 있거라, 뒤를 부탁한다."
아이들은 다양한 자료를 보여 줘도 이미지화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해봐도 상상의 영역에 들어가 버리지만, 다음 영화에서 공격장면을 시청한다.
실사가 싫다는 사람은 애니메이션 영화도 있다.
영화 '나는, 너를 위해서 죽어간다 '(감독 이시하라 신타로[石原?太?] 씨)
영화 '영원한 0 (제로)」 (감독 야마자키 타카시[山崎貴] 씨)
영화 '너를 잊지 수 없다' (감독 와타나배 타카시호[渡邊孝好])
영화 ' 영령 들의 응원가 '(감독 오카모토 키하치[岡本喜八])
애니메이션 영화 'THE COCKPIT'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
설명 14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헛된 죽음이었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
오키나와 전쟁에서 살아남은 여학생의 증언입니다.
당시 여고생이었다는 그 여자는 "특공대의 돌진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라고 한다 .
강철의 폭풍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군의 끊임없는 함포사격도 특공돌진, 그때만은 포격은 모두 특공기에 겨냥된다.
여학생들은 그 틈을 타 동굴에서 뛰쳐나와 생명의 물을 구하러 달렸다.
"지금도 특공대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라고 그 노인은 눈물을 삼켰다.
수업을 여기서 끝내도 좋다. 그러나 다음 말을 덧붙여 끝내면 더 좋다.
야경 선생님으로 유명한 미즈타니 오사무씨의 강연회에서 "원조교제를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마약을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서는 안된다!" 라고 10대의 젊은이에게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인용하여 수업을 마친다.
설명 15 :
미국은 50년마다 군사기밀자료를 공개한다. 그 안에 오키나와전쟁에 대한 설명이 있다.
비참한 오키나와 전쟁 때 724명이 방공호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제네바협약을 위반하고 민간인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모든 동굴에서 인기척이 있으면, 폭탄과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이나 화염을 퍼부었고 끝내는 전차로 구멍마다 짓밟고 막았다.
그때 안에 있던 주민들은 동굴의 가장 안쪽에 어린 유아나 아기를 숨기고 노인, 성인, 고등학생과 중학생, 초등학생까지도 허리 에 많은 총탄을 맞아서 절규하며 절명하면서도, "적어도 어린 이 아이들만은" 이라며 자신을 희생해서 지키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724명 중, 단12명의 아기와 유아가 살아 남았다.
특공대는 앞에서의 증언처럼 멀리서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
즉, 지금 너희들이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조상들이 단 한 명이라도 아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이어지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속에서 너희는 많은 사람들이 바친 생명 위에 서 있는 거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키나와 등에서 피투성이가 되면서 "적어도 어린 아이만이라도!" 라면서 이어진 생명의 하나인 것이다. 너의 목숨은 너의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탁되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