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V 포 벤데다. 약간 긴 개인적 리뷰입니다.

김찬 작성일 06.04.04 17:57:01
댓글 3조회 1,890추천 3
- 영화내공 : 우수함


일단 한마디로 하면 "추천"입니다.

딴건 다 제쳐두고 저 한테 가장 좋았던 부분들만 몇군데 꼽겠습니다.

첫째가 븨의 캐릭터입니다.

이 인간, 말을 상당히 철학적으로 합니다.

자기 이름 소개하는데 5분정도 걸렸나 하하하. 참 재미있는 양반이지요.

입을 열때마다 튀어나오는 문학적인 단어들과 비유, 속에 칼을 품은 듯 번뜩이는 사르카즘.

대사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단어들.
(그렇소 전 미국서 관람했소...)

븨의 처참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강력히 풍겨나오는 그 위트와 카리스마.

간혹 어린애같은 천진난만함까지...

아마도 븨 자신은 평소에 가져보지 못한 기분이었겠죠.

평생을 복수로 불태운 에드몽 단테스가 주인공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보면서 혼자 칼놀이를 하는 모습이란...

그의 연설에서 묻어나오는 다양한 느낌과 처절함...살짝보이는 기대와 희망...

제가 자막을 보진 못했으나 이 영화가 지루하거나 임팩트가 적게 느껴졌다면

아마 분명히 븨의 대사를 망쳤을 게 뻔한 번역의 탓이라고 보여집니다.
(직접 보진 못했으나, 대충 들은바로 짐작은 갑니다...
이런 것일 수록 의역을 팍팍해서라도 캐릭터를 살려야 하는데...)

븨가 처음 등장, 자기소개(아니 일장 연설인가...^^)를 하던 부분 부터,

"저놈 끝내주는걸.." 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건 븨의 비극적 인생과 그에 대조되는 시적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그리 나이가 많지도 않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지도 않았으나,

제가 어렸을 땐 데모도 많았고, 거리에서 자주 수류탄이 터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온것처럼,

막말로 정치얘기를 하고 진정한 자유를 외치다간 어디론가 소리소문 없이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반병신이 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학창시절...

지금 돌아보면 웃음만 나오나, 그 당시엔 왜 그리 괴로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남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정력을 쏟거나 미래의 진로를 찾아가고 있는데,

나는 여기 않아서 일생에 전혀 도움도 안되는 4지선다 문제나 6년씩 "연습"하고 앉았고,

결국 결과라고 돌아온다는 것이,

함께 고생하고 단 하나의 의지가 되던 "친구들"의 머리를 밟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것 뿐입니다.

매일 좀비처럼 앉아있다가 시간만나면 선생님에게 얻어맞고 기합받던 그때.
(지금생각하면 그 분들 말씀 다 맞고 구타나 뭐나 다 애들장난수준이었지만...)



당시, 제 어린 머리속엔,

언젠가 모두가 들쳐 일어나 부정한 모든걸 날려줄 그 날이 오리라...

모두 한 마음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적어도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

유치하지만 매일매일 머리속에 그리던 그 그림입니다.

절대 상황이 절박하고나 했던건 아니지만, 잘못된 건 잘못된 겁니다.

제 아버지 세대가 학교에서 밥이 없어 물로 연명했던거에 비하면 장난이지요.

하지만 그때보다 낮다고 해서 옳은건 아니고, 조용히 닥치고 있어야 하는건 아닙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희생했을 테니, 전 우리도 잘못된 건 고쳐나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땐.

지금도 생각해보면 제 학창시절은 절대 정상이 아니었죠...하긴.



거의 10년 정도 지나 어제 그 영화를 보면서

어렸을때 마음속에 그리던 장면들이 계속 생각나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안기부에 끌려가듯 잡혀가는 지식인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과거보단 지금이 나으니 불평말고 닥치라...라는 공포정치,

부정, 폭력, 권위에 대한 대항...정부고 뭐고 다 쓰레기 치우듯 치워버리고 싶었던 그 느낌.

나중엔 모두 한마음으로 저항하는 그 모습.


그리고 거기에 븨 라는 인간이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처절해야만 하지만, 극단적으로 시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으로 꽉차서, 거의 고전에서 튀어나온듯한, 멋드러진.

가끔씩 느껴지는 냉소와 분노가, 그가 투쟁하는 위치에 있다는 걸 재인식시킵니다.


최고의 명작이니 뭐 이런 영화는 아닙니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때로는 과장적으로 표현된 부분도 많은 것 같으니까요.

적어도 제가 최근에 본 영화중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중 하나였습니다.


PS: 나탈리 포트만은 오랜만에 봤는데 예쁩디다. ㅎㅎㅎ
그래도 카리스마가 주인공에 비해 너무 딸려서 얘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그리고 제가 책읽기를 싫어함에도 불구,
카운트 어브 몽테크리스토는 제가 어릴적에 최고로 좋아했던 책입니다.
좌절, 복수, 사랑, 결국 피 묻은 손 빼고 남은건 하나도 없는 결말 등등.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해피엔딩으로 재구성되는 바람에 쒸레기 필이 폴폴 납니다만.
그 소설도 강력 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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