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도, 상인의 도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남자지만 언젠가는 전국을 휘어잡는 마약조직책이 되겠다는 꿈을 지닌 중간마약상,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배도/친구도/동료도 특히나 가족도 믿지 못하는 인간.
도진광, 진짜 미친놈이라는 이름답게 앞 뒤 가리지 않고 수사하는 철저히 미친개다. 영업사원스럽게 뻔지르르말은 잘하지만 이 인간 말이 진실된 것이라고 믿는 놈은 바보다. 선배의 복수랍시고 앞뒤가리지 않고 약장수들을 조져대지만 사실 이 인간 그 선배 미망인과 붙어먹은 그렇고 그런 한심한 인간이다. 결국 형사질 밖에 배운게 없어 형사일 수 밖에 없는 내츄럴 본 형사.
영화 사생결단은 간만에 만나는 한국형 버디무비다. 헐리웃의 같은 장르가 서로 다른 두 남자가 만나서 좌충우돌을 겪고 그러다가 우정을 발견하는 해피엔딩임에 반해 이 영화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이 말종인간들은 자신의 위대한 목적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철저히 이용한다. 악어와 악어새라는 영화 홍보문구의 그럴 듯한 말과는 달리 이 영화는 욕망과 목적의식으로 점철된 지독한 먹이사슬관계의 두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상도와 도진광의 공통점은 욕망에 휩싸여있다는 점이다. 특히 상도는 어떤 면에서는 철저히 이기적인 인간이지만 어쩔때는 마약의 수렁에 빠진 한 여자를 돕는 착한 면도 보이는 남자다. 하지만 인생역전의 기회가 왔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그 달콤한 꿈에 올인한다. 그래서 이상도는 철저히 나쁜 녀석이다.
도진광도 마찬가지다. 명목상 선배의 복수를 한다는 자기최면에 빠져있지만, 큰 건 하나 제대로 엮어서 부와 명예를 한숨에 쟁취하려 한다. 그에게는 정보원도 동료도 그냥 하나의 수단일 뿐인 것이다.
여기에 장철이라는 전국구 마약책과 그에게 마약을 제조해 제공하는 교수라는 인물을 잡아넣기 위한 이들의 공생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마약이라는 짜릿한 욕망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한다. 구구절절한 마약의 폐해보다는 쇼킹한 이미지들로 그 느낌을 확실히 전달한다. ,의 감독답게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시각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임이 틀림없다. 거기에 추자연이 연기하는 마약중독자 지현을 통해 마약이라는 것의 폐해를 관객들이 실감할 수 있게 많은 부분 신경쓴 점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그리고 과거 스푸트니크라는 디자인 사무실 실장 출신이자, 한국 영화포스터의 대가이기도 한 김상만씨가 음악과 비주얼 아티스트를 맡아 화려하면서도 2비트 음악이 어우러지는 사생결단만의 분위기를 만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말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운 영화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류승범은 전작인 에서의 말랑말랑함을 벗어던지고 다시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의 이상도는 관객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모습을 선사한다. 20대 배우 중에 가장 영화배우다운 그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 잘 보여진다.
황정민 역시 류승범에 뒤지지 않는 능청스러운 도경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실제 그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짐승같은 그의 연기는 조만간에 그를 한국영화 최고의 연기파로 사람들에게 각인 될 정도다. 감독이 에서 알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조합을 만난 것 처럼 기뻤다라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보일 정도로 이 두배우는 징글징글한 연기를 보여준다.
마약/비리경찰/중간판매책 이 소재들을 가지고 이들의 쫓고쫓기는 두뇌싸움이랄지, 숨막히는 갈등 이런것과는 이 영화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밀림의 왕인줄 착각하고 사는 두마리의 하이에나 같은 존대들의 이야기다. 결국 하이애나는 썩은 시체를 뜯을 수 밖에 없으며 하이애나가 밀림의 왕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이 먹이사슬을 뒤엎어버리는 금기다.
물론 마약에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두 쓰레기녀석들의 이야기다.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우직하게 이 두 캐릭터의 이야기로 몰고간 감독의 연출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선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즉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확실히 알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찝찝하다. 소름끼치기도 하고 그런다. 특히 감독이 실제 취재해서 만든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생동감 넘치고 계속 머리를 자극하는 짜릿함이 있다. 아마도 감독은 마약의 단면을 아니 마약의 쾌감을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선사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