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오해들은 한국 영화 관객들의 수준 낮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 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오해들을 주도하는 것은 대체로 저질의 매스컴일 것이고, 이것은 그들의 상업성이 낳은 결과이며, 이것을 용인하는 수준 낮은 관객들은 또 다시 매스컴을 저질 상업적으로 만들어 , 김기덕에 대한 오해는 더해집니다.
(한국 관객의 수준 낮음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른 오해일 수 있고, 어쩌면 영화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화들이 소개되고 다양하게 관람되어지고 평가되어지는 모습이 2000년 이후 우리 영화계에서 잘 보이지 않음은, 적어도 영화에 관하여는 (전통적 의미에서) ‘수준 낮음’이라고 칭해지기에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불륜 이혼 등을 다루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이 그러한 소재를 다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비판받을 수 없듯이, 김기덕에 대한 평가 역시 그러한 소재 이면의 면모들이 살펴지기를 바랍니다.
원조교제의 ‘사마리아’, 매춘의 ‘나쁜 남자’를 만든 김기덕의 또 다른 목록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활’ ‘빈집’ 등이 놓여 있음도 읽혀지길 바랍니다.
원조 교제의 ‘사마리아’는 제가 보았던 가장 가슴 따뜻한 영화들 중의 한편입니다.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사마리아’를 통해서 그 따뜻한 감동을 경험하는 즐거움을 함께 하고 그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으면 좋겠군요.
2. 김기덕은 난해하고 지루한 예술영화 감독이다.
‘나쁜 남자‘의 후반부 장면은 정말 난해함의 연속이죠. 이에 관한 어떤 평론을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경험한 그 난해함의 수십 배의 난해함을 그 평론에서는 말하는 것에 질려 버리기도 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두 소녀의 정신세계를 통해서 김기덕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아마도 ‘빈집’의 dvd를 볼 때였던 것 같습니다. ‘빈’ ‘집’.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정성일의 장황한 의견과 질문에 대해서, 김기덕은 ‘한국의 아름다운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 영화만을 고집하는 어떤 친구는 ‘빈집’을 보고서 그 재미(특히 코믹함)을 극찬하더군요. 냉소적 심리극으로 보이는 드라마 ‘똑바로 살아라’와 홍상수의 영화들을 즐기는 또 다른 친구의 즐겨보기 목록에는 ‘봄, 여름, 가을 ....’이 놓여 있습니다.
김기덕의 각 각의 영화들은, 가장 다양한 관객층에 의해서 가장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 지고 즐겨질 수 있는 멋진 영화들이란 생각을 합니다.
3. 김기덕의 말
코멘터리에서도 그렇고 몇 번의 인터뷰나 이번의 토론에서도 역시, 참 말씀을 못하시더군요(말솜씨가 없다는 애기). 그러한 이유로 일차원적으로 이해되어 왜곡되거나 낚시꾼들의 낚시에 이용되는 모습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괴물’에 관해서
한국에서 영화라는 것은 조금 특별한 것으로 취급되어져 왔습니다. 몇 년째 계속되어 오는 필사적인,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시위들의 근거에는 한국 영화는 한국의 문화주권의 상징이라는 논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에 동의하고, 한국 사회의 대다수가 그것을 지지해 왔던 것 같습니다. 시장의 논리 , 자본의 논리를 어느 정도 배격하고 지켜 낼만한 중요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영화의 위치라는 것이지요.
사수를 위한 그러한 노력들과 국민적 합의의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는 것이 아주 씁쓸합니다. 도대체 ‘괴물’이 관객을 싹쓸이 하는 것과 ‘타이타닉’이 싹쓸이 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들의 위치를, 훨씬 더 독점적인 위치에서 국내 메이저 배급-제작사가 대신하는 이 상황이 과연 얼마나 더 올바른 것인가. 한국 영화계가 그토록 지켜 내고자 했던 문화주권의 본 모습이 과연 이것이었나.
홍보비에 수십억을 쏟는 영화와 제작비가 겨우 몇 억에 이르는 영화는, 이미 작품의 질적 비교의 주체인 관객에게 보여 질 기회에서부터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과연 관객은 ‘실미도’와 ‘태극기~’ ‘괴물’을 선택한 것인가. 낚인 것인가. 아마도 국내의 저예산 영화인들에게, 스크린 쿼터를 등에 업은 한국산 메이저 배급-제작사들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트보다도 더욱 두려운 괴물로 보일 것 같습니다. 대외적으론 문화주권, 대내적으론 시장논리를 내세우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민노당이 제안하려는 그 법안보다도 더욱 강력한 것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예컨대, 객석 점유율이 30프로를 넘는 영화들에 관해서는 스크린쿼터제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과 같은 ...
스크린쿼터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영화, 혹은 보호해줄 필요가 있는 영화만을 보호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