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작 말만 많을 뿐 그 작품들을 극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관객들 역시 적은 아이러니한 감독이 바로 김기덕 이라는 감독이다. 그리고 해마다 선보이는 신작들 중에서도 유독 일찌감치 화제를 몰고 다녔고,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하면서 크게 한바탕 사고까지 쳐버린 영화 [빈 집] 김기덕 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목을 집중하게 하지만 더군다나 영화 [빈 집]은 이승연이라는 의외의, 아니 파격에 가까운 캐스팅으로써 더욱 큰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줄것이다. 기분 나빠하게 될것을, 그리고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나오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봐왔던 골수 영화팬들이든, 단순히 논란의 중심이었던 김기덕 감독과 이승연이라는 이름에 호기심을 가지고 영화를 접하게 될 관객들이든
영화 [빈 집]은 확실히 시선을 끌게 되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 이상 스토리로 들어가겠습니다. -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며 전단지를 붙이는 태석.
그는 한나절 동안 문 앞에 자신이 붙여 놓았던 전단지가 그대로 붙어 있는 빈 집만을 찾아 다니며 주인인양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남자이다.
그는 빈집털이가 아니다.
돈이나 보석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가 먼저 빈 집에서 하는 일은 샤워와 이리저리 널부러 진 옷가지들을 빨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빈 집에서 사진을 찍고 하루를 보낸다.
영화 [빈 집]은 제목 그대로 텅 빈 집을 찾아 다니며 하루하루를 그 집에서 보내는 남자 태석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태석의 행동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가지는 특유의 엉뚱함과 비상식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 [빈 집]은 태석의 그러한 행동과 함께 시종일관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행동과 상황들이 김기덕 감독의 전작에서 느껴졌던 거북함이나 불편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남의 빈 집에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해주고, 밥을 지어 먹는 등 비상식적인 주인공들의 행동 은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 속에서의 이상야릇한 편안함을 전달해주며, 오히려 그런 엉뚱함에서 오는 웃음을 통해 일탈에 가가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해준다.
그리고 [빈 집] 역시 김기덕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준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들을
다시금 버무려 놓음으로써 절제된 대사나 스토리를 또다른 모습으로 꾸며 주고 있다. 전직 사진모델이었던 여주인공 선화의 사진들이나 영화의 중간중간마다 보여주었던 석고상, 연꽃, 찻잔, 푸른 하늘과 푸른 빛으로 가득 찬 감옥 등 영화의 곳곳에 담겨진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배경들로 하여금 앞서 말했던 그 편안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영화 [빈 집]은 절제된 대사와 환한 화면들로써 기존의 영화들에서 느길 수 없었던
편암함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태석과 선화가 빈 집을 돌아다니며 항상 듣던 음악은 어딘 지 모르게 어색함이 묻어나지만 오히려 그런 어색함이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성을 자극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매력을 느기게 해준다. 지금까지 괴팍할만큼 고집스럽고 음울한 화면들로만 일관하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영화 [빈 집]의 모습들에 색다른 매력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김기덕 감독의 신작 [빈 집]은 많이 착한 영화이다.
남편에게 구타 당하는 선화의 모습도, 사람을 향해 골프공을 날리는 태석이나 선화의 남편도, 말보다는 폭력이 앞서는 형사의 모습도 그렇게 비참하게 와닿지도, 그렇게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와닿지도 않는다.
오히려 선화의 태석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동정과 함께 그들의 텅 비어있는 모습에 동경마저 느끼게 해준다. 비록 남의 집이지만 그 속에 지저분한 빨래를 해주고, 고장난 기계를 고쳐주고, 죽은 할아버지의 염까지 해주는 둘의 모습은 오히려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아무 생각없이 착하도록 만들어 준다. 항상 삐딱하고, 비인간적인 캐릭터들로 잔인하고 노골적으로 쏘아 뿥이기만 했던 김기덕 감독은 [빈 집]의 선화와 태석을 통해 제목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텅 비게 해주고, 그 속에 "착함"이라는 다른 감정을 이입시켜주려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두 주인공 태석과 선화 사이를 오가는 감성적인 사랑의 느낌 역시 영화 [빈 집]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선한 감정이며 그로 하여금 관객의
마음 한구석을 그런 감성으로 조용하게 채워준다.
작품은 어지간한 강심장이나 김기덕 감독만의 매니아가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도, 소화해낼 수도 없는 작품이 대부분 이었던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마 그의 신작 [빈 집]에 대해서도 기대나 호기심 못지 않게 걱정과 거부감이 앞서는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 집]은 하나부터 열까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새롭게, 그리고 편하게 다가오는 영화이다. 아직은 감독의 메세지도, 그가 보여주는 세계도, 영화 속 캐릭터와 스토리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빈 집]은 이상야릇하게 관객들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그것이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고집스러움이 이제야 관객들을 설득시킨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요소가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영화 [빈 집]은 텅 빈 집안처럼 관객 스스로가 그 공간을 채워나가도록 해주는 그런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