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깃발] 당신이 알지 못하는 전쟁의 의미.

NEOKIDS 작성일 07.01.31 17: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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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상상초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명저를 쓴 역사학자 카는 역사를 선형적인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발전의 선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죠.

이를 비판한 것은 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가 푸코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의 대두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이러했습니다. 작은 개인의 역사와 소규모의 지역적 양식들이 전체적인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그리고 실증도 따랐습니다. 실제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작은 면면을 재조명하면서,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이 정의했던 모든 것을 뒤집은 시도들이 잇따랐습니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의 면에서 전쟁공포증, 전쟁후유증에 대한 연구가 미국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1차대전을 겪고 나서도 그저 전쟁에 다녀오고 나서 사람이 이상하게 변했을 뿐인 그런 사람들에 대한 차별. 미국은 대단한 것 같지만 그것은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고, 실제로 내부는 유럽에 비하면 거의 생각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단순하고 흑백논리적인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유럽이 1차대전을 겪고나서 느낀 것들과 미국이 1차대전을 참전해서 느낀 것들의 차이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겠죠.

저 역시 환타지를 쓰기 위해 자료들을 만들고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전쟁이라는 전체적인 파국의 국면을 쓰기 위해 내가 무슨 주제를 생각하고 있는가를 항상 떠올리는 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전쟁의 외형에만 집중합니다. 누가 멋진 작전을 펼쳤고 어떤 상황들이 일어났으며 어떤 무기들이 효율적이었고 결국 누가 더 이길 수 있었는가.

하지만 전쟁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닙니다. 전쟁을 촉발시키는 원인은 이익이나 명예, 힘의 추구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의 원초적인 부분은 동일합니다. 애초에 사람에게 내제되어 있는 단 하나의 원초적인 감정. 두려움. 누가 나를 짓밟을지 모르는 두려움. 누가 내 것을 뺏아갈 지 모르는 두려움.
만약 그 두려움으로부터 모든 것을 출발시킨다면, 아무리 전쟁 속에서 발현된 대단한 장군의 멋드러진 작전과 뛰어난 신무기일지라도 결국 그것들이 귀착되는 인식은 단 하나, 두려움뿐일 것입니다. 전쟁이란 것 자체가 스스로의 두려움들로 만든 파국에 애꿎은 사람들을 집어던져 그 두려움을 이기라고 종용하고 재촉하는 꼬라지라는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위험한 노릇입니다.

이 부분은 도널드 케이건의 전쟁과 인간이라는 서적에서 느낀 바를 서술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배틀, 전쟁의 문화사라는 서적의 서두부분에서 느낀 것도 의미심장한 면이 있습니다. 병사 개개인은 체스판 위의 하나의 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능동적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들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병사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장군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도와 상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은 동일하니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재미없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어쩌면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캐릭터들을 가슴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비주얼과 나름 대단한 이데올로기들로 치장된 캐릭터들에 더 관심을 쏟겠지요. 거기에 덤으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까지 첨가하면 더욱 좋을테구요. 물론 진실은 하나뿐이 아닙니다. 당신의 진실도 진실은 진실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이탈리아에서 싸우던 미군병사의 느낌과 노르망디에서 독일군을 대치하던 미군병사의 느낌, 그리고 일본군을 대치하던 미군병사의 느낌이, 그렇게 같을까요. 그런 부분에서 ‘작은 역사의 의미’는 굉장히 소중합니다. 선형적인 발전이 아닌, 다양한 시각을 보충해주니까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노력은, 바로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는 이 영화와 대조를 이루는 일본군의 시각으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한 편의 영화를 더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화적 사고는 그런 ‘작은 역사들의 발견’에 무게를 집중합니다. 그에게 상륙용 장갑차나 언덕을 오르는 셔먼탱크, 그리고 함선의 해병대 병사들을 지나치며 한껏 멋부리는 콜세어 전투기 따위는 그의 화면에는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에 중요했던 것은 사람입니다. 그 속에서 망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자아내는 썩 대단하지도 못한 상황들. 그것을 강조하듯, 극중 함선에서 떨어져 낙오되는 병사의 의미는 그 진실 외의 수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 영화 속의 대사들입니다.
특히 초반부의 나레이션.
“수많은 멍청이들은 전쟁의 속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전쟁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마지막의 나레이션.
“난 결국 어쩌면 아버지가 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쩌면 영웅들 같은 그런 것은 없고 단지 아버지 같은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마침내 나는 이해를 하게 되었다. 왜 그들이 영웅이란 칭호에 그토록 거북해 했는지를 말이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소재로 뭔가를 쓰려는 저조차도, 다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건 아닐까 자문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람이 왜 전쟁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힘. 그런 걸 화면에서 하나하나 벽돌 쌓듯이 서두르지 않고 가는 힘.

그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키워온 공력이며 작가관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본다면, 이 영화는 보는 이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사할 겁니다.

그리고 더불어.....
1. 극장에서 꼭 볼겁니다.....ㅋ
2. 이와 비슷하지만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현대전의 영화 자헤드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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