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방을 운영하는 중호(김윤석)는 최근 업소 아가씨들이 사라지는 통에 죽을 맛이다. 전직 형사였던 감을 살려 사라진 아가씨를 찾다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는데. 사라진 여자들 모두 같은 남자의 전화를 받고 나갔던 것. 그 놈이 여자들을 빼돌렸다고 생각한 중호는 두 팔 걷어붙이고 놈(하정우)을 찾아 나선다. 결국 놈을 잡아 반쯤 죽여 놓은 뒤, 빼돌린 아가씨의 행방을 물어보는데. 놈이 싸늘히 웃으며 대답한다.
‘안 팔았어요. 내가 다 죽였어요.’
<추격자>는 스릴러의 외피를 두룬 장르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르 공식을 충실히 따라갈 생각 따윈 없었다. 장르의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장르 내부로 파고들어가 스릴러라는 본질적인 재미, 서스펜스, 사회적인 함의들을 한가득 끌어안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조합한다. 따라서 <추격자> 같은 영화라면 요구될만한 법칙들은 종종 무시되거나 소홀히 다뤄진다. 연쇄살인마 지영민의 과거를 다루는 방식이 가장 두드러진다. 섬뜩한 살인마를 다루는 스릴러에서 가장 세심히 다뤄지는 대목은 살인마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다. 인간을 사냥하는 행위를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선 이런저런 사연들을 들려줘야 한다. 과거가 없다면 하다못해 그가 살인을 하는 대의명분이라도 알려준다. 많은 스릴러 영화가 이 대목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진부함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마련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헌데, <추격자>는 살인마의 과거 부분을 아예 무시한다. 지영민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놈이다. 놈이 사람을 사냥하길 좋아하니까 살해 동기 따윈 있을 수 없다. 헌데, 형사들은 ‘살해동기’ 항목에 어떤 단어든 집어넣어야 조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그래야 시스템이 돌아가니까. 영화는 이 대목에서 씁쓰름한 코미디를 연출하고, 스릴러물의 중요한 요소를 결핍시킴으로서 다른 영화와 차별될만한 유니크함을 얻어낸다. 참으로 뻔뻔한 배짱이고, 무서운 집착이고, 놀라운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