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츠츠미 유키히토
주연 : 카라사와 토시아키, 도요카와 에츠시, 토키와 다카코
개봉 : 2008년 9월 11일
등급 : 12세 이상
난 아직 꿈을 꾸고 싶다.
어린 시절 저는 참 꿈이 많았습니다. 되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당장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달이 날 정도로 성격도 고약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며 그 수많은 꿈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뒤돌아서 제 자신을 보니 아주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퇴근하고, 6살 된 웅이와 놀아주고, 다시 잠이 들고...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아주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희망했던 그 수많은 꿈들은 사라졌지만 전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국내에 개봉하는 영화들을 빠짐없이 보고 싶고, 또 빠짐없이 글로 쓰고 싶습니다. 야구장에 가서 두산 베어스를 목청껏 응원하고 싶고, 그들이 한국시리즈 우승 헹가래를 TV가 아닌 현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아주 작은, 아주 사소한 소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시간들 속에서 쳇바퀴를 돌리다보면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시간이 없고, 영화 이야기를 쓸 시간도 부족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야구장에는 딱 세 번 가보았지만, 한 번은 회사 동료들과 함께 간 올스타전이었고, 또 다른 한 번은 두산과 LG의 시범 경기였으며, 마지막 한 번은 집에서 가까운 목동구장에서 벌어진 히어로즈와 웅이가 좋아하는 KIA 타이거즈 경기였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두산의 정규시즌 경기는 단 한 번도 현장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전 이기적인 아빠이고, 남편입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 영화 보기를 포기하면 웅이의 내복이 좋은 것으로 바뀔 것이라고 투덜거리는 구피는 영화보고, 야구 볼 시간에 가족과 집에 좀 더 신경을 써달라고 항변합니다. 결국 제가 좋은 아빠, 남편이 되려면 꿈꾸기를 포기한 것도 모자라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습니다. 9월 들어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무작정 회사에 연차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하루의 시간을 세 편의 영화를 보며 즐겼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꿈을 꾼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많은 제약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저는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멈추는 그 순간 저는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허깨비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어렸을 땐 친구들과 모여 앉아 거창한 꿈을 서로에게 이야기 했었다.
그도 꿈을 가지고 있었다.
[20세기 소년]의 켄지(카라사와 토시아키)는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 지구를 지키는 꿈을 꿨었고, 학창 시절엔 세상을 바꾸는 록 가수의 꿈도 꿨었지만, 그는 지금 아주 작은 동네 편의점의 점장에 불과합니다. 누나가 맡기고 간 어린 아기를 등에 얻고 하루하루의 생활에 지쳐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인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오키의 죽음 뒤에 '친구'라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켄지는 그 조직이 벌이고 있는 음모가 자신과 친구들이 어린 시절 장난삼아 꾸몄던 '예언의 서'에 나오는 것도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켄지는 다시 꿈을 꿔야합니다. 어린 시절의 그 때처럼... 어린 시절 그가 꾸었던 꿈들을 기억해 내야하고, 어린 시절 꾸었던 꿈처럼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지켜내야 합니다.
아니, 켄지가 다시 꿈을 꾼다는 것은 틀린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켄지가 다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켄지는 다시 꿈을 꾸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언의 서'의 내용대로 지구를 멸망시킬 음모를 꾸미던 '친구'는 무기력한 생활에 빠져있던 켄지와 그의 동료들에게 어린 시절처럼 다시 꿈을 꾸라고 강요합니다. '켄지야, 놀자!'를 중얼거리며...
어린 시절 저는 참 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꾸었던 꿈들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마치 영화 속 켄지처럼... 저 역시 지구를 악의 무리에게서 지키는 것을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어린 시절의 꿈이 현실로 실현된다면 과연 그 꿈은 어린 시절 상상했던 것처럼 멋질까요? 아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상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켄지는 바로 그 꿈의 대가를 톡톡히 치룹니다.
나, 이제 꿈꾸기를 멈추면 안될까?
내가 그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암흑기였다.
전 사실 만화책을 잘 읽는 편이 아닙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저는 만화책을 한권 읽는데 거의 1시간 가까이 소모됩니다. 최소 20편짜리 만화책을 읽으려면 일주일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저는 읽는 것보다 그냥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영화에 빠진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오랜 기간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미치도록 만화책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딱 1년간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IMF로 취업에 실패한 저는 1년간 집에서 빈둥거렸습니다. 영화를 볼 돈은 없지만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았었습니다. 그때 제가 선택한 것은 만화책이었습니다.
그 중 [20세기 소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점 사건의 스케일이 커지고, 그에 얽힌 그 수많은 캐릭터들의 세세한 단면들까지 신경을 써서 표현해내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절 금방 매료시켰습니다. 그 후 저는 [몬스터]와 [마스터 키튼]까지 그의 작품들을 찾아내서 미친 듯이 읽었습니다.([몬스터]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한다는데 기대가 큽니다.)
물론 [몬스터]도 훌륭하지만 역시 그의 대표작은 [20세기 소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20세기 소년] 속의 캐릭터들은 꿈을 잃은 채 방에서 뒹구는 저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20세기 소년]을 보며 누군가가 제게도 꿈을 꾸도록 강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잃어버린 꿈을 다시 꾸고 싶다고... 그것이 켄지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무기력한 지금의 이 순간보다 나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제 소망은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와의 헤어짐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전 실연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잊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고, 그 꿈에 집착했습니다. 영화 리뷰어가 되기 위해 참 많은 영화 잡지사와 영화 사이트에 이력서를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상상과 현실은 틀립니다. 켄지처럼 저 역시 어른이 되어 다시 꿈을 꿨지만 그 꿈은 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내 마음을 밝히던 꿈이라는 가느다란 빛줄기
내가 널 다시 만난 것만으로 만족한다.
결혼하고, 웅이를 낳고, 전 다시 꿈꾸기를 멈췄습니다. 한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위해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버텨야했던 저는 다시 꿈을 잊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샐러리맨이 되었습니다.
그때 다시 나타난 것이 영화 [20세기 소년]입니다. 아주 오래된 친구마냥 '에이! 친구 잘 있었어?'라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이 영화를 보며 저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암흑기였지만 제가 꿈을 꿀 수 있었던 마지막 나날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위해 시간을 소모할 수 없지만 그를 만난 것 자체로도 저는 반가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다시 원작 만화를 읽었습니다. 10년만의 재회였습니다. 언제나처럼 켄지는 친구들과 함께 꿈을 꿨고, 그 꿈이 악몽이 되어 현실화되어 버리자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웁니다. 1편에서부터 5편까지 읽는데 꼬박 4시간이 소비되었습니다. 어렸을 때처럼 지금도 저는 책 읽는 속도가 더딥니다.
다음 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는 너무나도 원작 만화와 똑같았습니다. 마치 만화책에서 튀어 나온 듯 캐릭터들의 모습과 배경, 그리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까지...
오쵸의 태국에서의 그 멋진 활약상이 거의 생략된 것이 가장 아쉬웠고(개인적으로 오쵸의 활약상을 좋아합니다.) 켄지와 그의 누나에 대한 사연 등 세세한 에피소드들 몇 개가 생략되었습니다. 2000년 12월 31일 피의 그믐날이 원작보다는 조금 앞당겨져서 표현된 것과 시작부분이 감옥씬으로 시작한다는 것 등을 등을 제외한다면 말 그대로 원작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또 한 가지 있네요. 원작과는 달리 영화 속의 켄지는 너무 매력이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일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어쩌면 마지막으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 했던 그때 그 시절의 소중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 그때에 비해서 조금 모자라면 어떻습니다. 저 역시 그때에 비하면 너무 많이 늙었고, 너무 많은 꿈을 잃어버렸는걸요... 이렇게 제 곁에 다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가면 쓴다고 늙은 것이 숨겨지지 않는다. 당당하게 꿈을 꿔라.
우리들은 2009년 1월, 좀 더 늙어서 다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