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저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보게 됐습니다. 어린 아이와 책임을 가지게 되는 인간의 중간지대, 호르몬과 시간과 공간의 연옥에서 겪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무의식의 수면 위로 치솟더군요.
키가 작고 운동을 잘 하지 못해서 체육시간에 대놓고 왕따당했던 일들이나, 동네가 좁다 보니 공부 같은 것에서 항상 비교당하기, 누군가가 밤에 잠을 안자다시피해서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레전드들, 비슷한 놈들끼리 패거리가 되어 어울리며 다른 사람을 멸시했던 그 눈초리들. 그런 와중에 같은 꿈을 꾸던 친구 하나가 자전거를 훔치다 걸려서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 일과, 그놈이 (물론 그럴린 없겠지만) 마치 조폭처럼 다른 친구들을 데려와서 잠시 거닐며 이야길 나누었던 일, 그 잘나빠진놈들에게 멸시당하다 그 모든 것을 고등학교 올라갈 적의 학력고사 점수로 갚아주고 겨울의 길을 걸으며, 고등학교 입학식으로 가는 길에, 모든 것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온다는 데 대한 그 뿌듯하고 아찔했던 생각들.
이후, 중학교 때의 사람들을, 군제대 이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면서 다들 잘 사귀고 있던데, 그 때도 전 겉돌았군요. 묘하게도, 그 때 당시의 디테일한 생각들, 그들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그 시절의 디테일한 모습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했죠.
그 이후로도 쭈욱, 사람이 사람과 세상에 가장 잔혹해질 수 있는 때는 중학교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애니도 그런 장면을 짚어주었습니다.
극 속의 캐릭터들이 가진 생각은 치기입니다. 저도 그 치기를 이용하여 학생이 소모임을 만들어 살인과 폭력을 저지르고 학교를 불태운다는 단편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치기에 사람들이 반응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단편에 보여주던 독자들의 반응은, 제가 이 애니를 봤을 때의 반응과 겹쳐지더군요. 특히 너희가 이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까봐 그게 무섭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눈이 휘둥그래지기도 했구요.ㅎㅎㅎ
그런 치기가 보여주는 논리가 결국 쌓이고 쌓인 후 반전으로 치달아 갈 때까지의 내공이, 이 작품을 투썸업의 수작이라고 추천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저예산의 한계가 만든 이런저런 기술적인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카툰렌더링 등을 이용해서 만들었지만 기본적인 워킹조차 배경에 녹아들지 않는 미흡합에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연상호씨와 스튜디오 다다의 기본이 이정도라면, 예산이 충분히 들어갔을 때의 좋은 작품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네요.
사족으로,
1. 헐....처음으로 영화관을 혼자 전세내봤군요. 표끊은 사람이 저혼자라니 ㄷㄷㄷ
2. 대강 리뷰를 읽고 파악하셨겠지만, 이건 비극에 스릴러를 섞어놓은 것입니다. 비극과 안맞는 분에게도, 중학교 시절은 너무너무 해피하기만 했다는 분에게도,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