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날 투표하고 이 영화를 봤습니다. 뮤지컬을 영화화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말 뮤지컬을 가사까지 모조리 다 옮긴 줄은 몰랐어요. 아무튼,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감동 깊었던 영화 서열 3위 안에 들어갑니다.
사 실 저 이 뮤지컬을 한 십몇 년 전에 봤었습니다. 그것도 누요크 브로드웨이에서요. 그런데, 솔직히 그때는 뭐가 감동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정말 대단한 작품이더군요. 십몇 년 사이에 무엇이 바뀌었길래 제가 이 작품을 보는 눈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생각해보니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바로 자막이었습니다. 가사 내용을 알아 들으니 그렇게 감동적이더군요.
(코제트의 모습을 그린 이 판화는 198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대표적인 로고로 쓰이면서 크게 유명해졌습니다만, 실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1862년 초판에 삽입된 오리저널 삽화입니다. 에밀 바야르 (?mile Bayard) 라는 양반이 그렸습니다. 그런데 저 광고 카피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군요. 아마 레미제라블 본문에 나온 말인 모양인데...)
원래 이 레미제라블은 초반 장면, 그러니까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치는 부분과 코제트를 구출하는 부분이 동화에서 자주 인용되어 어릴 때부터 익숙한 작품이긴 하지만, 상당히 과격한 혁명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빅토르 위고 특유의 세밀한 부분까지 시시콜콜 늘어놓는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정말 완편을 다 읽은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도 팡틴느가 이빨 뽑는 장면까지만 읽다가 혼블로워 시리즈를 읽으면서 손을 놓게 되었습니다. 다시 읽어야겠어요.
지난 12월 19일 개봉한 이 영화를 저는 벌써 2번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봤고,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유튜브에서 이 뮤지컬 초연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보면서 가사까지 다 외운 뒤 다시 한번 봤습니다.
아래 URL이 그 공연 일부인데, 가사가 다 캡션으로 나옵니다. 총 11 구간으로 나누어져 올려져 있는데, 추운 밤에 따뜻한 거실에서 손가락 클릭 하나로 공짜로 이거 보면서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Hnsk_8xtsXY
보 통 뮤지컬은 관람료가 수만원~십수만원으로 엄청나게 비싸지만, 정작 만족도는 이 영화가 훨씬, 압도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헐리웃 배우들의 비주얼도 한몫 한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다가 저 위의 25주년 콘서트 영상을 보니, 등장 배우들의 비주얼이 너무나 떨어져서 감정이입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생길 정도더군요. (예, 저 속물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다 알아요.)
(음... 두 커플 모두 당당한 마리우스와 코제트입니다만... 에잇! 이쁘고 잘생긴 것들에게는 무릎을 꿇는 수 밖에...)
와이프하고 이 25주년 콘서트 영상을 보면서, 와이프가 묻더라구요. '노래는 저 뮤지컬 배우들이 더 잘 부르는 것 같은데, 실제로 대접은 뮤지컬 배우들이 더 받는 것 아닌가' 라구요. 글쎄요,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 이 뮤지컬을 제작한 제작자가 이 영화도 제작했는데, 이 뮤지컬 배우들 중에서 딱 한명을 이 헐리웃 영화에 캐스팅 했습니다. 그나마 가장 비주얼이 나았던 에포닌 역의 Samantha Barks가 바로 그 주인공이고, 이 25주년 콘서트에서도 에포닌 역을 맡았었지요. 올 1월에 사만다는 영국에서 뮤지컬 올리버 트위스트를 공연하고 있었는데, 공연 마치고 커튼 콜을 할 때, 제작자인 Cameron Mackintosh가 '기쁜 소식을 알리겠다'며 배우들과 관객들 앞에서 사만다의 영화 캐스팅을 발표했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던 사만다 본인조차도 이 소식을 처음 들었다고 해요. 그 뒤에 본인을 포함하여 같은 뮤지컬에 출연했던 동료 배우들도 트위터 등에서 난리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개천에서 용났다 !" 라고요. 그러니까 브로드웨이 배우들에게도, 헐리웃 진출은 정말 대단한 일인 모양이에요.
(저 위가 사만다이고, 아래는 아만다에요. 사만다도 빠지는 미모는 아닌데, 아만다 옆에 서니 정말 코제트 옆에 선 에포닌이더군요. 노래 실력은 둘이 비교해서 어떠냐고요 ? 원래 성인 코제트의 역할이 에포닌에 비해 좀 작긴 해도, 아만다는 역시 뮤지컬 영화였던 맘마미아에서 무려 2천대1의 치열한 오디션을 뚫고 선정된 원탑이었다는 거...)
원작 뮤지컬이나 이 영화에서나, 사실 마리우스보다는 학생 그룹 ABC의 리더인 앙졸라(Enjolras)가 더 멋있게 나옵니다. 제가 십수년 전에 별 생각없이 가사나 내용도 잘 모르고 그 뮤지컬을 볼 때도 기억나는 것이, 주인공보다 저 학생 회장이 더 멋있네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마 바리케이드에서 앙졸라가 붉은 자켓을 입는 것이나, 붉은 깃발을 쥐고 거꾸로 매달린 채 죽는 것이 빠져서는 안되는 연출 부분인 모양입니다. 뮤지컬에서나 영화에서나, 그 장면은 거의 동일하더라고요. 원작 소설에서와는 달리 뮤지컬에서는 앙졸라가 전투 중 바리케이드에 붉은 깃발을 든 채 거꾸로 매달려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만, 영화에서는 붉은 커튼을 손에 쥔 채 술집 2층 창문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건 뮤지컬의 해당 장면이지요.)
다 만, 이 앙졸라라는 캐릭터의 이름은 실제 뮤지컬에서는 안 나온다고 합니다. 이유는 미국인들에게도 그 이름의 발음이 너무 어렵대요. (L과 R이 연달아 붙어있어요 !) 그런데, 위에 제가 올려놓은 URL의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는 중간에 다른 학생이 앙졸라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만 아쉽게도, 앙졸하~ 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영어식으로 엔졸라스 라고 부르더군요. 참고로 앙졸라가 현장에서 처형될 때, 군인들 뒤에서 터덜터덜 걸어나온 친구는 그랑테르 (Grantaire) 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지만, 원래 ABC 그룹 속에서도 그랑테르는 술좋아하는 냉소적인 성격으로서, 열정적인 앙졸라와는 약간 대립하는 관계에요. 마지막 순간에, 사실 그랑테르는 술에 취해 한쪽 구석에 뻗어 있었는데, 깨어나보니 막 앙졸라가 처형되기 직전이었지요. 그랑테르는 숨지 않고 걸어나와, 앙졸라와 함께 처형되기를 자청한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앙졸라와 그랑테르는 서로 미소를 띄고 바라보며 총살되지요.
(앙졸라가 'To the barricade !'를 외칠 때는 저도 피가 끓는...)
이 영화 끝부분에 장발장이 죽는 장면에서 팡틴느가 다시 나와 'Come with me ~'를 부를때 여기저기서 조용히 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데, 솔직히 맨 마지막 피날레 합창에서는 저도 눈물이 핑 돌더군요. 실패했던 1832년 6월 파리 봉기 때의 초라했던 바리케이드에 비해, 그야말로 파리 전 시민이 다 모인 것 같은 대규모 군중이 지키는 엄청나게 높은 바리케이드가 연출된 것은 정말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비참한 현실 속에서 희생되었던 팡틴느나 가브로슈, 앙졸라 등이 다시 등장하여 확신과 희망이 가득찬 얼굴로 그 거대한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모습은, 이번 선거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 같았어요. 적어도 저는 정말 위안을 받았습니다.
(저 초대형 바리케이드 장면은 반드시 노래 가사를 미리 알고 들으셔야 제대로 감동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저 코끼리 상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좀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저 영화 제작진들의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보다가 알았는데, 피날레 장면에서 나온 저 초대형 바리케이드는, 마침내 왕정을 무너뜨린 1848년 파리 혁명에서의 바리케이드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음... 대략 찾아보니 1848년 혁명에서는 하루에만 무려 17만명의 시민이 바리케이드에 모였다고 하니, 실제 저 정도의 규모였겠는데요 ?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건 영화 한 장면은 아니고, 촬영 중간의 스틸 샷인듯... 그 피날레 부분에서의 표정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없네요.)
(누가 앤 해써웨이 빡구머리 만든거 짜증나서 못보겠다고 하시던데... 지금 헤어 스타일이 중요한 게 아니쟎아요 ?)
그리고 아래는 이 비디오 클립에 나오는 팡틴느의 I dreamed a dream의 일부 가사를 우리 아이에게 영어 공부 삼아 듣고 따라 부르게 하려고 만든 거에요. 일부러 별 설명은 안 달았는데, 우리 애가 나중에 '근데 왜 갑자기 호랑이가 밤에 온다는 이야기가 나와 ?' 라고 물어서 기뻤어요. 그래도 우리 애가 기본적인 해석은 되는구나 싶어서요 ㅎ. 호랑이라는 것이 냉혹한 현실 세계의 고난을 뜻하는 거라고 해석을 해줬는데, 그게 맞는 해석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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