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영화는 전국 7개관만 허락되어 있었다.
결국 충무로 대한극장까지 원거리 솔로 관람했는데 나한테 이게 뭔일인가 싶다.
내 인생에 극장에서 두번 관람한 영화는 중딩시절 용형호제2 이후 처음이다.
레미제라블
이 영화는 절망의 끝에서도 '나눔의 삶'과 '용서'를 생각하게 해준다.
일단 좀도둑 장발장.
19년 동안 케케히 쌓인 분노와 증오.
자유를 얻은 사회마저 더 비참한 현실이되는 이 전과자는 눈꼽 만큼의 희망도 없이 절망으로 버려진다.
이런 사람이 신분세탁 8년 후 직원 100 여명이 넘는 회사를 소유하고, 모범적인 도시를 만든 시장이 될 수 있음에는
미카엘 신부를 빼 놓을 수가 없는데 이 성자의 영혼 구원으로 쟝발장은 변화 되었다.
남에게 나누는 삶으로의 8년.
무엇보다 쟝발장 본인에게는 성공과 존경받는 지위를 가져다준 이유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저 나누는 삶으로 살 수 있을까 해보지만 어렵게 느껴지는건
아직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려나~~
그러나 나눠야 커지는 진리를 어렴풋이 알듯도 하고.
쫒겨난 가난한 미혼모 판틴은 결코 크지 않은 빚과 맡겨진 딸 코제트를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이빨마저 뽑아 팔지만 결국 창녀가 되어 더 이상 없는 끝의 나락으로 추락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쟝발장을 다시 만나는것은 쟝발장으로 보나 판틴으로 보나 쌍방에 큰 도움이 되는 사건이다.
이 버림받고 죽어가는 여자를 만난 장발장은
"내가 주님을 대신해서 해야할 일이다" 라며 그녀를 구원하고 핍박받는 딸 코제트를 구출하게 된다.
불과 8 년 전 미카엘 신부의 주님을 대신한 구원을 받은 그가 아니였던가!
'주님을 대신해서 해야할 일이라...'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을것 같은 이 표현!
용서.
자베르 경감은 법과 원칙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사람으로 쉽게 악으로 규정 지을 수없는
독특한 존재인데 스토커같은 그에게 평생 쫒기며 살아온 쟝발쟝은 결정적인 기회로 자베르의
생사여탈권을 받게 되자 바로 그를 용서하게 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더구나 이런 끝장나는 관계에서?..
결국 용서는 남에게 주는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채워진 수갑과 족쇄를 푸는 열쇠로
높은 수준의 자유를 얻는 과정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엄정한 이 자베르마저 무너지게 하는 더 큰힘이 '용서'가 아닌가!
중국속담에
'큰일은 작게 만들고, 작은일은 없는걸로 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오히려 '작은 일을 크게 만들고, 그렇게 커진 큰일에 헤어나지 못해 억눌리고 있는것'이 아닐까 한다.
오래 살아가다 보면 결국 큰일도 없고, 작은일도 없을진대. 뭐에 그리 억눌리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