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닭에 관한 기억

SIG510 작성일 14.07.05 15: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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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게 재미있는 사연은 아니지만, 저한테는 잊지 못할 닭에 관한 유일한 기억이라 글 남깁니다.

 

때는 2007년 자취하던 대학생 때 였습니다.

당시 저는 불면증을 앓고 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짝사랑했고-사귀던 여자친구한테 정말 어처구니 없이 차여서 2005년부터 한 5년간 그 스트레스로 밤에 잠 못들고, 새벽같이 일어나는 수면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매일 서너시간 뒤척이며 자다 깨다 할 정도로 아주 심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겨우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동네에서 닭이 울어대는 바람에 잠에서 깼습니다. 처음엔 그냥 일시적일거라 생각했지만,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낮이고 밤이고 시도때도 없이 닭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도심에서 어떤 ㅁㅣ친놈이 닭을 키우는지, 혼자 머리를 쥐어 뜯으며 욕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닭 울음 소리가 계속 들어보면 정말 듣기 싫은 악마의 소리 입니다. 심장이 떨리고 정신이 약간 혼미해 질 정도로 소음중에 소음 입니다.

 

이렇게 한 달즈음 지나니까 사람이 정말 미치겠더군요. 어떻게 된 동네가 닭이 태연하게 매일같이 한 달 동안 울어댈수 있지??? 여기가 무슨 오지 산골도 아니고, 자취방이 즐비한 도심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이 동네 주민들은 닭 울음소리를 좋아하나??  다들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드는 슬리핑 딕셔너리 취침의 정석인 사람들인가??

 

이 때부터 저는 상상을 막 하기 시작합니다. 닭이 있는 곳을 찾아가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상상, 

닭이 주인에게 잡아 먹히는 상상, 닭이 옆집 개한테 물려 죽는 상상, 닭이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 죽는 상상.

닭이 철새들과 함께 날아가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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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 미니홈피 일기 입니다.  보시다시피 오후 2시 30분에도 닭이 울고 있었나 봅니다. 복날이 지나도 닭은 살아 있었고요.

 

아무튼 저는 그 동안 상상해 오던 것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비오는 날 새벽에.. 우의를 입고 몽둥이를 하나 들고 닭 울음소리를 추적해 닭을 때려 죽이러 갔습니다.

그냥 닭 주인한테 따지거나 파출소나 주민센터에 민원을 넣으면 되는데..당시 저는 정말 약간 미쳤었나 봅니다. 정말 닭을 죽이고 싶었었나 봅니다.

사실 저는 동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귀여운 동물을 보면 눈물도 흘리고, TV에 안타까운 동물 사연이 나오면 그 때는 소리내서 막 웁니다. 유기견을 위해 기부한 돈도 십수만원이 넘는 그런 사람이 .. 닭을 때려 잡으러 갑니다.

그런데 몽둥이를 들고 울음소리를 들으며 닭이 있는 곳을 찾으려고 하면, 정말 신기하게도 근처에 갔다 싶으면 닭이 울지 않았습니다.

닭 추적은 계속 실패 했습니다. 지구종말 영화를 보면 .. 동물들이 위험을 미리 감지해서 먼저 사라지고 이러던게 사실인가 봅니다.

한동안 포기하고 살다가 이성을 찾고 결국 내린 결론은 어떻게든 닭을 찾아서 주인에게 닭을 입양? or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그 닭이 있는 집을 어찌어찌 추적 수소문해서 찾아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닭을 키우시더군요. 마음 같아선 당장 그 닭새끼를 목졸라 죽이고 싶었지만... 일단 할머니께 잘 설명해 드렸습니다... 제가 학생이고 어쩌구 저쩌구....씨끄러워서.. 불면증에 탈모에 장가를 못가서 어쩌구 저쩌구..

 

저는 그 살아있는 닭을 4만원에 사왔습니다. 핑크색 보자기에 싸주신 닭을 들고.. 친구차를 얻어타고 국도변 시골 마을 옆 산길에 닭 뒤통수를 탁 치며 풀어주고 왔습니다. 그 닭이 산에서 살았는지, 백숙이 됐는지 뭐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저에게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잘 못써서 짧아 보이지만 장장 3개월 .......

이 정말 잊지 못할 병맛같던 닭과의 전쟁이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불면증은 계속 됐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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