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30대 후반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일자로 달리기만 했었다
지금과 비교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IMF 시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유래없었던 취업난을 겪기도 했었고
그 이후부터는 살아남아야 겠다는 생각 하나만 가지고
반쯤은 미X놈처럼 살았던거 같다
어느 덧 시간이 지나
회사에서는 관리직이 되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생활이다
처자식이 딸리고
부모님께서는 늙고 은퇴를 하셨다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이젠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예전에 내 인생은 끝났고
이제는 남편으로 아빠로 자식으로 사위로 팀장으로 교수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불경기가 길어지면서 사장이랑 이사는 점점 회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거 같고
아직 햇병아리 같은 20대 초중반의 직원들 데리고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지도 걱정이며
전임교수도 아닌데 전임교수들이 해야될 일까지 떠맡아 회사일도 바쁜데 학교일도 점점 늘어간다
집에서는 아직 어린 아이들과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과 처가댁 어른들
밖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못한 직원들과 핏덩어리 같은 대학생 제자들을 보면서
이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기도 없어지고 있다
친구들 중 몇몇은 혈압이니 당뇨니 디스크니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친구도 생기고 있는걸 보면서
이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도 밀려오고 있다
왼쪽 어깨도 너무 아프고 오른 쪽 손목과 팔꿈치가 펴지지도 않을 만큼 아파
잠깐 들렀던 병원에서 무려 4시간이 넘게 진단을 받았고
그 결과로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데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3주째 병원에 가보질 못하고 있다
작년 11월 한 15년 만에 나 자신에게 선물을 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사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져갔다
근데 웃긴게
플레이스테이션 그게 뭐라고 설치하는데 무려 3주가 걸렸다
집에가서 그거 설치할 마음에 여유조차 없었다
2016년 6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 오면서 내가 정말 사고 싶었던 게임기는
총 20번도 켜보지 못했다
내가 사고 싶었던 게임을 사는 것보다 우리 아이 장난감 하나 더 사주게 되는 날 보면서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는 딸 바보가 되어 버린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젠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다
다들 회사걱정, 집 걱정, 건강 걱정 이야기만 한다
다들 정리해고를 두려워해야 되고
아파서 누워버릴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농담삼아 건네던 이야기 중에 각자 스스로에게 소원이 있다면 뭐가 있을지 이야기 해보았다
아이들 잘크는거, 부모님 건강하시는거 말고
완전 스스로에게 소원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고
어느 덧 우리는 이야기 중에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하긴 친구들끼리도 잘 하지 않는 이야기다
이젠 인간적으로 누군가에게 그리워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거 같다
'보고싶다'
왜 우리 아버지들한테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해드린 적이 없을까
뒤 늦게 후회도 된다
새 친구도 만나보고 싶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세상 사는 험한 이야기 말고 그냥 잡담이나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도 만나본지 너무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고
명함을 건네받으며 인사하는게 너무 자연스러워 져버렸다
하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면 집사람은 어린 아이들을 차례로 재우고 피곤해서 잠들어 있다
그런 집사람이 안쓰럽기도 하고 같은 집에살지만 아빠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우리 아이들한테 미안하기도 하다
다음 날 또 새벽같이 일어나 자고 있는 아이들과 집사람을 두고 출근하면서
오늘 스케줄을 쭉 정리해보면 오늘도 집에 일찍 들어가긴 틀린거 같다
주말이 되면 집안에 행사는 왜 그렇게도 많은지...
평일에 잘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는 주말이 되면 너무 미안해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주면서도
한 편으로는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20년 전부터 네팔에 가보고 싶었다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었다
등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트래킹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해외출장을 그렇게 가면서도 호텔과 거래처 사무실 말고는 들러본 적도 없는 외국보다
그냥 혼자 조용히 떠나보고 싶은 곳으로 가보고 싶다
태어나서 불면증이라는걸 겪어본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머리만 땅에 대면 잠드는 습관 때문에 눕는걸 두려워할 정도였으니
근데 요즘은 잠이 오질 않는다
몸이 피곤해 죽을거 같은데도 이젠 잠을 잘 잘 수가 없어졌다
거울을 보니 미간의 주름이 펴지질 않는다
흰 머리도 많이 늘어가는게 보인다
눈가에 주름도 많이 생겼다
좀 허무하긴 하다
그러고 보니 성격도 좀 바뀐거 같다
예전엔 그래도 잘 웃고 긍정적이었던거 같은데
요즘은 화를 너무 많이 내는거 같다
화 내지 말자가 2016년 목표였는데..
일주일만에 박살이 났다
그리고 언제나 화가 나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참 씁쓸하기도 하다
앞으로 얼마나 이렇게라도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지금처럼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아야 할텐데
어른들 보다는 건강하게 살아야 할텐데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불금
우리 여직원들은 불금이라고 옷도 이쁘게 입고 오고 화장도 이쁘게 하고 왔는데
난 어제 새벽까지 서류 작업하고 면도도 못하고 앉아있다
오늘도 월요일 출장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 처리해야될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몰려온다
거래처에 요청해둔 서류가 오지 않아 걱정이다
그게 와야 오늘은 그래도 9시에는 퇴근할 수 있을거 같은데...
내일은 아이들 장난감 사주러 가기로 했다
요즘 큰 아이가 한참 레고에 재미를 들였다
혼자서 뚝딱뚝딱 만드는걸 보고 있으면 참 기특하기도 하다
스타워즈 레고를 사주고 싶은데 애기엄마도 그렇고 우리 딸도 그렇고 안 좋아해서 슬프다
이왕 하는거 아빠 취향도 좀 맞춰주지...
이런 저런 생각에 시간이 너무 잘 지나간다
오늘도 남은 시간 마무리 잘되길
그리고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평화롭게 지나가길
일하다가 잠깐 시간이 남은
30대 직장인의 주절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