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본 '광우병' 논란

감사요 작성일 08.05.06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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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학 중인 내가 요즘 듣는 한국 뉴스는 온통 광우병 논쟁이다. 한국의 지인들도 내게 툭하면 전화를 걸어 광우병에 대해 물어온다. 정부가 수입 근거로 내세우는 논리가 '미국 유학생들도 현지의 쇠고기를 아무 탈 없이 먹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일단 외국에서 살면서 한국을 돌아봤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는 쇠고기와 기름값이다. 갈비찜, 샤브샤브, 스테이크 같은 음식들은 한국에선 아직도 서민의 음식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지금도 우리는 행여 명절 때 소갈비 선물이라도 받으면 갈비 먹고 남은 뼈는 아까워서 국에라도 넣고 끓여야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필자가 미국에 5년 살면서 고기메뉴는 쇠고기 중심으로 바뀌었다. 친구들과 야외에서 바비큐를 하면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용 스테이크(버거 패티)를 먹고, 집에선 간간이 스테이크를 굽고, 밖에서 먹을 데가 마땅찮으면 말린 쇠고기(육포)를 먹는다. 2개 먹으면 배가 든든해지는 햄버거용 스테이크는 식료품 가게에서 개당 1000~1500원 남짓 한다.

이렇듯 쇠고기는 돈이 궁한 미국 유학생들의 배를 싼값에 채워주는 유용한 식품이었다. 그런데 이번 한국발 광우병 '괴담'이 퍼지면서 현지 유학생들은 "이러다 학위논문 쓰면서 머리에 구멍 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을 하는 처지가 됐다.

사실 그동안 현지 유학생들이나 많은 미국인들은 최근 이런 사태들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미국인인 친구는 내게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 스테이크를 임신 중인 자신의 부인과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광우병 걸리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 걱정을 한 건 분명 나 혼자였을 것이다.

사실 평범한 미국인들의 '침묵'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자국에서 유통되는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면 촛불시위를 하는 한국 시민들처럼 미국 시민들도 수수방관하지 않고 행동으로 나섰을 법한데 말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야당인 민주당에겐 조지 부시 행정부를 비판할 좋은 소재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미국 사람의 이런 무관심은 현재 한국의 격렬한 대응 양상과는 너무나 달라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아마 진실은 국내 언론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과도한 반응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미국 정부와 언론의 의도적 눈가림 탓에 3억명의 미국인들이 광우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 둘 중 하나이리라.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지혜롭게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논란에 가려진 또 다른 문제인 국내 유통 쇠고기 값 안정도 조속히 해결되길 주문한다. 무조건 미국 쇠고기를 막고 보자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서민들의 식탁을 어떻게 하면 풍성하게 만들지에 대한 대안에도 관심을 쏟았으면 한다.

이를 위해 현재 호주산이 독과점 지위를 누리는 수입 쇠고기 시장을 보다 여러 나라로 확장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하다못해 넓디넓은 초원에서 청정하게 길러진 몽골산, 카자흐스탄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상상력 정도라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쪼록 미국인처럼 우리도 쇠고기를 맘껏 즐기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by 이병호·美미시간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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