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iskop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광우병 문제가 불확실한 측면도 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로도 어느 정도의 의미있는 추정은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판단을 종합해보면 미국 쇠고기 수입의 위험이 유달리 크다고 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불확실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인지하고 개선 노력을 해야할 위험에 비해 이렇게 과장되어 터무니없는 비과학적 사실까지 무분별하게 유포하고 있는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누구도 피해당할 수 있는 사람을 경시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진짜 그런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사람을 생각한다면 정확한 사실 위에서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해야지 무턱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안 하고 해결될거라는 식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게 주장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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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MB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협상결과를 두고 시끌시끌하다. 국민 건강을 팔아 캠프 데이비드 숙박료로 지불했다는 비난부터 시작하여, 최근에는 인간 광우병의 공포와 미국 거대 축산 및 육가공기업들의 음모론까지 번져가고 있는 듯하다. 홈지기도 관련 전문가는 아니라서 지난 1주일 정도 동안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면서 기존의 생각을 돌아보고 하나하나 정리해봤다. 여기서는 그 과정에서 느낀 생각들을 다소 두서없이 적어볼까 한다.
속칭 '인간 광우병'으로 뭉뚱그려 이야기되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은 아직도 밝혀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아주 오랜 기간 연구되어 명쾌한 역학(epidemics)적 지식들이 정립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해마다 축적되는 연구결과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여지가 많다. 그런데 그에 반해 국내에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은 상당히 편향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홈지기는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대표적 관련서적 2권인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Deadly Feasts)』과, 콤 켈러허의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Brain Trust)』도 검토해봤다. 블로고스피어 등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퍼뜨리고 있는 vCJD 관련 지식의 많은 부분이 이들 책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책들이 과연 무분별하게 인용할만한 책이라 볼 수 있을까?
리처드 로즈는 (필자도 재밌게 본) 『원자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Atomic Bomb)』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저자이다. 지난 1998년 언론인의 시각으로 탐사보도하듯 만들어진 『죽음의 향연』은 광우병의 위험이 매우 불확실하고 미국에서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던 1990년대의 시각에서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책이었다. 언론인의 책무는 사실에 바탕한 유려한 필치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나온지 10년이나 된 지금으로서는 재미있는 사실들 — 프리온의 역할을 밝혀내기까지 쿠루병 등과 관련된 여러 예화들, 끔찍한 육가공산업의 현장 — 에도 불구하고, vCJD에 대한 내용은 너무 뒤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반면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는 2004년에 나온 책인데다 저자도 생화학자이기에 좀 더 신뢰성이 감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용을 파고 들면 이 저자 또한 지나치게 비관론적 입장에서 아직 명확하지 않은 가설을 부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Alzheimer Disease & Associated Disorders」 저널에 실린 서평을 간단히 인용하는 것이 낫겠다:
…… In summary, this book offers insights for the reader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prion disease. Besides the historical insights, the book depicts the lax attitude of the government when faced with an outbreak of a very serious disease possibly affecting the human food chain. On the downside, the statements made about the misdiagnosed cases of Alzheimer, are not substantiated at all. This book is therefore not recommended to people working in the health profession.
…… 요약하자면, 이 책은 프리온 질병의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통찰을 제공해준다. 역사적 통찰 이외에도, 이 책은 인간 먹이사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질병 발생에 직면한 정부의 허술한 태도를 묘사하고 있다. 나쁜 점을 보자면, 알츠하이머 병의 오진 사례들에 대한 이 책의 이야기는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보건의료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추천할만한 책이 아니다.
— Kelleher, C. A. "Brain Trust: The Hidden Connection between Mad Cow and Misdiagnosed Alzheimer's Disease." Review of Groenink, Sanne C. Alzheimer Disease & Associated Disorders, 19.3(2005): 160-161.
참고로 이 저널은 SCI 등재저널(2006 impact factor: 1.99)인만큼 영 헛소리가 실릴만한 소스는 아님을 확인해두자. 평자 또한 네덜란드인이니 미국 축산업/육가공업계의 음모론을 믿는 분들도 의심은 조금 덜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 서평은 캘러허의 책이 분명 일반인에게 프리온 질병의 역사에 대해서는 괜찮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으나, 사실 관계에서 오류가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더군다나 일부 인용한 자료들은 내용을 오독하고 있음도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근거로 알츠하이머 환자들 중에 상당수가 vCJD일 것이라는 류의 위험한 시나리오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곤란하다.
좀 더 과학적인 측면에서 미국 쇠고기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는 (홈지기의 후배이기도 한) YY님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자료를 잘 정리해주셨으니 그 내용을 참조해주시기 바란다:
9658; 참고1 ⇒ 광우병 (yy's blog)
9658; 참고2 ⇒ 광우병 관련 글 모음 (yy's wiki)
위의 YY님의 글과 링크된 여러 글들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미국에서 발병한 극소수의 광우병 및 vCJD 사례는 북미산 쇠고기들이 정말로 그렇게 심각하고 광범위한 정도로 변형 프리온에 오염되어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과학적 근거로서 부족하다. 프리온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바 있는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도 2004년 Scientific American에 게재한 글1에서 미국 내의 광우병 발병 사례들은 외부 감염이 아니라, 오랜 예전부터 끊임없이 있어왔을 자발적인 변형 프리온 생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또한 미국 내에서 발견된 vCJD 발병자들도 대부분 영국 등 광우병 핵심 위험지역에 다년간 노출된 이력이 있어서 미국산 쇠고기가 발병 원인인지 알 수 없다.2 더군다나 영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우려했던 대량 vCJD 발병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파국적 위험의 가능성은 좀 더 옅어지고 있다.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에서 강조하고 있는, 일반 CJD나 알츠하이머 병 환자들의 발병 증가분의 상당수가 광우병(BSE) 감염 쇠고기 섭취에 있는지의 문제는 과학계에서 공인되지 않은 가설이라 할 수 있다.
(위) 정상 프리온 및 변형 프리온의 구조와, (아래) 변형 프리온이 정상 프리온을 변형시키는 연쇄반응의 모식도 (retrived from Scientific American)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수입 쇠고기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역시 중요한 심리적 요인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떠올려 보면 좀 더 체계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보면 설명서마다 '부작용의 우려가 있으니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하십시오' 류의 글이 있다. 이게 좀 더 명시적으로 씌여 있다면 어떨까? 약국에 소독약을 사려고 갔더니 유명 제약회사에 나온 A와 B라는 두 종류의 소독약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각각의 포장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여러분은 어떤 걸 사시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A를 집어들 것이다. 어차피 약간의 부작용이 있는데 굳이 2배의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제약회사가 기술혁신을 통해 소독약 라인업을 다음과 같은 C와 D로 교체했다고 하자:
심리학 연구 결과는 이 경우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D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아마 이런 논리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상황에서 1000원을 더 투자함으로써 내가 위험에 닥칠 확률은 0.1%가 되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0%가 된다. 이 둘은 0.1/0 = ∞, 무한대 배만큼의 차이가 있지 않는가!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건 불합리한 논리이다. 첫 번째 상황에서는 1000원을 더 투자함으로써 부작용을 겪을 위험성이 1000명 당 3명(0.3%)이나 줄어든다. 반면 두 번째 상황에서는 고작 1명(0.1%)이 줄어들 뿐이다. 똑 같은 돈을 투자해도 한계효용이 ⅓밖에 안 된다. 사람들은 추가된 비용의 효과를 받아들임에 있어 그로 인한 상대적 개선효과가 아니라, 그로 인한 절대적 결과를 더 중시함을 알 수 있다.3
독일의 인기 과학저술가 슈테판 클라인(Stefan Klein)은 이러한 현상을 소독약 패러독스4라고 불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위험을 대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학습에 의한 논리보다는 진화과정에서 축적된 본능에 더 영향을 받음을 시사한다. 인간은 험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재된 위험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왔다. 효과적인 지식을 축적하고 학습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게으른 것보다 빠르게 반응하고 조심하는게 훨씬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의 절대적 안전에 대한 지향성은 매우 강렬하다.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일부 매우 격정적인 (또 때로는 터무니 없기까지 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글들에도 그런 모습들이 강하게 배여있다. 마치 위의 '소독약 C = 미국산 쇠고기', '소독약 D = 한우 쇠고기'라는 인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소독약 C가 시장에 들어와 어느 순간 소독약 D로 둔갑하고, 어디선가 비밀리에 섞여 나의 절대적 안전을 침해할 것이라는 공포가 느껴진다. 더군다나 1000원 더 낼 여력이 없어 소독약 D 대신에 C를 살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까지 등장하고 말이다. 허나 현실은 '소독약 A = 미국산 쇠고기', '소독약 B = 한우 쇠고기'가 차라리 더 가깝고, 심지어는 리스크에서 0.3%만큼의 차이도 없다는게 홈지기의 판단이다. 따라서 1인의 소비자로서 이런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중의 한 일화는 전문가도 공포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군의 공습이 계속되던 어느 날 소련의 유명한 통계학 교수가 어쩐 일인지 지하 방공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까지 그는 "모스크바 인구가 700만 명인데 어떻게 폭탄이 꼭 집어 나한테 떨어지겠는가?"라고 말하면서 대피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놀란 이웃들이 그 교수에게 생각이 바뀐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통계학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스크바에는 700만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코끼리가 살고 있어요. 그런데 어젯밤 그 코끼리가 폭격에 희생되었답니다."5
그러기에 지금 시점에서 누가 홈지기에게 '미국산 수입 쇠고기가 시장에 풀린다면 드실건가요?'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예'다. 이제껏 수많은 조상들이 쇠고기를 입에 집어넣기 전에 직면했던 변형 프리온 섭취의 위험보다 특별히 더 위험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1인의 소비자로서 그런 것까지 고민하고 있을 바에야 남는 시간에 운동이나 열심히 해서 저밀도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나 낮추는게 수명 연장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물론 앞으로도 이렇게 태평할런지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 — 코끼리가 죽었다는 식은 아니겠지만 — 가 나오면 그 때 판단해볼 문제이다.
그러나,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이것이 결코 MB 정부가 이번 쇠고기 수입관련 사안을 잘 처리했다는 말은 아니다. 위에 열거한 홈지기의 판단은 1인의 소비자로서 추구할 수 있는 자세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허나 이 같은 판단과 태도를 정부 당국자에게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구매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신뢰를 증진하는 공익적 임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안전을 선호하게 마련인 국민 여론을 단순히 '정치적인 선동에 휩쓸려서'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고 계도와 교화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사회적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그건 회장님 또는 사장님께서 하는 일이라면 뭐든 옳다고 믿는 개인적 신뢰로 뭉친 기업이나 팬클럽같은 조직에서나 할 일이지, 광범위한 사회적 신뢰 위에 서야 할 국가 운영에서 택할 길이 아니다.
사회적 신뢰를 증진시키려는 리더라면, 사회 구성원들에게 눈 앞의 불확실성이 불가피한 것임을 알리면서도 잠재적 위험에 최대한 대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법이다. 현실 정치에서 잠재적 위험이 전무한 것처럼 낙관론만 편다던가, 위험을 터무니없이 강조하면서 공포를 조장하는 비관론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사회 구성원들을 미혹시키는데 분명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처사가 남발되었을 때 그 역풍은 사회적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MB의 이번 쇠고기 수입문제 처리 관련 언사를 보면 도대체 국민을 배려하는 국가 리더로서의 따뜻한 말이나 조치가 정말 눈에 띄지 않는다. 명확한 공익에 대한 배려가 담기지 않은 채 1인의 소비자 관점의 논리로만 쇠고기 수입협상이 졸속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으니 여론의 우려가 불식될 리가 없다. MB가 계속 국민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프레임으로 마주하려 든다면 그들이 그토록 비난한 지난 참여정부 이상으로 답답한 꼴을 보게 될 것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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