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306호를 떠나며.
17대 국회 첫 번째 의원총회에서 첫 번째로 발언을 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우리가 잘 나서 국회의원이 된 것이 아니라 탄핵 촛불을 든 국민들 덕분에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탄핵에 반대하며 분신을 기도한 백은종씨가 병원비가 없다니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이 발언으로 정말 국회의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1200만원을 백씨에게 전달한 기억이 납니다. 국회의원으로 의원총회에서 첫 발언을 한 것이 성과를 낸 것입니다. 그 뿌듯했던 보람이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의 여행 저 편에 아득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옳고 그름 속에서 줄타기는 하지 않겠다. 결코 좌고우면하지 않고 옳은 것은 옳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앞으로의 각오에 대한 첫 번째 방송 인터뷰였던 것도 이제 빛바랜 앨범속의 기억으로 아득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문광위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용기있게 “옳은 것을 옳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언론개혁의 길이었습니다.
‘삼성 재벌이 잘못 되었다. 정치개혁을 하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 등등’ 이것은 어렵지만 위험천만한 주장은 아닙니다. 왜? 정치인으로서 가장 무서운 언론으로부터의 공격이나 보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개혁적인 정치인들도 굳이 언론개혁에는 소극적인 이유는 바로 언론의 보복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라는 저의 추측이 지나친 억측만은 아닐 것입니다.
문광위에서 저는 정말 줄기차게 신문시장의 투명화 정상화를 위한 신문법 제정에 앞장섰습니다. 문화일보에서 연재했던 포르노 소설 강안남자에 대해 2006년도 국정감사에서 지독할 정도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문화일보는 자존심도 상하고 신문판매에 큰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총선에서 노골적인 보복으로 정치테러를 가해 왔습니다.
오늘 마지막 의원총회에서 마지막 연사로 발언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의총에서 한 발언이 아마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 행한 마지막 발언일 것입니다. 요약 발췌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정청래입니다. 공식 총선거 운동이 시작된 3월 27일. 3일후인 3월 30일 밤 10시경에 저희 비서관에게 다급한 전화가 옵니다. 고소를 할까요? 말까요?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잘 가던 식당에 한 청년이 나타납니다. 그 청년은 정청래의원 언론특보가 보낸 정의원 사무실 직원이다. 그동안 밥 먹은 식대를 계산하려고 하니 영수증을 달라. 그래서 주인이 ‘그런 적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오늘 것이라도 달라고 하여 ‘오늘은 오지 않았다.’라고 했답니다.
주인이 하도 이상해 112로 경찰에 신고해 경찰차가 출동해 홍익지구대에서 이 청년을 연행해 갔는데 신분을 조사하니 문화일보 사회부 박모 기자였습니다. 제가 결찰에 고소를 해야 더 조사를 하고 본서로 이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문화일보는 강안남자 문제제기에 대해 총선 때 악랄하게 제 뒤를 캐고 다녔습니다. 항간에 8명의 기자가 풀려 제 지역구에서 뒤를 캐고 다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서교초등학교에서 저는 “교감을 자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첫 보도이후 교감선생이 ‘정의원은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말해도 문화와 조선은 귀를 막고 정치보복을 했습니다. 오히려 정의원이 외압을 넣어서 교감이 거짓 반박문을 낸 것처럼 줄지어 보도를 했습니다.
선거 5일을 남겨 놓고 문화일보 사설 포함 11꼭지, 조선일보 사설포함 7꼭지를 썼습니다. 동아일보도 6꼭지를 썼습니다. 문화는 더욱 악랄하게 자매 무가지 Am7을 총선 전 마지막 출근 일이었던 4월 8일 1면에서 3면까지 허위 기사를 실어 뿌려댔습니다. 정청래 찍지 말라고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낙선운동을 한 것입니다.
제가 폭언을 했다는 증언은 안 나올 것입니다. 왜냐? 제가 그 말을 안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반론보도 청구 소송, 정정보도 청구소송, 형사소송, 그리고 문화일보 7억, 조선일보 5억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4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비용과 인지대 등 약 4천만원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법정투쟁을 통해 승리하겠습니다. 중간에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손학규 대표도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고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며 격려도 해 주셨습니다. (천정배의원께서 제 문제를 다룰 언론피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괄호 안의 말은 못했습니다. 이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저에게 본때를 보인 언론은 이제 18대 문광위에서 어느 누가 언론개혁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공영방송 KBS에 대한 장악 음모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KBS 이사장이 압력을 너무 받아 사퇴했습니다.
정연주 사장을 끌어 내리려는 압박이 너무 거셉니다. 이 문제는 모든 것을 떠나 우리당이 나서서 공영방송을 사수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BS가 무너지면 MBC도 무너집니다. YTN 사장은 이명박 대선 캠프에 있던 구아무개씨가 내정되었다고 소문이 파다합니다. 조중동이 정권 편을 들고 방송도 넘어간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의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러 길거리로 나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공영방송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와 국민의 목소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고 덤비는 문제라면 우리도 사활을 걸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언론노조 등 각계각층 시민단체들이 공영방송 장악음모 분쇄를 위한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도 동참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전직의원의 꼬리표를 달고 삽니다. 그러나 현직의원이든 전직의원이든 정의와 진실을 되찾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겠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수호하는 대열에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운이 좋은 것인지 어쩐지....17대 국회 의원총회 첫 발언과 마지막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문화와 조선일보의 저에 대한 정치보복에 대해 이해를 한 모양입니다. 참으로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김효석 원내대표께서도 제 발언 이후 마이크를 잡고 “KBS 미디어 포커스를 봤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고 억울하게 됐더라.”며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최재성 공보 부대표도 “말 잘 들었고 좋았다.”라며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국회 본 회의에서 정운천 농림부 장관 표결이 부결된 후 의원회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들었던 국회 의원회관 306호. 이 곳에서 많은 생각과 번뇌를 했고 많은 글을 쓰기도 했으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국가가 어떻게 움직이고 법안 하나하나가 국민생활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배웠습니다.
부족했지만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리면서 이제 306호 방을 떠납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분이 입주하셔서 좋은 의정활동 펼쳐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방문을 열고 나갈 시간입니다.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보금자리였던 306호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젠 안녕.
2008년 5월 23일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정청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