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민족주의'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

크루엔야 작성일 08.07.02 19: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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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 민족주의'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   file_down.asp?redirect=%2Ft64601%2F2007%2F12%2F26%2F22%2F04652177%5F20071117%285243%29%2Ejpg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가난한 아시아 나라 주민들에게 ‘경제 대국’으로 여겨진다. 세계 13위(2006년 통계)인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러시아(11위), 인도(12위), 멕시코(14위)와 같은 거대 국가들과 맞물릴 정도며, 1인당으로도 32위(2005년 통계)를 점해 유럽연합의 포르투갈(31위)이나 슬로베니아(30위)와 가까운 수준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노동계급의 최하층은 가혹한 착취를 당하는 약 40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루어진다. 이들에 대한 민간 극우파의 공격성은 구미지역에 견주어 덜하긴 하지만 정부는 불합리한 ‘고용허가제’의 강행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법체류’를 양산하면서도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뒤받쳐주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잔혹한 단속을 주기적으로 벌인다. 결혼 이민자가 아닌 외국인의 정주를 결사적으로 막는 이런 정책은 유럽의 우파정권들을 훨씬 능가한다. 서구 기업들이 동유럽의 저임금 노동력 착취의 효과를 챙기는 것처럼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 같은 곳에서 ‘제1위 투자국’이 되어 약 30만 현지인들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수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진보 운동 차원에서는 유럽과 한국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한국과 1인당 국민 소득이 비슷한 수준인 포르투갈이나 그리스에서 민족주의는 우파만의 전유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좌파적 민족주의자’(속칭 ‘엔엘(NL)파’)들이 민주노동당이나 학생운동 조직 등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조가 당국의 탄압을 당하고 중국의 어용노조마저 중국에 진출해 있는 삼성의 노조 탄압을 비난하고 한국 기업들의 부당 노동행위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물론 중남미나 동유럽에서까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피해자 한민족과 가해자 미제’를 중심에 놓고 운동 노선을 잡는 구태의연한 언행이 진보사회에서 계속 동조자를 얻을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일까?

아류 제국 한국이란 새로운 위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한국 지배계급과 미국 지배자들의 비대칭적 연합을 ‘미제에 의한 식민화’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이들은 분명 운동 사회를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시대적 이데올로기가 계속 ‘팔리는’ 데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한국의 지배계급은 식민지적 상황이 종식됐음에도 ‘후견 국가’를 맹종하고 그 문화를 절대시하는 식민지적 관습과 사고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이미 이야기할 수 있음에도 계속 회피하며, 다른 ‘동맹국’들이 다 빠져나간 이라크 침략의 현장을 외로이 지키며, 모국어도 아직 익히지 못한 유아들에게 영어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대한민국 지배계급의 모습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세계의 먹이사슬에서 ‘중진’이 된 강남 귀족들은, 군사안보 차원에서도 문화 차원에서도 아직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들이 확보하지 못한 ‘민족적’ 명분을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이 전유하게 된 것이다.

가짜라도 미국 학위를 가져야 인간 대접을 해주고 미국 측과 협상을 할 때에 아예 한국어를 배제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게’ 영어로만 말하는 자들이 이 나라를 다스리는 이상 운동진영에서 민족주의라는 ‘소아병’은 완치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아시아·중남미·동유럽 각국에서 한국 기업을 위해 피땀을 흘리면서도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200여만 노동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민족’ 노선에서 ‘국제연대’ 노선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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