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전단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여고생의 부모님이 경기도 교육청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답니다.
여고생의 아버지는 1급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고 기초생활수급자이며 노점상을 하고 계셨습니다.
자살한 여고생은 담임교사가 학기 초 기초생활수급자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교실에서 해당 학생들을 일어
서게 했는데, 여고생이 일어서지 않자 이름을 부르는 등 모욕을 줬다고 합니다.
또, 담임교사가 수시로 학교운영비와 급식비 등을 내지 못한 학생들의 이름을 공개했으며,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대우했다고 합니다.
문득 오늘 기사를 보고 나니 생각나는게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빈민 지역에 거주하는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환경과
미래에 대해서 조사해라고 했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대부분 레포트에는 빈민 지역 청소년들에게는 미래가
어둡다는 결론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다른 교수가 우연찮게 보관되었던 빈민지역 청
소년들에 대한 레포트를 보게 되었답니다. 교수는 빈민지역 청소년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했답
니다. 빈민 지역의 10대 청소년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변호사, 회사원,
엔지니어등의 다양한 직업을 갖고 생활하고 있었답니다. 그 때 그 빈민 지역 청소년들이 어떻게 이런
성장을 했는지 물어보니 대다수 한 여선생님 덕분이라고 답을 하더랍니다.
미래가 어둡다고 하던 빈민 지역 청소년들이 어느 여선생님 때문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희망이라는 용기을 주기 위해 있다고 봅니다.
난해한 지식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교육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
인문학을 배우던 아니면 이공계 , 공고 , 직업훈련원 , 제빵 미용학원 등 어디서든지 무엇을 배우더라도
거기에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줄 수 있다고 봅니다.
바라는 것은 빈부를 떠나 교육의 공평한 기회를 청소년들에게 제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빈부차이라는 사회적 차별이 교육 현장에서 적용되는 순간 희망이 절망으로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고생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