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는 다른 블로거의 글에서 '아이들 기 살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어려서부터 끔찍하게 싫어했던 이 '기 살리기'에 대한 기억이 적겠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작은 아동복 가계를 하여 생계를 꾸려 나갔고, 가계에 딸린 작은 방에 10여년을 살았죠. 덕분에 공부도 가계 진열장에 앉아서 하고, 은행 이나 옷수선/세탁 심부름, 가계 지키기, 청소, 옷개기 + 포장 등을 많이 했습니다. 중3이 되어야 여러칸 방이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죠.
모든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 그렇겠지만,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봅니다. 또한 가게의 손님, 소비자도 권력이랍시고, 장사하는 사람이나 가계 점원, 심지어 그 자식까지 '종(노예)' 부리듯하는 꼴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지금 병원에 있으며, 일부 환자(소비자)의 그런 짓들도 많이 봅니다.
-흙 묻은 신발로 진열장을 뛰어다니는 아이
비오는 어느 여름날, 제가 초등 5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가계에서 일을 돕고 있는데, 젊은 엄마가 7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아이가 참 많이 나데더군요. 그 때부터 '내 아이 기 살리기'가 유행이어서, 저희 엄마나 저나 왠만하면 그냥 두던 참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작은 가계를 마구 뛰어 다니며, 바닥을 흙투성이로 만들더군요. 저희 어머니는 웃으며, '얘야, 뛰면 위험해.'하며 말려보았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아이의 엄마는 여타의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상관하지 않았구요.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가 비 묻은 흙발로 진열장에 들어가 흰드레스를 밟더군요. 화들짝 놀란 저희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도 놀랐는데, 울먹이더군요.
다음 상황이 어떻게 상상이 되세요?
아이 엄마 : 아니 이 아줌마가 남의 자식 기 죽이게 뭐하는 짓이야? 엉?
우리 엄마 : 죄송해요. 그런데, 저희가 파는 옷인데 저렇게 더럽히면 팔지도 못하고 반품도 못하고...
아이 엄마 : 그까지 옷이 뭐라고, 당신이 우리 아들을 놀라게해. 아이 놀란 것 같으니까, 지금 한약방가서 약 먹야야겠네. 우리 아이 놀랐으면, 당신 가만 안 둘줄 알아.
그러고 가게에서 나가더군요.
저희 어머니는 그 드레스를 빨아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였습니다. 수돗가에 앉아서 옷을 끌어안고 한참을 서럽게 우시더군요. 영문도 모르는 제 동생도 따라 울고, 어린 마음에 저 또한 '기 살리기' 대한 적개심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그런 상황은 종종 생겼습니다. 뛰노는 아이들이 가계의 마네킹을 쓰러 트리고, 웃을 잡아 당기고, 진열해 놓은 상자를 무너트려도, '내 자식 기 살리기'를 위하여 장사꾼들은 시중을 들어야지 감히 어디다가 대꾸를 하겠습니까? 더구나, 할머니랑 같이 오는 아이와 부모는 더 기고만장했죠.
'와, 할머니들도 저렇게 욕을 잘하는구나.' 신기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급기야, 중학교 때 가게를 보던 제가 참지 못하고 어떤 아줌마와 한바탕 싸웠습니다. 대학교 때도 가계를 보다가 진열장에 들어간 꼬마를 혼내어 그 부모와 크게 싸웠습니다. 그 뒤로 저희 어머니는 아예 가계에 나오지 말라더군요.
청주라는 바닥이 좁아서 한다리 건너면 다 알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깽판치고 간 사람, 몇달, 몇년 지나면 어디에서 뭐하는 사람인지 다 알게 되죠. 물론 그런 인간들 중에는 부자들도 있습니다만, 절대 다수는 같은 장사꾼들이었습니다. 룸싸롱의 아가씨들이 호스트바에가서 남자호스트들에게 더 혹독한 것과도 비슷할 것 같군요(호스트하던 초딩동창 왈).
[조선후기 양반과 노비 사진. 어려서 부터 상황에따라 약자를 골라,
'종 부리듯'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기 살리기'인가?]
-청진하는 의사에게 침을 뱉는 아이, 간호조무사를 가방끈 짧다고 무시하는 사람들
의사 초년생 시절, 청진하는데 초등학생이 제 얼굴에 침을 뱉더군요. 어이가 없어 부모의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사과는 커녕 웃으며 '또 그러면 안돼~.' '화장지 드릴까요?'가 끝이였습니다. 청진하는데 조인트를 까는 아이의 부모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나마 의사는 상팔자죠. 간호사나 조무사들에게는 자기집 가정부에게도 못할 말과 행동을 합니다. 이년/저년은 예사죠. 어제도 내시경실 밖에서 보호자는 기다려 주세요란 말에 20대 여자가 30대 후반의 간호사에게 '나가면 되쟎아. 기분나쁘게 땍땍거리고 지랄이야.'라더군요. 소아에게 채혈하는 의사/간호사는 어떤 심정일까요? 그냥 상식적으로 그 사람들이 안아프게 한번에 하고 싶지 않을까요? 제 큰아이가 조산하여 혈관주사를 제가 놓았는데, 한번에 안되더군요. 그런데, 심한 욕은 고사하고, 폭행 당한 의사나 간호사들 많습니다. 헉, 술자리에서 '내가 이렇게 병원 간호사 손을 좀 봐줬다.'고 자랑하는 동창도 있더군요.
간호조무사는 간호사가 아니란 이유로 '조무사 주제에'란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사람들, 자기가 우유를 바닥에 엎어 놓고 미안해 하기는 커녕 앉아서 손가락질하며 '청소부 불러.'라는 사람들, 더구나 자영업자도 아닌 백화점 매장직원이나 간호사들에게 '민원 넣어 너 짤리게 한다.'라는 협박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 이들을 보면 어려서 보아온 '진흙발의 아이와 부모들'이 떠오릅니다.
소비자 주권은 제대로 지켜져야하는 것이지, 친절을 빙자하여 타인의 인격을 짓밟아서는 안될 말입니다. 사장(자본가), 병원장(자본가), 고위 공무원(대통령 포함)들은 민원이란 이름의 또다른 착취를 경계해야 합니다. 소비자단체나 시민사회단체들도 '친절'이란 말의 범위를 더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개개인의 시민의식이 성숙해져야겠죠. 내 아이들에게 저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기'살리기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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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에 예전에 올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