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리먼 인수하였을 경우 그 부실을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할 뻔 했다. 리먼 인수를 서울과 월스트리트를 직접 연결하는 금융고속도로로 표현한 조선일보의 감언이설로 한순간에 대한민국이 월스트리의 부실덩어리 매립지가 될 뻔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미국발 금융위기를 불러 일으킨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신청 5일 전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 인수협상을 중단했던 것을 안도하면서 끝날 일인가?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등 일부 언론이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합병을 부추겼던 기사들을 보면서 조롱하는 것으로 끝날 일인가?
이 문제는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 그 실상을 전면적으로 살펴서 본체를 파악한 후에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다. 자칫 잘못했다면 부실덩어리를 그대로 떠안아 국민적인 고통을 배가시킬 수 있었던 사안이다. 조선일보의 아찔했던 부추김을 지적하는 것으로 매듭지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협상에 관한 전모를 살펴보는 시작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리먼 파산신청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이상하게도 청와대는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합병에 관여하지 않았던 것처럼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일부 언론에서 산은의 리먼인수 저지 막전막후라는 기사를 통해 청와대가 막판에 인수를 제동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기사는 산은이 리먼을 인수할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을 청와대가 앞장서서 막은 듯한 인상을 주면서 공을 청와대로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수석회의 등에서 논의한 사실이 없으며, 제동을 건 적도 없다고 바로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협상에 청와대가 관련되는 것을 바로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의 공이 될 수 있는 일을 청와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왜 청와대는 이 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조기에 차단한 것일까?
마찬가지로 강만수 장관도 국회에서 리먼 인수 관련 보고는 받았지만 관여한 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협상에 관련되는 것을 즉각적으로 부인했다.
그렇다면 과연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협상은 민유성 행장의 단독 작품인 것일까?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6월 초 리먼브라더스의 서울지점 대표였던 민유성씨를 산업은행 총재로 제청할 당시 “민 대표가 국내외 금융계 인사와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고, 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며 “향후 민영화와 해외 진출을 통해 산업은행을 국제 투자은행으로 만들 적임자”라고 언급했다.
또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와 관련해서 '민유성 행장이 6월 11일에 취임한 직후 사무실로 와서 리먼브라더스 인수에 관한 보고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황상 리먼브라더스의 서울지점 대표였던 민유성씨를 산업은행 총재로 임명할 때부터 리먼 인수에 관한 정부 차원의 계획이 존재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과정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축소되고 있다.
조선일보 등 정권에 가까운 언론이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를 부추기는 가운데 민유성 산업은행 행장이 단독으로 리먼브라더스의 인수합병을 주도했고, 강만수 장관은 보고를 받았을 뿐 관여하지 않았고,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인수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서 위험을 회피했고, 청와대는 수석회의에서 논의한 적이 없고 인수에 제동을 건 적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의혹의 초점은 민유성 행장으로만 모아지는 것이다. 민유성 행장은 산은이 리먼을 인수했다면 부도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자신의 책임을 열심히 해명하기 바쁘다. 리먼과 관련된 민유성 행장의 스톡옵션도 논란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협상 문제는 민유성 행장만의 문제로 단순화되고 있다.
과연 조선일보는 정부 관계자들과의 교감없이 독자적으로 리먼 인수에 유리한 여론 형성을 도모했을까? 산업은행 총재로 리만브라더스의 서울지점 대표를 발탁한 청와대는 리먼인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강만수 장관은 보고만 받고 지켜만 보았을까? 민유성 행장 임명시부터 국제투자은행을 운운하던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리먼 인수를 막판에 반대한 공로만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민유성 행장을 발탁할 때부터 청와대와 강만수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산은의 리먼 인수를 적극적으로 기획했고 도모하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중단했고 그 중단 5일 후에 리먼의 파산신청으로 국제적 금융위기가 파급되자 재빠르게 논란의 확산을 민유성 행장 차원에서 끊어버리는 수순에 돌입한 것일까?
왜 청와대는 리먼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는 일부 언론의 공치사마저도 마다하면서 관련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고 강만수 장관은 보고만 받았을 뿐 관여하지 않았다고 언급하는 것일까? 실상은 산은의 리먼 인수협상 초기부터 청와대와 강만수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까지 개입된 작품이 아닐까? 더 파고들면 처음부터 관여한 작품이 들통나기 때문에 마지막 제동조차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한 것일까?
아직은 그 실체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유성 행장을 문책하여 끝내거나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감독 부실만을 논하는 것으로 매듭지을 문제가 아니다. 리먼의 인수를 부추겼던 조선일보를 비판하면서 안도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사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협상은 리먼이 파산신청하기 5일 전에 중단된 것일 뿐 포기된 것조차 아니었다. 협상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고 단지 중단되었을 뿐이었다. 파산신청시까지도 부실의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을 위험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리먼의 파산신청으로 부실이 확연히 드러나자 산은의 리먼 인수에 관련한 자들이 급격히 꼬리 자르기식 회피를 한다는 인상이 짙게 남을 뿐이다.
산은의 리먼 인수 문제는 구렁이 담 넘듯이 슬그머니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리먼의 천문학적 액수의 부실을 고스란히 국민경제에 떠넘겼을 아찔한 협상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고, 누가 사실상 주도했는지 그 실체를 철저히 밝혀야할 문제이다. 민유성 행장 혼자만의 단독 작품으로 몰고가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판단의 실제적인 주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