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1(펌글)

명불허전 작성일 08.10.01 16: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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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

 

이거 너무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뱉은 말을 물릴수도 없는것이고 ㅎㅎ

 

먼저 동인도 회사에 부터 설명을 할까 합니다... 그이전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등의 이야기는

 

아는것도 별로 없고 현대와는 너무 먼이야기라 생략할까 합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라는것은 17세기 상업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네덜란드에 동인도회사가 설

 

립됩니다 당시 유태인들은 고리대금업에 폭넓게 손을 뻗치고 있었고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당시를 배경으로한 소설등을 참조 하시

 

면 유태인의 고리대금업자 들이 심심치 안게 등장하는데요 상당히 악덕업자? 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아시아등으로 멀리 무역을 거래하던 상인들의  상선을 담보로 고리업을 했던것도 이런 문

 

제 때문이었습니다...17세기 중반이 되자 네덜란드가 지배한 프랑스가 자국상품을 수출하기

 

위한 프랑스 동인도 서인도 노르 회사를 설립하게됩니다 연이어 영국에서도 러시아회사

 

스페인회사 동인도 회사가 잇달아 세워지구여.. 규모만 보아도 엄청난 이득이 발생했음을 짐작해

 

볼수 있겠네요...인도의 식민지화가 본격화 되면서 동인도 회사를 가진 여러나라들간에

 

이권투쟁이 벌어지고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 면포 등의 무역독점권을 둘러싸고 쟁탈전이 일어

 

납니다  하지만 1600년대 중반 영국과의 상업 전쟁에 지게 되고 동인도 회사는 식민지 경영에 손을

 

뻗어 보지만 1799년도에 식민지 영토를 본국정부에 이양하고 해산하게 됩니다... 

 

여기서 유태인의 동향을 주목해야 할점은 기실 중세시대까지 유태인들은 고리대금 업 등이

 

교리상 금지 하였는는데요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면서 종교개혁 결과 신교지역이 된곳으로

 

유태인들의 이주와 집중이 나타 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위그노 신교지역이었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그 중점이 되게 된것이죠...이결과 암스테르담에 주식회사의 제도가 발생하게 되고

 

은행제도 주식거래소 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중심지로써의 모습을 굳건히 하게됩니다...

 

이때당시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를 운영하던 이들이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뉴욕을 점령 함으로써

 

뉴 암스테르담이라 명명하고 미국의 자본주의 시초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 경우 네덜란드에 비교적 늦은 후발 주자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영국 런던의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모직물과 향료등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이 되었구여...

 

1623년 암보니아 학살사건이후 네덜란드인들에게 동인도제도에서 축출당하지만 후일

 

인도에서 포르투갈을 밀어냄으로써 무굴제국의 무역특권을 얻어내게 됩니다

 

향신료와 후추 중국의 차 수입을 주로 이루었다는것 또한 1800년대의 아편전쟁, 인도 무역의 독점

 

권 등을 주목해 볼수 있습니다 (일일이 다쓰면 끝이 없을것같네요...)

 

17세기 말 영국에서는 중앙 은행제도가 탄생을 하게 되는데요 제임스 2세가 쫓겨나고 윌리엄

 

3세가 즉위하면서 군비증강을 하게 됩니다 윌리엄 3세는 영국과 네덜란드에 있는

 

유태인들에게 거대한 자금을 빌리려했고 유태인들은 군비증강을 위해 자금을 저이자로 빌려

 

주는 대신 화폐주조권을 따내게 됩니다...화폐주조권을 얻은 유태인들은 BanK of England 를 설립

 

함으로써 금융시장을 본격적으로 유태인이 장악하게 됩니다  이은행이 후일 네덜란드 중안

 

은행인 DuTch Bank 와 합병을 하고 영란은행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후일  나폴레옹 전쟁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영국런던에 기반을 두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정부에 적대적인 국가들에게 1억 파운드씩의 전쟁 차관을 빌려주면서

 

나폴레옹과 싸우도록 유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워털루 전쟁입니다 이러한 유태인들의

 

프러시아 정부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함으로써 연합군이 증강하여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것이죠...

 

프랑스의 동인도 회사의 경우 지방의 상인들이 세금징수를 기피했고 이에 동인도회사의 가입을

 

권했으나 거부하게됩니다 해서 프랑스 왕 자신이 가장많은 투자를 하였고 회사는 왕의 소유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번번히 네덜란드 에게 강냉이 털리고 물품을 빼았기는등 대부분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선박들조차 수리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됩니다 이후 1700년대 초

 

프랑스가 경제 난을 겪으면서 해산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이가문은 현재까지도 록펠러 모건등과 함께 월가

 

의 한축을 담당 하고 있는데요 프랑크 푸르트의 유태인 게토(getto)에서 환전상을 경영하던

 

로스차일드 가의 마이어 암셸이 그 시초 라할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다섯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의 본점을 장남이 이어받았고 차남이 빈(오스트리아) 3남이 런던(영국)

 

4남이 나폴리(이탈리아) 5남이 파리(프랑스) 에서 로스차일드 상회를 열게 됩니다...

 

그의 가문의 문장을 보면 알수있지만 다섯화살이 서로 각기 다른 방향을 겨누고 있는것을

 

알수있는데요 이는 다섯명의 아들이 서로의 영영을 존중하고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일족 가운데 최대의 자산을 이루게된 사람은 3남 네이선입니다 그는 21세때2만파운드를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에서 거처를 정합니다 (대략 200년전)

 

1800년대 50세가 된 암셸의 자산이 10억플로린이 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당시 프랑크

 

푸르트의 유태상인중 10손가락안에 들었는데요 이런 사실로 볼때 로스차일드가가 독일영주들

 

에게 신뢰할수 있는 금융업자였다는것을 짐작해 볼수 있습니다...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화를 맡아 보관하기 좋은 훌륭한 금고를 가지고 있었고 금은화 를 소유한 사람들은 전쟁 발발과

 

같은 툭수한 상황에 처하면 로스차일드 상회에서 자기 재산을 맡기고 보관증 받아갔습니다..

 

당시 로스차일드 상회라고 쓰인 보관증은 금화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금화처럼 무겁지 않았기에 소지가 용이했구여... 이러한 모습을 볼때 현재 우리가 쓰는 지폐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여기서 주위해야할점은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된시기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대두되기 이전입니다)  여튼 이런 보증서 유통은 금본위제에서 지폐의 원형에 가깝다

 

라고 생각 해볼수 있겠네요...

 

이후 네이선(3남) 로스차일드는 1810년 런던 증권 거래소에서 금융왕 베어링과와 세를 다투고

 

이에 승리를 하면서 1인자 자리에 오른이래 수년간 영국이 유럽 동맹국들에게 제공한 자금인

 

4200만 파운드의 절반을 자신이 조달할정도의 위치에 오르게됩니다... 이쯤에 부친인 암셸이

 

사망을 하게 되고 가산을 일절 공표하지 말것이라는 유훈을 남겨 오늘날까지 정확한 가산이

 

얼마인지 알수가 없게 됩니다....1822 년 5형제가 함부르크 가의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게 되고 유럽 상류 상회의 정점으로 발돋음 하게 됩니다 당시 유럽의 여러나라

 

들은 로스차일드 상회에 손을 벌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합니다...

 

1875년에는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주식을 팔려는것을안 영국은 프랑스 보다 선수를 쳐서

 

서둘러 구입하려 하지만 잉글랜드은행으로 부터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기에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에게 급사를 보내어 내일까지 400만 파운드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하게 됩니

 

다..이에 라이오넬이 담보가 무엇이냐고 묻자 '대영 제국' 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바로 400만

 

파운드를 마련해주었고 영국은 17만 주를 매수해 수에즈 운하의 최대 주주가 되게 됩니다....

 

헌대 여기서 주목해야 할것은 당시 대영제국의 최대 부호인 빅토리아 여왕의 자산이 500만 파운드

 

내외로 추정? 됐다고 합니다 ... 당시 예측하기를 19세기 동안 로스차일드 일족이 획득한 부는

 

4억 파운드를 넘을것으로 추정이 된다(ㅋㅋㅋ 젠장..) 하더군요...

 

해서 미국 재벌의 역사는 제가말했던 세력들을 기준으로... 밴더빌트의 네덜란드계 듀퐁의 프랑스

 

계 록펠러의 독일계들이 주름을 잡게 되고 미국 산업계를 형성한 주인공은 모건 카네기 포드 등 대

 

영제국의 자손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처음 제가 언급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유럽의 금융 재벌 인데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영국의 동인도회사 로이드 보험 잉글랜드은행 베어링 상회의 탄생 즉

 

근대적인 금융가가 된 런던 시티지구 확립의 시초입니다...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유럽 금융권의 우애가 어느정도 이해가 가실꺼에요.. 

 

 

 

아.. 써도 써도 끝이 안나네요...2편으로 나누겠습니다 죄송..오늘은 여기까지만 쓰도록 할께요..

 

중간중간 생략 한게 엄청 많습니다.. 자료조차 없는것도 많네요

 

다음에 쓸때에는 이 이후의 이야기 현대사(씨티 모건 골드만 록펠러..)를 초점으로 쓰도록 하겠습니

 

다... 요즘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전글에 대부분 쓴듯하네요...

 

오타 나 다소 틀린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 드립니다

 

사회방에 올렸다가 없어진줄 알고 깜짝 놀랐다능...

 

 

출처: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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